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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Jan 26. 2019

[고대 원시] 표현하는 방법

화가 미상 <동굴벽화>

<쇼베 동굴벽화>

  미술에 관한 글을 쓴 지 벌써 7년이 되었습니다. 처음은 마음에 위로가 되어 일기처럼 쓰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글에 살이 붙고 내용도 길어지게 되네요. 출판을 염두 해 놓고 써 내려가다 보니 그런 듯합니다. 일생을 살면서 내 이름의 책 한 권이 있는 것도 보람된 일이잖아요? 가끔은 서점에 들러 새롭게 나온 다양한 미술 에세이들을 보곤 하는데, 서점에 제 책도 한 권 놓여있다면 되게 뿌듯할 것 같아요.


  물론, 해외 명문대학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신 분들과는 깊이의 차이가 있겠지요. 그래서 저는 어려운 미술 개념 대신에 느낀 점을 위주로 쓰려합니다. 평범한 회사원의 눈에 비친 감상도 나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은 유치한 일기장 같아 부끄럽기도 하지만 미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움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마중 물 정도의 의미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얼마 전 친구와 함께 부암동에 있는 김환기 미술관에도 다녀왔습니다. 친구는 종종 미술관에 함께 가자고 하는데, 남자 녀석들 중에 유일하게 미술에 관심이 많은 친구임에도 여전히 미술 관람이 어려운가 봅니다. 다행히, 시간이 맞아 도슨트도 함께 듣게 되었는데, 큐레이터 선생님께서 어린아이에게 설명하듯 아주 쉽게 풀어내시더군요. 상설 미술관에 찾아갈 정도의 관람객이라면 미술에 관심이 높은 사람일 텐데, 어려운 표현은 거의 쓰지 않으시고 간단히 이해될 수 있도록 설명해 주셨습니다. 듣기에는 편했지만 한 편으로는 우리나라의 일반 관람객의 눈높이를 알 것 같아 안타깝기도 했지요.


  유럽 미술관의 도슨트에 참여해보면 꽤 철학적입니다. 관람객들이 기초적인 미술사를 알고 있다는 전제로 당시의 시대 상황과 작품이 주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설명하지요. 저도 친구에게 김환기 화백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1950년 ~ 1970년대 미술사와 추상화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살짝 설명해주니 무척 좋아하더군요. 거기에 추상화를 감상하는 팁까지 알려주니 미술이 더욱 친숙하게 느껴지는 모양입니다. 제 친구도 그렇고 분명히 우리나라에 젊은 미술 애호가들이 많을 텐데, 미술 관람은 여전히 커다란 장벽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는 여러 가지 입니다만, 처음 미술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다 보면 미술 에세이부터 찾게 됩니다. 저도 신문에 기고되는 글을 보고 시작하게 되었지요. 일단 쉽게 읽힐뿐더러 작품을 감상하는 포인트를 콕 집어 주기 때문입니다.  보통 에세이들을 읽어보면 가족, 인생, 사랑, 청춘처럼 카테고리를 나누어 설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감하고 감상하기 쉽지요.


  그 후, 에세이를 어느 정도 봤다 싶으면 이제는 본격적으로 미술사 책을 보게 됩니다.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화가의 삶이나 배경을 알면 큰 도움이 되거든요. 하지만, 미술사 책은 말 그대로 교과서에 가깝기 때문에 감상의 포인트를 찾기 어렵습니다. 또 외워야 할 것도 무척 많기 때문에 대부분 이 단계에서 포기하게 됩니다. 설사 어렵게 외웠다 한들 유명한 작품은 유럽 미술관에 있기 때문에 볼 기회가 없어 금방 잊히게 되지요.


