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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Jan 27. 2019

[고대 이집트] 신과 함께

화가 미상 <죽음의 서>


<죽음의 서>

  3만여 년 선사시대의 동굴 벽화 이후, 미술사는 한참 뛰어넘어 기원전 5 ~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물론, 중간중간 부족 중심의 고대 미술이 있었지만 4대 문명에 이르러 수준 높은 작품이 만들어지지요. 4대 문명은 큰 강에서 발달했던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황하, 인더스 문명입니다. 충분한 물이 있었고 비옥한 땅으로 농업을 할 수 있었기에 문명으로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었겠지요. 그렇게 축적된 재산과 기술은 자연스레 미술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각 문명마다 특징이 있지만 이집트는 피라미드, 미이라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소재가 많아서 제법 친숙합니다. 하지만, 오락적인 요소가 강해 미이라와 피라미드가 왜 만들었는지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지요. 그들은 왜 신체를 방부 처리하면서까지 유지하고자 했을까요? 또 터무니없을 만큼 거대한 무덤을 왜 만들었을까요? 고대 이집트 예술을 이해하려면 그들이 불멸의 삶을 추구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집트 문명이 가진 특별한 점은 무척 폐쇄적인 지형을 가졌다는 점입니다. 서쪽과 남쪽은 사막, 동쪽은 바다였으니 이집트에 들어올 수 있는 입구는 오직 북쪽뿐이었습니다. 천혜의 요새였지요. 거기에, 해마다 나일강이 범람하면서 토지가 자연적으로 비옥해졌기에 큰 수고 없이 씨앗만 뿌리면 농작물을 수확할 수 있었습니다. 문명이 발달하기에 너무나 완벽한 조건이지요. 이런 지정학적 특징 때문에 약 2,500년 동안 외세의 침략 없이 안정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습니다.

 


  초강대국이자 풍요로웠던 이집트에서 왕과 귀족은 안락하고 풍족한 생활에 만족했을 겁니다. 내가 사는 이곳이 바로 천국이었겠지요. 내가 죽더라도 이러한 부귀영화가 영원하길 바랐을 것이고 다시 환생하더라도 이집트에서 다시 태어나길 원했겠지요. 이집트가 천국이고 내가 다시 태어날 곳도 이집트 여야 한 겁니다. 또 그들은 죽음을 영혼과 육체가 잠시 떨어져 있는 상황으로 이해했습니다. 사후 영혼은 오시리스의 신 앞에서 심판을 거쳐 다시 환생할 수 있을 거라 믿었지요. 그러려면 내 육체가 온전해야 하고 안전하게 보전되어야 하는데, 그게 바로 미이라와 피라미드가 생겨난 이유입니다.


<고왕조 피라미드>

  고대 이집트의 역사는 bc3,100~ bc332년까지 무척 길어서 시대에 따라 문화도 변화했습니다. 초기 1,000년의 고왕조는 우리가 잘 아는 거대 피라미드로 상징되었다면, 다음 500년 중왕조 시기에 왕가의 무덤이라 불리는 지하에 굴을 파고 매장하는 형태로 변화합니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되기 전까지 마지막 1,000년의 신왕조는 엄격한 규칙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신전들과 인간적인 모습도 나타나지요. 황금마스크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투탕카멘도 신왕조 시대로 구분됩니다.



  고대 이집트 문명의 전성기는 투탕카멘의 요절 이후 흔들리는 왕조를 세티 1세 장군이 장악함으로써 강력한 중앙집중체계를 이룩한 신왕조 시대입니다. 조선왕조의 태조와 비슷 하달 까요? 효율적인 통치체계와 군사력으로 국가 발전 기반을 세웁니다. 그 기초를 바탕으로 전성기 시대를 이끌었던 왕이 바로 람세스 2 세지요. 우리 역사로 비유하자면 세종대왕과 비슷합니다. 일반적으로 모세와 맞서 히브리족 탈출을 방해한 왕으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소설 <람세스 2세>에서 그의 모습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왕으로 묘사됩니다. 실제, 이집트 역사에서도 신왕조 전성기를 이끌던 가장 훌륭했던 왕으로 기록되어 있지요.



  소설 <람세스 2세>에서 그의 삶이 자세히 그려집니다. 어린 나이에 왕위를 물려받아 특유의 정복 욕으로 북쪽으로 진군합니다. 북쪽에 위치했던 당시 최고의 군사 강국 히타이트족과 끊임없는 전쟁을 벌였지요. 고작 청동기 무기로 철기 문화를 가진 민족과 영토 전쟁을 벌인 겁니다. 그리고 최초의 전쟁기록물로 남아있는 카데시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요. 이후, 히타이트족과 인류 최초의 국가 간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남쪽으로 확장하여 최대의 영토를 이룩하게 됩니다.

