헉! 아니, 이럴 수가. 이건 도대체 무슨 확률이야?
0.000012%? 814만 5천60분의 일? 이건 16만 년 동안 매주 복권을 사야 당첨되는 확률이라잖아.
아니야, 아니. 이건 분명 현실이 아니야. 꿈이 맞아. 봐, 보라고. 조금 있다가 ‘아, 선생님 번호에 착오가 있었군요’하고 메시지가 올 거니 두고 보라고. 그래야지. 그럴 거야. 그러고 말고. 아, 이건 정말 아니야, 아니래도. 잠깐 어디 검색해 볼까? (사이) 그래. 이거다. 번개에 맞아 죽을 확률보다 더하다잖아. 아니 그런데 이건 뭐야. 남자가 번개에 맞을 확률 200만 분의 1인데, 여자는 1200만 분의 1? 뭐야? 여자가 왜? 여자가 죄를 덜 졌나? 아니면 몸속에 절연체라도 있는 건가? 혹시 거기? 에이 몰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자, 보라고, 응? 욕조에 넘어져 죽을 확률 80만 분의 1, 로또가 그 확률보다 10배나 희박하다는 얘기 아냐. 그리고 아마추어가 홀인원 할 확률 1만 2천 분의 1, 그래도 꽤 높은 편이네. 아고 이것도 매주 1회 라운딩 할 경우 58년이 걸려야 한번 할까 말까 한다라는 거 아냐. 어? 그런데 이건 또 뭐야. 정자와 난자가 만날 확률 3억 분의 1? 뭐야. 로또보다 더 한 확률 아냐? 그렇지. 그래. 내가 그런 불가능한 확률로 태어났지. 그렇다면? 난 이미 로또보다 더한 횡재를 하고 세상에 태어난 것 아니겠음? 맞아. 그래. 그러니 로또쯤 당첨된 것 가지고 이렇게 수선 떨 필요 없다는 거지. 맞아. 나, 이래 봬도 대단한 사람이야. (어깨를 한번 으스댄다). 그리고 이거 봐. 한번 외출로 진정한 짝을 만날 확률 0.00034%. 그 어려운 확률로 그때 거기서 와프를 만난 거 아냐. 그 멀고 높은 소백산 정상에서 우연히. 아니 필연일까? 그래 암튼 난 1등에 당첨될 자격이 있는 놈이야. 가만있자. 참, 정자가 난자를 만날 때 1등으로 달려간 놈이 아니라 했지? 1등이 지칠 때를 기다렸던 2등 한 놈이 난자를 만난다잖아. 근데 어쨌든 아까 그 확률은 2등 그놈이 난자를 만날 확률을 이야기하는 거겠지. 2등으로 태어난 놈이 1등을 해본다.
자. 지금까지 좋아. 그래. 근데 이 돈 가지고 뭘 한다? 지난번 방송하고 뉴스에서 1등 당첨한 사람치고 행복해진 경우가 드물다는데. 혹시 그렇게 되는 건 아니겠지? 에이. 쓸데없는 생각. 그건 아무 생각 없이 벼락부자 되듯이 썼거나, 주위에 떠벌려서 뜯기고 뺏기고 해서였을 거야. 자. 나는 좀 다르겠지? 음. 그래. 달라야겠지. 흠....... 자 뭐부터 한다?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뭘까? 아! 그게 바로 버킷리스트지. 그래 내 버킷이 뭐였지? 참 지난번 내가 시나리오 쓰고 감독한 단편영화 주제도 버킷리스트였잖아. 죽음 문턱에 간 친구에게 저승사자가 가르쳐준 살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 가장 가까운 사람의 버킷을 알아내고 그것을 채워주라는 미션. 좋아하는 고래에다 감독의 분위기를 약간 오마쥬한 스토리? 암튼 버킷, 그래 버킷을 생각해 보자. 아니, 그전에 다른 사람들은 대체 죽기 전에 어떤 버킷을 원하는지 한번 알아볼까? 그래. 여기. 여기 있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버킷리스트 20이라. 첫째가 뭘까? 자.. 두둥두둥.... 어, 오로라 보기, 그래 그럴만하지. 나도 핀란드니 캐나다니 훑었지만 겨울이라야 하는 조건이 안 맞아 못 본 것. 그래 좋아, 참고하지 뭐. 그리고 이게 뭐야? 마라톤 뛰기? 이건 이제 무리고. 아프리카 사파리여행, 어 이건 케냐 가서 했고. 자. 다음이... 작가처럼 글쓰기? 어? 이거 뭐야. 지금 하고 있잖아. 매일 12시까지 글 만들어 올리느라고 머리에 쥐가 나고 있제. 어휴... 그래 좋아 다음이 만리장성 걷기 했고, 악기 연주 배우기, 뭐, 대금, 피리, 하모니카... 여러 개 해봤고, 그레이트배리어리프에서 스노클링 하기 해보셨고, 스카이다이빙 뉴질랜드에서 해봤지요. 캐 키우기? 아니. 안돼. 이건. 우리 사돈이 개랑 같이 자느라 아내는 딴 방 쓴다는데.. 아이고 난 시려. 근데 이건 뭐야. 개를 쓰다듬는 것이 혈압을 낮춰준다? 아, 아니야. 그래도 난 시려. 그래 다음은 피라미드보기 해봤고, 다른 언어 배우기, 그래 영어, 일어, 중국어에 지난번 베트남어까지 들어가 봤으니 뭐 그냥.. 