  제가 나름의 긴 시간 동안 관심을 갖고 취미 활동을 해보니, 언젠가 책을 내면 미술사 순서대로 쓰되, 내용은 감상 위주로 설명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미술사를 자연스레 풀어낼 수 있고, 그 내용도 느낌을 중심이다 보니 어려운 미술 개념을 설명할 필요가 없거든요. 미술사의 흐름과 느낌을 이해하면 자연스레 앞으로 펼쳐질 미학의 방향도 예측된다는 점도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까지 썼던 글들을 보니 낭만주의나 야수파처럼 강렬한 느낌의 작품에 대해 쓴 글이 많더군요. 개인의 취향 탓에 편식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돌이켜보면 희미하고 몽롱한 느낌이 특별했던 작품들도 참 많았는데도 말이지요. 다음부터는 연대순으로 정리하되, 이제까지 쓰지 않았던 미술 사조에 대해서 써볼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동굴 벽화>은 책의 첫 번째 페이지에 놓을 듯합니다. 예술이 표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면 <동굴 벽화>는 인류 최초의 그림이 됩니다. 무려, 기원전 3 만년 경 그림이다 보니, 당연히 작가는 미상이지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동굴 벽화는 스페인의 알타미르, 프랑스의 쇼베에 있습니다. 그중 쇼베에 그려진 그림은 두 코뿔소가 싸우는 장면이 매우 특별한 것으로 평가받습니다. 통상 동굴 미술에서 그림 속 소재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는 경우가 거의 없거든요. 그림이 화가와 관람객의 상호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이 동굴 벽화는 분명히 의미가 있습니다.


  아무리 복잡한 이론과 기법이 있다 하더라도 미술은 감정과 생각의 표현입니다.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하는지는 둘째 문제지요. 저도 나름대로 책을 보고 외웠지만 세상의 화가와 작품 수는 너무 많기 때문에 다 아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또 전문적인 미술 비평가가 아닌 이상 그럴 필요도 없고요. 대신, 작품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면 감상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가령, 이탈리아에서 활동했던 카라치 형제는 모를 수 있어도 페르세우스 신화를 알고 있다면 작품을 감상하는 것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반면에, 페르세우스 신화 자체를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유명한 화가가 그렸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페가수스와 메두사를 모르는데 어떻게 감상할 수 있겠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 기법이나 화가 특징보다는, 서양 철학, 그리스 신화 또는 시대적 상황을 더 찾아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무엇을 표현하는 지만 알아도 작품의 절반은 이해하고 있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미술 관람을 취미로 가지면서 여느 취미처럼 초급, 중급, 고급의 단계가 있는 듯합니다. 처음 미술에 관심을 가지면 “누가 그렸나”를 따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이 한국에서 전시된다고 생각해보세요. 평소에 미술관을 찾지 않던 사람들도 한 번쯤은 가볼 겁니다. 유명한 화가라면 일단 미술관에 한번 찾아가 보는 거지요.


  그다음으로 “어떻게 그렸나”도 따지게 됩니다. 화가를 알았으니 무슨 기법과 양식인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바로크 양식인지, 로코코 양식인지 구분하는 것 이죠. 이론이나 미술사적 의의를 많이 살펴보게 되고 분석적으로 그림을 보게 됩니다. 이쯤 되면 미술을 취미로 가진 사람으로서 초급 정도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좀 의아하죠? 양식도 구분하고 화가도 알아보는데 겨우 초급이라는 게요. 다음 단계를 보면 수긍이 될 겁니다


  중급 단계는 “무엇을 그렸나”입니다. 즉, 소재를 이해하는 것이죠. 화가의 소재는 매우 다양합니다. 성경이나 신화일 수 있고 소설의 한 장면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그렸는지 이해한다는 것은 그 배경까지도 알고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더 많은 지식이 필요하지요. 그래서 중급입니다. 하다못해, 객관적으로 그려낸 정물화 조차도 각각의 소재가 상징하는 의미를 알고 있어야 제대로 된 감상이 가능합니다. 개인적으로 볼 때, 중급 정도가 되면 작품에 대해 “누가”, “무엇”, “어떻게”를 이해하기 때문에 감상하는 데 별 문제가 없습니다. 이쯤 되면 도슨트나 특별한 해설서가 없어도 편하게 미술관을 찾습니다.


  드디어 마지막 단계입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어렵고 심오한 수준 같습니다.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정말 어렵습니다. 자... 이 단계에 오면 그림을 분석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감정적 관점으로 “왜 그렸나”를 살펴보지요. 관람객이 아닌 화가의 입장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겁니다. 내가 화가였다면 이 작품을 왜 그렸을까 상상해 봅니다. 저는 그림을 읽어낸다고 표현하는데, 작품을 자세히 보면 화가의 붓 자국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 붓 자국을 따라 작품을 똑같이 그려낸다는 상상을 하면서 화가의 감정 상태나 의도를 공감하고 이해하는 것 이죠. 또 작품이 탄생하게 된 이유를 생각하면서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화가의 생애뿐만 아니라 이제까지 알 던 모든 지식과 감정을 동원해 작품에 의미를 부여하는 수준입니다.