 

<중왕조 왕가의 계곡 / 람세스 아부심벨 신전>

  그의 이야기는 단순히 정복 왕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로맨티스트였고, 폭군이기도 했지요. 수많은 나라를 정복하면서 정략결혼도 많았고 수많은 후궁을 뒀지만 왕후는 오직 네페르타리 뿐이었습니다. 지고지순한 사랑의 주인공이기도 했지요. 그녀가 죽자 엄청난 규모의 무덤도 건설합니다. 또, 인류 최대의 사건 중에 하나인 모세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했지요. 모세가 이끄는 히브리족의 출애굽을 방해했기에 폭군으로 묘사됩니다. 아무튼, 여러 면에서 대서사시의 주인공일만 합니다. 또, 초강대국을 이끄는 람세스는 본인의 선전물과 유적들을 무수히 남기게 됩니다. 아마 본인의 치적을 영원히 남기고 싶었겠지요. 영원은 이집트 문명을 설명해 주는 가장 중요한 단어니까요.



  람세스 2세 뿐만 아니라, 영생불멸을 믿는 고대 이집트인들에게는 분명한 내세관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내세관을 엄격히 규칙화하여 내려온 그림이 바로 <죽음의 서>입니다. 정확한 이름은 book of the death로서 <사자(死者)의 서>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이름이 좀 자극적이죠? 그런데, <죽음의 서>뿐만 아니라, 수많은 고대 이집트 미술 작품을 보면 특유의 옆모습으로 그려낸 걸 보게 됩니다. 솔직히, 좀 어색하지 않나요? 원근법이 익숙한 우리에게 상형문자 같기도 한 그림들이 특이합니다. 하지만, 수학적 지식으로 피라미드까지 정교하게 지어낸 그들이 원근법을 몰라서 안 그렸을까요? 여기서 환생의 키워드를 이해해야 합니다. <죽음의 서>는 기본적으로 환생한 모습을 그려냅니다. 만약, <죽음의 서>가 원근법으로 그려졌고, 그 모습대로 환생한다면 팔과 다리는 좌우 비대칭이 됩니다. 원근법은 대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니까요. 우리가 아는 이집트 특유의 대칭적인 표현만이 가장 온전한 모습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엄격한 규칙이 적용되어 모두가 비슷한 그림으로만 남게 됩니다.



  사실, 이집트 문명을 알아가면서 <죽음의 서>가 그려낸 양식보다 그림이 담고 있는 내용이 더 궁금해졌습니다. 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수천 년 동안 큰 내용의 변화 없이 내려왔을까요? <죽음의 서>는 일종의 저승 가이드북입니다. 영화 <신과 함께>에서 나오는 저승사자처럼 죽은 자가 오시리스 신에게 심판을 받는 과정을 안내하는 설명서랄까요? 초기 <사자의 서>의 관한 내용은 피라미드 벽면에 새겨졌지만 파피루스가 등장하면서 관 속에 넣게 됩니다. 책의 내용은 각종 주술과 심판의 관한 것이며 특히, 오시리스 신 앞에서의 심판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죽음의 서>에 따르면, 죽은 자는 자신의 살아생전 죄사 없다고 당당히 고백하며 당당하게 심판대에 나섭니다. 그리고 자신의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깃털의 무게와 비교하는데, 만약 죄업이 많아 깃털보다 무거워지지만 소멸되는 것이고 깃털보다 가벼우면 영생의 길로 나서는 것이죠. 심장의 무게를 다는 과정은 현재 사법 제도와 비슷합니다. 이 재판에서 죽음과 부활의 신 오시리스가 판결을 내리며, 지식의 신인 토트가 서기를 봅니다. 죽음의 신 아누비스는 안내자를, 악어의 머리, 사자의 갈기를 가진 아뮤트가 집행관을, 파라오와 왕권을 상징하는 신 호루스는 죽은 자의 고백을 유도하는 일종의 검사 역할입니다. 어떤가요? 영화 <신과 함께>의 장면들이 떠오르지 않나요? 염라대왕 앞에서 나의 죄를 낱낱이 고하고 유죄로 판명되면 지옥 불에 떨어지는 것처럼요. 오시리스 신 앞에서 심판을 받고 죄가 무거우면 그 영혼은 아뮤트에 의해 소멸하게 됩니다. 여기서 죄는 신앙심뿐만 아니라 폭력, 절도와 같은 범죄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티베트 사자의 서>

