그땐 그랬지. 우리 둘의 마음은 하나였지.
그해 여름 백록담에서 사진을 찍고 할 때가 좋았지. 대학 2학년 젊음의 색처럼 푸르렀지.
그때까진 좋았지. 그런데 뭐야. 동쪽으로 하산하려는데 한참 남은 줄 알았던 해가 우리의 패기를 싫어하는 거야. 해가 지는 정도가 아니라 바로 깜깜해지는 거지. 우리의 담대함을 시험하는 거지. 너랑 나는 당황했지만 뭐 어쩔 수 있겠어? 알잖아, 거기서 내려오는 코스가 얼마나 긴지. 지금은 데크로 쉽게 연결되어 있지만 당시만 해도 그냥 돌밭을 헤매고 내려와야 한다는 걸. 그런 데다가 스멀스멀 비까지 내리지 뭐야. 깜깜한 데 비까지 온다는 것은 길을 잃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겠지. 우의도 제대로 못 갖춘 우리에게 내리는 비는 에베레스트의 눈사태 같았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새벽까지 길을 찾아 넘어지며 미끄러지며 무조건 아래로 내려왔지. 아무리 길을 찾아도 숲밖에 없었어. 더 이상 걸을 힘이 없어 쓰러질 바로 직전 기적같이 큰길이 나타난 거야. 그게 바로 서귀포에서 제주로 넘어가는 5.16 도로였어. 죽어가던 우리가 결국 살아난 거야. 그때 우리가 부둥켜안은 힘은 아무리 힘센 태풍도 못 떼어 놓을 정도일 거야. 그랬어. 우리는, 우리의 우정은.
왜, 그런 말이 있잖아. 서로의 사이가 조금 불편할 때 외부에서 적이 출몰하면 서먹했던 둘은 같이 합심해서 동지가 된다고. 같은 입장이니 같은 편이 된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외부의 적이 물러나면 다시 내분이 일어난다는 것까지도 알 필요가 있지. 모든 역사가 증명하는 대목이지. 우리가 그랬어. 한라산 등정을, 그 조난 같은 등반을 마칠 때까진 우린 하나였지. 그러나 육지로 들어와 영천의 보현산이라는 데를 올라갈 때였을 거야. 하나는 어렵게 이곳까지 왔는데 정상까지 가자했고 하나는 굳이 정상까지 갈 필요 없이 이곳의 정취를 느껴보자 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사소한 의견 차이였지. 그런데 그땐 그렇게 서로의 거리가 멀어 보일 수 없었지. 이어서 식당을 선택할 때도 의견이 갈렸어. 한번 마음이 멀리 가니 어떤 말도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아. 그랬어, 그냥. 우리 사이가 그렇게 사소하게 마무리된 것이. 대학을 졸업할 때도, 아니 그 후도, 우린 연락 한 번 안 했지. 그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사이엔 커다란 바다가 놓여 있었지. 여태까지 그래왔어. 지금 생각해 보면 별일 아니지. 그런데 왜 그땐 그랬는지 몰라. 역시 내가 속이 좁은 모양이야.
그런데 어쩌다 신문기사를 통해 네가 제주도 어느 양조회사에 근무한다는 기사를 봤어. 얼마나 반가웠던지. 그런데 지금에 와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 아직도 연락을 못하고 있어. 그러다가 마침 이번에 우리 모임에서 제주도를 간다고 하지 않겠어. 모르겠어. 아직도 내 마음을. 그런데, 난 이미 결정했어. 모임 친구들의 일정을 틀어서라도 너의 양조장을 같이 가보려고. 만약에 여의치 않으면 나 혼자라도 가 볼 생각이야. 그래서 그때의 물렁한 얘기를 하며 사과를 해 볼 생각이야. 물론 누가 많이 잘못했는지 따질 것은 없이, 그저 내 생각이 짧았다는 말을 하고 싶어. 지금 누구의 비중이 무슨 필요가 있겠어. 대학 2학년의 순수한 추억이 가슴에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이미 마음이 넘치는 것 아니겠어. 주장이라는 게 뭐겠어. 당시 내게 들어온 정보나 경험으로 이루어진 판단 아니겠어. 더 많은 정보와 경험이 들어오면 다른 판단이나 주장이 생길 뿐인데. 아무튼 난 그 어렸을 때의 추억을 못 잊고 있어. 이번에 제주에서 너를 만나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 내가 속이 종지같이 좁았어. 미안해. 그리고 이제야 얘기지만 그때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