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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브리옹 Feb 04. 2019

[고대 로마문명] 강함을 이기는 것

티투스황제, 콜로세움

<콜로세움>

  처음 유럽 여행을 갔을 때가 생생히 생각납니다. 돌이켜보면 많은 나라를 여행 다녔지만,  유럽 여행만큼 설레었던 적은 없었던  같아요. 마치, 첫눈을 맞는 기분이랄까요? 여느  같이  내리는 평범한 날이지만 첫날이라는 이유만으로 마냥 즐거웠던 것처럼요. 물론, 전에도 해외여행을 가본 적은 있지만 동경하던 유럽을 처음 가본다는 것이  좋았습니다. 넘치는 문화유산과 낭만적인 분위기를 느껴볼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지요.  



  미술사를 알기 전에는 몰랐는데, 이탈리아부터 유럽 여행을 시작했던 것은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유럽 문화의 시작이 이탈리아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가끔 지인이 유럽 여행지를 묻곤 하는데, 유럽이 처음인 경우면 이탈리아부터 추천하는 이유지요. 로마, 피렌체, 베네치아를 거치면서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 심지어 바로크 시대의 작품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사적 기초를 튼튼히 쌓으면 다른 유럽 국가를 방문해도 문화의 뿌리가 이해되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됩니다.



  이탈리아로의  유럽 여행. 그게 미술에 관심을 갖게  시작인  같아요. 여행을 가기 전에 미술사 책을 보고 갔는데, 현지에서 확인하고 느끼는 재미가 얼마나 크던지요. 정말, 아는 만큼 느끼게 되더군요. 수많은 문화유산을 직접 보고 경험했던 것만큼은 이제껏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중에 하나였습니다. 제법 많은 나라를 둘러보았지만 다시 한번 기회가 된다면 이탈리아로 가고 싶어요. 처음이던 때는 허겁지겁 둘러보느라 정신없었지만 이제는 조금  여유로운 일정으로 넉넉하게 둘러보고 싶습니다.



  이탈리아 하면 로마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로마 문명이 연상됩니다. 하지만, 로마 문명을 미술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복잡합니다. 공화정(기원전 509~27)부터 로마제국(기원전 27~기원후 476)까지 천년의 시간 동안 로마 영토는 영국, 서유럽, 그리스, 심지어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까지 확장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로마 미술은 헬레니즘 영향을 많이 받았기에 그리스 미술과 차이점이 거의 없습니다. 로마인이 그리스 조각의 복제품을 제작할 정도로 그리스 미술을 모방했던 로마의 습성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폼페이 미술>
<트롱프뢰유>

  로마시대의 회화작품은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굳이 찾자면 폼페이에 남아있는 벽화 정도랄까요?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하고  화산재가 폼페이를 덮치면서 코스프레 벽화가 오랜 시간 보존될  있었던 덕입니다. 솔직히, 로마 시대의 그림이라고 해서 특별한 것은 없었습니다. '트롱프뢰유'(일종의 눈속임)라는 2차원 벽면에 3차원의 입체적인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 있긴 했는데, 그리스 시대와 크게 다를 것은 없습니다.  당시 건축은 창문이 없고 어두웠기 때문에 생활공간을 넓게 보이려는 측면에서 이러한 회화 방식이 유행했다지요. 실제 폼페이에 갔었을 때도 소수의 회화 작품만  듯합니다.  년에 가까운 로마 문명에서 대표할 만한 작품이 없다는 것도  의아하긴 합니다.



  하지만, 건축사 관점에서 로마시대는 황금기였습니다. 그래서 거대한 건축물과 공공 기념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판테온, 수도교, 개선문 등이 있지요. 로마의 문화 유적은 워낙 즐비해서 도시 자체 하나가 거대한 건축 박물관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러한 건축이 가능하려면 공학 기술이 필수적인데, 우리가 잘 아는 아치(arch)의 발달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해주었습니다.


<포로로마노 / 수도교>

  아치는 메소포타미아 시대에 발명되긴 했으나 본격적으로 쓰인 시기는 로마시대입니다. 아치는 무게 하중을 분산시킴으로써 건물을  높일  있었던 위대한 발전이었습니다. , 아랫 공간이 비어있었기 때문에 공간 활용 측면에서도 유리했지요. 아치를 횡방향으로 뻗으면 다리가 되고, 종방형으로 뻗으면 터널이 됩니다. 이것을 종방향으로 동그랗게 말게 되면 콜로세움이 되지요. 그래서 콜로세움은 특별합니다. 포로로마노라 불리는 지역에는 콜로세움을 포함하여 수많은 고대 건축물이 집단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회화작품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건축유산만큼은 최고라고   있지요. 콜로세움은 당시에 5 명을 빠르게 수용할  있었던 최신식 건물이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로마 문명을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유적인 듯해요.



  사실, 콜로세움 하면 검투사의  튀는 혈투부터 떠오릅니다. 심지어 물을 대고 배까지 띄워 수상 전투를 벌였다고 하니, 엄청난 스케일에 놀라게 됩니다. 이러한 이미지는 <벤허>, <글레디에이터>, <스파르타쿠스> 통해서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로마문명을 상징하는 거의 모든 것이 나타납니다. 검투사, 전쟁, 전차 경주, 화려한 개선행진까지요. 솔직히 잔인한 이미지가 우선 떠오르지요? 아무래도 영토확장과 정복의 시대였던  이겠지요.



