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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Jan 31. 2019

[고대 그리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

화가 미상 <오이디푸스>


 

  고대 미술사를 보면서 가장 기대되는 문명이 바로 그리스였습니다. 그리스 신화는 매력적인 이야기가 정말 많습니다. 헤라클레스, 제우스, 비너스, 테세우스 등등... 모든 신화들이 흥미롭고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영화와 소설로 각색되어 대중문화를 형성하는   영향을 미치기도 했습니다. 제우스와 그들의 이야기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많았던 작품들의 주제였고 앞으로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리스 문명은 서양미술사의 시초일 뿐만 아니라 서구 중심으로 이뤄진 현대 문명의 뿌리로  수도 있습니다. 세계화가 광범위하게 진행된 지금,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요.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 문명은 모든 문화의 기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사를 보다 보면 갑작스레 새로운 양식이 탄생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과거로부터 내려오던 화풍을 발전시켰거나 타국의 문명을 자신의 문화로 소화하면서 새롭게 창조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그리스 문명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 문명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독자적으로 발달한 것으로 알지만 실제는 고대 이집트의 문명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많은 신들이 이집트에서 숭배하던 신과 매우 흡사합니다. 가령, 죽음을 상징하는 디오니소스는 부활의  오시리스와 유사하고, 아폴론은 호루스와 마찬가지로 태양을 상징합니다. 뿐만 아니라, 건축기술도 그러하지요. 그리스 문명을 대표하는 아테네 신전도 고대 이집트 후기에 나타나는 신전의 모습과 많이 유사합니다.



  그럼에도, 그리스 문명이 이집트 문명과 확연히 구분될  있는 이유는 추구하는 철학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이집트 문명이 죽음과 부활에 집중했다면, 그리스 문명은 인간과 현상에 집중하는 특징을 가집니다.  생각의 차이가 수많은 결과물을 낳았지요. 개인의 가치관이 행위를 결정하듯, 철학은 문명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철학이  시대의 문화를 형성하고, 미술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라는 점에서 철학을 알아야 작품 저변에 깔린 성격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술사를 공부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철학사도 함께 공부하게 되지요.



  보통 철학이라고 하면 어렵고 딱딱한 학문으로 다가옵니다. 저도 학창 시절에 철학 과목은 무작정 외워야 했던 암기과목으로 기억에 남습니다. 그저 시험 범위만 달달 외웠던  같아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보니, 철학은 삶과 살아가는 방법을 세상이 알게 해주는 학문이더군요. 철학은 밝히는() 학문()입니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밝힐까요? 복잡한 세상을 연구하면서 하나의 원리로 풀어내고자 합니다. 나란 존재는 무엇인지, 행복은 무엇인지, 세상은 어떤 원리로 구성되는지... 답도 없는 질문들에 대해 답을 찾고자 합니다. 솔직히, 재미없지요? 하지만, 조금씩 알아갈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더군요. 최소한 저한테는 그랬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행복의 원리를 깨닫는 것만큼 중요한  없으니까요.



  철학사를 보면 인류가 고민해왔던 흔적들을 따라가게 됩니다. 만물의 근원이 무엇일까 고민했던 탈레스부터 현대의 실용주의 철학까지 정말 많은 철학자가 자신의 논리를 말해왔습니다. 그중 가장 많은 철학자들이 활동하던 시대가 바로 고대 그리스였습니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위대한 철학자는 너무나 많습니다.  시대에 유독 많은 철학자가 나온 까닭은 인문학적인 토양이 배양되었기 때문이겠지요. 놀랍지 않나요? 지금도 누군가 벼락에 맞으면 천벌을 받은  아닐까 생각하는데, 무려 기원전, 1,100년에 과학적 근거를 모색했다는 점이요.   



   많았던 철학자만큼 그리스 문명에는 많은 신화가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만 855명쯤 되더군요.  인물마다   가지의 이야기를 품고 있으니 모두 알기는 어렵지요. 그럼에도 이야기들 속에 공통점이  가지 있습니다. 신들의 이야기지만 인간적이랄까요? 질투, 욕망, 분노, 사랑, 호기심, 모성애.... 신의 모습 속에서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살아  쉽니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는 신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신의 모습을 빌어 인간의 이야기를 표현했는지도 모르겠네요. 그리스 문명을 설명하는 수많은 에피소드들은 많지만 그중 <오이디푸스> 신화가 유독 마음에 들었습니다.



  <오이디푸스> 신화는 테베 왕국의 왕자 오이디푸스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게 된다는 신탁을 받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왕은 고민 끝에 신탁을 믿고 오이디푸스가 태어나자마자  나라로 보내버리지요. 하지만, 운명은 그를 내버려 두지 않았습니다. 영웅으로 성장하여 당시 골칫덩이였던 스핑크스까지 죽이게 되고 테베 왕의 자격이 주어집니다. 한편, 그가 젊은 시절 길에서 시비가 붙어 행인을 죽였던 적이 있었는데, 행인이 바로 아버지였지요. 결국, 신탁의 예언대로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와 결혼하게 됩니다. 스토리만 들으면  난잡하지요? 나중에 사실을 알게  오이디푸스는 좌절하여 눈을 뽑고 장님이  채로 테베 왕국을 떠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복잡한 이야기는 20세기 최고의 심리학자 프로이트가 인격형성 과정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빌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오이디푸스>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사건들이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저는 스핑크스와의 수수께끼 대결을 조금  특별한 시선으로 바라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이디푸스는 몰라도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만큼은  알려진 일화지요. 많은 상징이 있을 뿐만 아니라, 피라미드 앞에서 눈으로 확인할  있는 존재이니 이야기가 얼마나 흥미롭겠어요? 신화가 현실로 나타나는 순간, 그것은  이상 신화가 아닙니다.