  다시 <동굴 벽화>를 살펴보면, “누가”, “무엇을”, “어떻게” 그렸는지는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고대인들은 “왜” 그렸을까요? 선사시대는 생존 자체가 최우선이 었을 겁니다. 식량은 필수였겠지요. 상상해 보세요. 3만 년 전 원시인들이 도구라곤 손도끼 밖에 없는 환경에서 손에 닿지도 않는 높은 동굴 천장에 그림을 그린 이유를요. 어두컴컴한 동굴에 횃불 하나만 의지하며 깊은 동굴로 내디뎠을 겁니다. 그리고 횃불을 통해 비치는, 불빛으로 일렁이는 말들과 코뿔소를 바라보면 얼마나 환상적으로 느껴졌을까요? 넉넉한 사냥감이 눈 앞에서 아른거리는 모습이야 말로 고대인들의 꿈이었겠지요.  


  피카소는 1940년 이 지역의 동굴 벽화를 실제로 보고 나서 "우리는 이때보다 하나도 더 나아진 것이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코뿔소가 앞으로 돌진하는 모습을 표현하기 위해 선의 두께를 조절하며 변화를 준 기법은 현대 그래픽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지요. 3만 년 전에 폴 고갱 특유의 굵은 선을 강조한 표현법인 클로아조니즘(3차원의 입체표현을 최소화하고 굵은 윤곽선을 사용한 양식)을 고대인이 알았을까요? 복잡한 현대 미술 기법도 알고 보면 표현을 위한 한 가지 수단에 불과한 겁니다. 결국 고대인부터 현대인까지 수 만년 동안 변하지 않는 진실은 하나입니다. 어찌 되었던 누구든지 각자 가진 생각과 소망을 어떠한 형태로든 “표현”한다는 것이지요.


  미술사는 감정 표현의 역사입니다. 비단, 미술뿐만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용가는 춤을 추고 가수는 음악을 들려주며 저 같은 경우는 글을 쓰지요. 표현한다는 것은 인간의 소망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억눌려있는 감정을 적절히 배출시키는 순기능도 있지요. 누구나 표현을 합니다. 그것은 3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습니다. 표현하는 것은 막을 수도 없고 막아서도 안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표현할지는 각자에게 달려있다는 점이지요.


  가장 쉽고 빠른 표현하는 방법은 말로 하는 것입니다. 대화를 하면서 나의 생각을 빠르게 전달하지요. 물론, 편지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표현의 방법과 수단은 문명이 발달할수록 다양해지지요. 자신을 "표현"한다는 것은 참 중요한 일이고 그건 미술을 떠나 각 개인의 존엄과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생각해보세요.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는 환경이 과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환경일까요?


  표현한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다만, 같은 생각도 세련되게 표현하는 사람이 있고, 불편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메시지의 강도도 상황에 따라 제각각이지요. 어떤 표현은 갈등을 일으키고 문제를 야기합니다. 잘못된 표현을 한 거죠.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좋게 표현할 줄 알아야 하고 그 표현 방법도 익혀야 하는 겁니다.


  이제껏 살아오면서 좋은 표현이라 함은 거짓이 없는 표현이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짓 없다는 것은,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함이라기보다 상대방을 고려하고  상황에 맞는 표현을 말합니다. 나 하나만 만족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입장도 생각해 보는 것 이죠. 그렇게 되면 내가 “왜” 표현해야 하는지도 깨닫게 됩니다. 불필요한 표현은 되도록 삼가게 됩니다.


  미술도 그러하지만 세상에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 많습니다. 핵심은 잘 표현하는 게 중요하지요. 저는 그게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인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책들을 읽어보면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방법에 대해서 나옵니다. 자잘한 스킬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진정성을 담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조언합니다. 저도 부족한 점이 많아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진정성 있는 표현은 큰 탈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진정성을 담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압니다. 그러나, 진정성을 알아주는 여부는 내가 할 수 없지만 진정성을 담는 것까지는 할 수 있습니다. 좋은 표현은 영원에 가까운 생명력을 갖는다고 믿어요. 고대인의 진정성이 담긴 벽화가 3 만년 동안 잠들어 있다가 현대인들에게 발견되어 빛을 발하는 것처럼요. 진정성을 캔버스에 담을 줄 아는 것이 미술사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진정성을 알아보는 것이 미술 관람의 시작이며 잊지 않은 것이 미학의 끝일 겁니다.


참고

 : 줄리엔 벨_세상을 비추는 거울 미술

<알타미르 동굴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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