베네치아 곤돌라 타기, 대륙 가로지르는 드라이브, 에펠탑에서 파리보기 뭐 다 해본 거네. 근데 이건 뭐야. Pacific crest 트레일? 멕시코 국경에서 캐나다국경까지 6개월간 4300킬로? 미서부 캐년등 일주는 다했지만 이제 그렇게 긴 건 좀. 알래스카 빙하크루즈 타기, 좋아하는 밴드보기, 글램핑 가기, 스톤헨지 가기 해봤지, 킬리만자로 오르기.. 그래 이것도 4600미터까지 올랐다가 고산증 때문에 내려오긴 했지만 거의 오른 거나 마찬가지지. 뭐, 거의 다 했네. 참 나도 어지간히 돌아다녔네. 하긴 이제 뭐 더 하고 싶은 것도 없다시피 하니... 잠깐 이건 뭐야? 잡코리아가 2-30대 남녀 1350명 대상으로 설문한 젊은이들의 버킷리스트? 참고 삼아 한번 봐? 유럽, 세계여행, 그래 그렇겠지. 엥? 부모께 효도하기? 갑자기 웬 부모? 얼마나 못하고 살면 이게 버킷일까? 하긴 나도 그랬다고 봐야지. 열정적으로 사랑하기, 그래 열정적으로 좋아, 찐하게.. 이때 밖에 더 있겠어? 하긴 때가 항상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젊었을 땐 잘 모르지. 창업, 내 가게 운영하기, 다이어트 성공하기, 제2외국어 마스터하기, 댄스, 악기등 취미생활, 뭐 이건 다 비슷하네. 어, 이거 재밌다. 나랑 똑 닮은 2세 낳기, 그래 그렇지. 이기적 유전자. DNA의 욕망이 우릴 움직인다 볼 수 있겠지. 자. 그리고 상사 면전에 사표 던지기... 와! 그래. 멋지다. 젊은이다. 그래야지. 나도 수십 번 그러고 싶은 적이 있었지. 근데 그렇게 던지고 나와서 잘 된 경우를 잘 못 봐서.. 그래. 신중해야겠지. 그저 삶은 득도의 과정이니까. 그런데 젊은이들의 버킷이 이렇게 많은데 못하고 있는 이유가 있다? 금전적 이유. 당연하겠지. 언젠가 하겠지 하고 미루는 것, 당장 시간이 없어서... 그래 이해해. 그런데 뭐야 이건. 버킷이 너무 자주 바뀌어서? 큭....... 그래. 생각과 기억이란 인풋 한 정보를 가공하는 과정이지. 인풋이 수시로 바뀔 테니까. 그리고 스티븐 호킹도 그랬잖아. 사람은 컴퓨터와 같다고. 뇌가 깜박거림을 멈추면 그 이후엔 아무것도 없다고. 고장 난 컴퓨터를 위해 마련된 천국이나 사후세계는 없다고... 암튼 그건 그렇다 치고...
그럼, 자, 돈이 들어왔다. 이건 실제상황이다. 그럼 뭘 한다? (사이) 음 이건 어떨까. 로또 박물관. 그래. 허를 찌르는 거지. 그동안 로또나 도박을 하다 패가망신 한 사람들을 실제로 데려다가 민속박물관식으로 거기에서 살게 하는 거지. 그리고 그 장면을 보여주는 거야. 로또방, 화투방, 경마방, 파친코방, 카지노방, 인터넷 도박방, 주식방... 노숙자부터 폐인까지.. 그 사람들 생활 구제도하고 관람도 하게 하고... 어떨까? 기발한가? 뭐 그리고 마지막 방은 건전하게 경제생활하는 서민들의 행복한 방으로 끝내? 너무 교육적인가? 학생들 단체관람 밖에 안 들거라고? 뭐 하긴 그렇기도 하네.. 그럼...(사이) 이건 어떨까? 결국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이 버킷리스트 아닌감. 그러니 전국의 아주 선한 사람들의 버킷을 채워주는 거야. 지금처럼 행정단위가 추천하는 형식적인 것이 아니라. 진짜 주변의 추천을 몇 번이나 받는 선량한 사람들을 고르는 시스템을 우선 만드는 거야. 그리고 그들의 버킷을 카테고리화하고 그 우선순위대로 버킷을 실행시켜 주는 거야. 이 돈이면 조그만 재단의 종잣돈으로 삼아 매년 몇 십 명씩은 보내 줄 수 있지 않을까? 여행이든, 취미 배우기든, 창업이든..... 그래 그게 좋겠다. 물론 이런 이벤트 때문에 사람들이 더 선한 행동을 하지는 않겠지만 심리적인 유도장치는 되지 않겠어? 좋아. 그 방향으로 생각하기로 하고.. 잠깐 그런데 이 계획을 와이프한테 어떻게 설득한다? 무슨 정의의 사자, 배트맨 나왔냐고 윽박지를 텐데. 아고 내가... 설득 책까지 낸 사람이 마누라 설득이 세상에서 제일 어려워. 으이그.. 그냥 애들, 애들, 아직 집도 없이 전세 전전하는 애들 힘든데 걔네들한테 나눠줘야 할거 아니냐고 난리 칠 텐데.... 아이고 머리야..
이때 스마트폰에서 울리는 전화벨 소리. 흠칫한다. 보니 모르는 번호다.
혹시 은행? 뭔가 잘 못 됐다고? 에이, 골치 아픈데 차라리 잘 됐는지도..... 아니 그래도 아니지.
조심스레 전화를 받는다.
(작은 목소리로) 여보세요?........
누가 흔든다.
(큰 목소리로) 여보 낮잠 좀 그만 자. 무슨 잠꼬대까지,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