  <죽음의 서>뿐만 아니라,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인간의 육체로 태어난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었고 죽음에 이르러서 심판이 존재한다면 지금 우리는 잘 살고 있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우리가 심판대에 섰을 때 우리의 죄업이 과연 깃털보다 가벼울 수 있을까요? <사자의 서>를 좀 더 알고 싶은 마음에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류시화 시인께서 쓴 <티베트 사자의 서> 번역본이 있더군요. 이집트 문명과 티베트 문명은 분명히 다르지만 죽음을 맞이하고 또 죄업에 따라 환생한다는 점은 결국 같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상 어느 종교든지 삶의 행위에 따른 심판이 있다는 것은 변하지 않을 진리일 테니까요.



  우리의 모든 행위... 말이든 행동이든 생각이든 모든 것들은 반드시 (카르마) 남기 마련입니다.  업은 행위에 따라 선과 악으로 구분되어 개인의 대차대조표가 됩니다. 좋은 일도 했을 것이고 나쁜 일도 했을 겁니다. 그렇게 쌓은 평생의 업은 훗날 심판의 날에 심장의 무게로 대답하게 됩니다. 깃털보다 가벼울 수도 있고 무쇠만큼 무거울 수도 있겠지요. 무게의 결과에 따라 나의 영혼은 천국으로  수도 있고 영혼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나는 울었고,  주변의 모든 사람은 기뻐하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세상을 떠날  나는 웃었고,  주변 사람은 슬피 울고 괴로워하였다



  <티베트 사자의 > 문구  하나입니다. 인간의 생사를 깊이 사유케 하는 글이지요. 그런데,  글귀처럼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 웃을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죽음을 눈앞에 두었을 , 속세의 후회와 미련을 훌훌 털어낼 자신이 있나요? 만약 그게 어렵다면 지금부터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가지 확실한 것은 어떠한 종교던지 선행을 동반하지 않고서는 좋은 결과를 기대할  없다는 입니다. 죽음이 언제 우리에게 올지   없고 이제까지 쌓은 업을  번에 돌이키기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속에서 심장의 무게를 줄이는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죠.



  윤회는  생을 마감하고 죽은 이후 업력에 따라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부활도 약간의 차이만 있을  비슷합니다. 다만  공통점은 우선 죽음을 맞이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살아있는데요? 결국 심판은 죽음에 다다라야   있다는 것일까요? 심판 전에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 좋고 나쁨을  수는 없는 걸까요?



  윤회는 반드시 죽음 뒤에만 찾아오는  아닌 듯합니다. ‘시간 윤회'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오늘  일을 내일하고 내일의 일을 모레 또다시 반복하는 것이지요. 쉽게 말해, 반복되는 일상... 어쩌면, 우리가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모든 것들이 형태와 모양은 조금씩 다를지라도 모든 것은 윤회의 범주에 있다는 것입니다 , 지금의 내가 행하는 모든 행위가 내일의 행위에 영향을 미치며 끊임없이 변해가는 . 다시 말해 지금의 진동이 다른 삶의 진동에 영향을 주며 끊임없이 순환합니다. 평범한 일상이  카르마입니다. 매일마다 주어지는 윤회 속에서 우리는 이미 ‘신과 함께있습니다. 다만, 그것을 깨닫지 못할 뿐이지요.



  우리는 매일  죽음을 맞이하고 아침에 부활합니다. 새롭지만 똑같은  하루가 탐욕, 의심, 자만으로 가득 찼다면 번뇌가 쌓이고 카르마는 어두워집니다. 반면에 기쁨과 선행이 많았던 하루는 밝고 화창하겠지요. 이렇게 하루하루를 살다 보면 오시리스를 마주하는 그날의 심장은 이미 깃털보다 가벼워질  있겠지요. 결국 <사자의 >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에게 주는 메시지는 아닐까요? <사자의 > 쓰여있는  글귀처럼 말입니다.



생은 다만 그림자/

실낱 같은 여름 태양 아래 어른거리는/

하나의 환영/

그리고 얼마 큼의 광기/

그것이 전부/

우리에게 시간은 충분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만큼 살지 않았을 뿐/

참고

 : 강선희_ 체험으로 읽는 티베트 사자의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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