   알려진 대로, 스핑크스는 길목을 지나는 사람에게 갑자기 나타나  가지 수수께끼를 냅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대답을 하지 못해 스핑크스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그리스 테베 왕국은  골치 아픈 스핑크스를 물리치면 테베의 왕으로 인정해준다고  정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오이디푸스가 길을 걷다가 스핑크스와 마주하게 됩니다. 스핑크스는 의기양양하게 오이디푸스에게 수수께끼를 내지요. 맞추지 못하면 죽여버린다는 무시무시한 협박과 함께.



“태어날 때는 가장 크고, 전성기에는 가장 작고, 늙어갈 때는 다시 커지는 것은 무엇이냐?”

 “그림자!”


 “언니는 동생을 낳고 동생은 다시 언니를 낳는 것은 무엇이냐?”

“낮과 밤!”


당황한 스핑크스가 오이디푸스에게 마지막 수수께끼를 냅니다. “목소리는 하나인데 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로 걷는 것이 무엇이냐?”


인간!”



  마지막까지 답을 맞히자 스핑크스는 스스로 절벽에 몸을 던져 죽고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이 됩니다. 여기까지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죠? 대부분 답을 듣고 무릎을  치면서 오이디푸스의 지혜에 감탄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이디푸스> 신화의 가장 대표적인 사건을 보면서 근원적인 질문 하나가 생겼습니다.  인간에게 수수께끼의 답이 “인간 질문을 냈을까 하는 이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답하지 못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우습지 않나요? 인간 스스로가 답이면서 그것을 몰랐다는 것을 . 저는 <오이디푸스> 담고 있는 많은 상징들 중에서... 그리스 문명을 설명할  있는 철학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인류의 가장 어려운 숙제면서 끊임없이 추구할 수밖에 없는 질문... 스핑크스가 생각하는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는 바로 “자신을 아냐고 묻는  아니었을까요? 



  “ 자신을 아느냐라는 질문은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명언은 가장 오래되고  인류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메시지일 테지요. 스스로를 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 자신을 알라 뜻은 네가 처한 상황과 주제를 알고 있어라는 경고의 메시지도 있지만, 철학적 관점으로 조금  깊게 살펴보면 네가 알고 있는 것이 진짜 알고 있느냐는 화두를 던집니다. 개인적으로   스스로를 알기 어려운 이유는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에요. 누구나 자신의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합리화를 합니다.  역시도 그러하지요.



  소크라테스는 델포이 신전을 통해 아테네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신탁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현자는 아니라고 생각했고, 동시대에 활동했던 현자들을 만나보게 됩니다. 그리고,  과정에서 소크라테스는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 다른 현자들은 본인의 분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지언정,  외에 것에 대해서는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아는 척만 했다는 것이지요.



  반면에,  자신이 누구인가 많은 고민을 했던 소크라테스는 본인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름난 현자들은 자신들이 무지하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른바 현자들보다 적어도  가지는  알고 있었던 셈이고 가장 지혜로운 자일  있었습니다. 여기서 핵심 철학이 나오게 됩니다. 바로 “ 자신을 알라 것은 네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무지의 (無知의 ) 깨달음 것이지요.



  소크라테스의 독배 이후, 제자 플라톤은 스승의 철학을 이어 시공간을 초월하는 궁극의 절대 () 있다고 믿었습니다. 인간은 착각이라는 동굴 속에서 갇혀 살고 있으니, 동굴 밖의 진실(선의 이데아)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지요.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스승이 형이상학에 집중한 것과 달리 형이하학에 관심을 가지며 현실에 집중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 자신조차도 모르는인간이 본연의 행복을 찾아가는 과정을 고민하게 만들었고  제자인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모든 생물이 자기의 타고난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는 데서 행복이 달성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식물은 햇빛과 영양을 흡수하려 번식하고, 동물은 여기에 감각기능을 더하여 운동 능력이 충분히 발휘될  그들의 덕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간 또한  본성인 이성 능력을 충분히 활용할  가장 좋은 상태에 이릅니다. 하지만, 불완전한 우리는 쉽게 나태해지기도 하지요. “ 자신을 알고자하는 노력하고 끊임없이 정진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행복은 본연의 역할을 충분히 다할  오니까요.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내가 무엇을 잘하는지,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 또한 많습니다.  만년이 지났어도 우리는 여전히 스스로를 알지 못하고, 앞으로 마찬가지겠지요. 우리는 자신의 단점을 합리화하면서 스스로 옳다고도 생각할 겁니다. 무지함을 알지 못한  말입니다. 그래서,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는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겠지요.



  자신을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래야만 행복한 삶이 보이니까요. 행복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깨닫는 것부터 시작입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알게 되면 노력하게 되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면서 자연스레 좋은 결실을 이루게 됩니다. 그렇게 성장하여 얻은 결실을 나눌 때 스스로를 더 알게 됩니다. 그게 바로 인간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무엇이냐 묻는 스핑크스에 대한 오이디푸스의 지혜일 것입니다.



[참고]

 : 강성률_한 권으로 읽는 서양철학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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