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여우 한 마리

-반려동물과 교감하다

by 걸침

돌아가신 어머니는 후각이 발달했었다.

음식 냄새는 물론이고 아들 냄새도 잘 맡았다. 아들이 저녁도 못 먹고 지쳐 들어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물어보신다. “저녁 못 먹었지?”하곤. 그러면 나는 으레 “먹었어요” 답을 하면 어머니는 다시 묻는다.

세 번을 물어보시고도 먹었다고 화 비슷하게 내는 아들에게 어머니는 굳이 밥상을 내 오신다.

아들의 대답에서 감추고 있던 굶은 냄새를 기막히게 맡곤 하셨다.


그런데 결혼하면서 어떤 토끼 같은 여인이 집안에 하나 들어왔는데 냄새를 전혀 못 맡는 것이었다. 어쩌다 허기진 배를 쓸며 늦게 들어온 날, 아내는 묻는다. 저녁 “했냐”고. 늦은 시간 아내가 귀찮을까봐 “했다”고 으레 답한다. 그런데 어머니처럼 세번이 아니라 적어도 두 번은 물어봐 줄 줄 알고 습관적으로 답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쾅!’이었다. 문 닫는 소리에

“씻고 자요” 라는 한 마디가 지렁이 허리처럼 툭 끊어진 채로 나뒹굴었다.

체면에 배를 쫄쫄 굶으며 신혼의 밤을 지냈다. 내 태도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세 달쯤 지나서였을까. 이대로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아내가 저녁 먹었냐 물어보면 1초도 안되어 “안 무그따”로 답했다. 우선 살아야 했다. 그렇게 겨우 신혼시절의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무디던 아내의 후각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술자리가 늘다 보니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집을 빠져 나가곤 했는데 어느 땐가부터 그것이 통하지 않았다.

그것이 어쩔 수 없는 자리였는지 내가 좋아서 늦은 자리였는지를 기가 막히게 알아 맞히기 시작하더니, 몇 푼 안되는 비상금 숨긴 곳까지 알아내고야 만다.

개의 후각이 사람보다 1만 배의 넓이를 커버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 더한 일이 벌어졌다. 다윈도 놀랄만한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다. 토끼에서 개로 진화하더니 이번에는

여우로 둔갑을 하는 것아니겠는가. 이건 진화가 아니라 돌연변이에 속한다고 밖에 해석할 길이 없다.

여우는 영리한 동물이다. 사냥 시에 나무 뒤에 숨어있다가 상대가 틈을 보일 때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먹이를 잡아채는 기술을 가졌다. 가끔 남의 굴에 들어가 그것을 자기 집으로 삼는 얄미운 점도 있다. 게다가 혹시나 모를 일에 대비하여 그 굴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내어 도망갈 퇴로를 준비해 놓는 철저함도 지니고 있다.

생활비를 계산하거나 여행 분담금을 정산할 경우 상상도 못할 논리를 찾아 내 주머니 돈을 가로채갔다.

나중에서야 생각이 나서 정확한 팩트를 들이대면 언제 준비했는지 모를 퇴로로 기막히게 빠져나갔던 적이 그 얼마였던가. 내 눈빛만 보면 내 속이 훤히 보인단다. 갑자기 어머니가 현신하셨나 놀랄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 두 아이의 엄마다. 어머니가 되면 그렇게 진화하나 보다. 아니 변이하나 보다. 그렇다. 나는 여우하고 산다.


그런데 그 여우의 엄마, 곧 장모님이 곰의 후손이라서 그런가.

가끔 보면 곰의 냄새가 난다.

몇십 년을 우직하게 한 직장을 다니면서도 제멋대로 사는 낭군을 이렇게 보필하였으니.

한번은 친구들과 술을 마시고 곯아 떨어졌는데 늘 그렇듯이 후배 친구가 아내에게 픽업 요청 전화를 했다. 아내 또한 늘 그렇듯이 새벽 1시임에도 조는 얼굴로 픽업을 나왔다. 뒤늦게 깬 나는 후배가 아내에게 픽업 전화를 한 사실도 모르고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었다. 한참 기다려도 택시가 오지 않았다. 그런데 저만치 컴컴한 곳에 자가용이 한 대 서 있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나라시라는 것이 있어 자가용이 가끔 영업행위를 하곤 했다. 택시도 안 잡히는데 저거라도 타고 가자하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쪽 차의 운전자도 머뭇거리더니 창문이 살짝 여는 것이다.

나는 “길동 얼마예요?”라고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술김에 봐도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 앉아 있는 것이다. 순간 번개처럼 상황이 파악되고.. “길...에서 오래 기다리셨어?”

아내도 차에 기다리면서 낭군 같기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사람을 냉큼 부를 수 는 없고 해서 머뭇거리고 있던 참이었다. 만약 “길동 얼마예요?”라고 그냥 뱉었으면 귀싸대기 두 번은 맞았으리라. 어쨌든 그런 해프닝이 있었지만 요지는 직장을 다녀와 피곤했을 아내가 두말 않고 픽업을 와 주곤 했다는 사실이다. 그게 어디 약은 여우의 짓이겠는가. 성실과 겸손을 모토로 하고 있는 아내는 분명 곰이다.


모르겠다. 아내라는 존재를. 때론 트레킹을 해도 나보다 전혀 지치지 않는 말띠 본연의 체력에다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분명한 고양이었다가, 싸울 때는 내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지지않는 앵무새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우리집은 동물원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동물원 속에 내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니었다.

동물이라 생각한 쪽은 사실 나를 구경하러 온 손님이었다. 여기저기 정신없이 걸치고 돌아다니는 나를, 이상한 동물 보듯 아내가 쳐다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사실은 내가 아내의 손바닥만한 우리 안에 갇혀서 그 곳이 전부인 양 놀고 있는 처량한 동물이었던 것이다.

그저 잘 길러진 늙은 동물,반려동물이자 곧 반려(返戾)될 동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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