  그렇다면,  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철학은 무엇이었을까요? 역설적으로 로마시대를 대표하는 가치관은 금욕과 무욕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으며 고통받는 여러 민족들은 세상의 허무함과 무력감을 느꼈지요. 철학은 항상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맺습니다. 로마 시대는 오랫동안 전쟁이 이어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자연히 혼란스러운 바깥세상보다는 자기 내면을 바라보며 구원과 행복을 얻으려 했습니다. 이때 스토아학파가 나타납니다. 그들은 이성을 따르는 삶을 추구했는데, 육체적 본능 조차 물체로 보았습니다. 현자는 물체를 지혜롭게 선택할  아는 자였지요. 다만, 지혜를 추구하는 길은 실로 험난했습니다. 극단적인 금욕생활로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덕을 쌓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기울였지요. 심지어 죽음 조차 그들은 ’선택했습니다.



  반면, 에피쿠로스는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쾌락은 육체적인 향락보다는 지속적이고 정신적 기쁨을 말합니다.  훗날  행복을 위해 지금의 작은 쾌락은 포기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역설적으로 무욕을 주장했습니다. 하기사, 사람은 많은 것을 지닐수록 고뇌가 깊어지는 법이지요. 비우면 행복해지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스토아의 극기심이나 에피쿠로스의 무욕이 의미하는 바는 크지만 보통 사람인 이상 소망과 꿈은 포기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로마시대는 여전히 억압적이고 전투적이었지요. 이후, 사람들은 초인적인 신에게서 구원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렇게 가장 폭력적인 시대에서 사랑을 강조하는 성인이 드디어 나타납니다. 바로 예수님의 탄생이지요. 인류의 장구한 역사 가운데, 로마 시대에 나타나신 이유는 분명히 있을 겁니다. 깊고 어두운 밤에는 작은 불꽃도 만방을 비추니까요.



  터키 카파도키아로 여행을  적이 있었습니다. 거기서 고대 로마 초대교회의 모습들을   있었지요. 로마인의 핍박을 피해 동굴 속으로... 들판으로 흩어져 살게 됩니다. 심지어 땅굴을 파고 살았던 흔적도   있는데 얼마나 열악했겠나요? 허리도   없는 좁은 공간에서 불빛도 없이 평생을 살아간다는  웬만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할 겁니다. 그럼에도 수백  동안 핍박을 받고 콜로세움에서 죽임을 당하면서도 그들이 믿음을 지킬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믿음이 강하다는  그만큼 간절하다는 뜻이겠지요. 그들이 목숨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믿음은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별것 아닌  하지만, 고통과 핍박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유일한 구원이었을 겁니다. 과거 어떤 신도 가난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먼저  내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신이라는 이름의 고통과 벌이 따를 뿐이었죠. 하지만 나사렛 지방에서 나타난 메시아는 우리를 위해  흘리시고 죽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죄악에서 해방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보잘것없는 이들에게는 죄악을 벗고 새롭게 거듭날  있다니 믿음이 강해질 수밖에요.



  진정한 강인함은 바로  지점에서 태어난다고 생각해요.  어떤 고통도 흘려보낼  있는 지혜를 갖는  임을 말입니다. 비단, 로마시대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에도 마찬가지 같아요. 극한의 고통이 닥치면 우리는 굴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의 골짜기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고통스러운  당연한 겁니다. 아픔 때문에 무릎 꿇고 좌절할 수밖에요. 그렇지만, 어둠의 시간은 힘을 비축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아파만 하기에는 우리 삶은 소중합니다. 영화 <벤허>에서 유다 벤허는 모함으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가족은 생사도 모른  흩어져버렸어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무려 5 동안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노예선에서 끝까지 살아남지요.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아무렇지 않을 상황에서!



  유다 벤허는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가족을 멸문시킨 멧살라를 찾습니다.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복수를 예고하고 전차 경주를 통해 복수를 실현합니다. 보통의 영화라면 권선징악의 가족의 원수를 갚는 것으로 끝날 법하지요? 하지만, 멧살라는 피의 복수는 끝나지 않았다며 또 다른 숙제를 남깁니다. 바로 한센병에 걸린 가족을 보며 영원히 고통스러워하라는 것이었지요. 벤허는 멧살라를 넘어 로마에 대항하려 합니다. 증오가 증오를 낳은 셈이지요. 피는 피를 부르고, 죽음은 죽음을 부르며 탐욕은 탐욕을 낳습니다. 그런 유다 벤허의 모습을 보며 연인 에스더는 그가 그토록 복수하고자 했던 멧살라가 된 것 같다고 외칩니다. 그가 파괴하려 했던 악을 악으로 맞서려는 것이었지요. 그런 와중에 예수를 만납니다.

<예수와 유다벤허>

  유다 벤허는 예수를 보고 한눈에 알아봅니다. 노예시절에 지쳐 쓰러졌을  물과 살아갈 힘을 줬던 사람이라는 것을요.  메시아는 원수를 사랑하고 너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선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라고 읊조리는 예수의 모습을 보면서 손에 들려있던 칼도 내려놓을  있게 됩니다. 죽음을 당하면서도 그들을 용서하는 예수의 모습이 그를 지혜롭게 만들었지요.



  콜로세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없이 죽었을 겁니다. 로마 시민들은 그런 모습을 보며 열광했겠지요. 하지만, 지켜보는 자가 멸망되었고 죽은 자가 믿었던 믿음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로마 시대에 발달했던 아치의 형상만 봐도 알듯 해요. 위에서 누르는 힘을 아래쪽으로 유연하게 흘려보냅니다. 강한 힘은 맞서는  아니라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하는  자연의 법칙인가 봐요. 가장 어둡고 음침할 , 새로운 힘이 싹틉니다.  힘은 온유하고 부드러우며 따뜻하지요.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는 성경의 말씀처럼 말입니다.



[참고]

- 강성률_ 권으로 읽는 서양철학사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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