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공백을 채우다,
관계의 공백을 연결하다

[아트라이프 공백] 프로젝트 연대기 ③ - 완결

by 패스파인더 C

누군가에게 '2025년 당신이 새롭게 시도한 일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아트라이프 공백’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을 꼽을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부산 로컬 문화판에서 꾸준하게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일 잘하는 기획자들이 함께 모여 자유롭고 재미있게 도모했던 꿍꿍이었다.


우리는 2025년 한 해 동안 총 3번의 아트라이프 공백을 만들었다.

첫 번째 공백은 1월, 영도의 아트스페이스 원지에서,

두 번째 공백은 4월 F1963에서 아트마켓 망미장과의 콜라보 행사로,

세 번째 공백은 8월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유통 프로모션 사업의 일환으로 공예를 주제로 카페 듀스포레에서 열렸다.


이 글에서는 지난 2025년 부산에서 열렸던 [아트라이프 공백]이라는 작지만 의미 있었던 시도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고자 한다.




지속가능한 예술 작품 유통의 실마리를 발견하다


두 번째 아트라이프 공백을 준비하면서 우리와 결이 맞는 공모사업을 발견했다.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의 [공예유통 프로모션] 지원사업이었다.

공예작품의 유통 활성화를 위해서 다양한 경로의 판로를 개척하는 사업이었다.


그간 공백에 참여했던 작품들이 모두 공예는 아니었지만, 우리가 고민해왔던 질문과는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일상 가까이에서 만나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 감상 이후의 시간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었다.


앞선 두 번의 공백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는 작품 감상과 구매 사이의 간극을

체류의 시간, 관계의 연결로 지속가능한 예술생활을 부르는 확장된 예술경험을 실험해보고 싶었다.


다행히도 첫 도전에서 사업에 선정되었고, 세 번째 공백은 그 고민을 한 단계 더 확장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규모가 커졌다는 의미보다, 우리의 질문을 더 분명하게 밀어붙여 볼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더 의미 있는 시작이었다.



세 번째 아트라이프 공백 - 감상과 구매를 넘어선 예술경험의 공백을 메우다


공백을 메우는 실험이라는 '아트라이프 공백'이 이번에는 어떤 공백을 메울 수 있을까.


첫 번째 공백은 하루짜리 팝업 형식으로, 가능성을 시험해보는 자리였다.

두 번째 공백은 주로 전시와 판매에 전면에 두며 관객의 접점을 넓혀보는 실험이었다.

세 번째 공백은 앞선 두 실험 사이의 공백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감상, 구매 행위를 넘어, 낯설면서도 유쾌한 연결이 일어날 수 있는 지점을 만들어야 했다.


세 번째 프로젝트 장소는 정원이 딸린 아름다운 카페인 듀스포레를 선택했다.

듀스포레는 평소에는 브런치 카페로 운영되면서, 스몰웨딩과 같은 작은 행사 장소로도 활용되는 공간이었다.

주택가 한가운데 있어서 인근 주민들도 자주 찾는 사랑방 같은 공간이었다.

메인 홀과 별실, 마당까지 이어지는 구조는 동선을 단순히 ‘이동’이 아니라 ‘머무름’으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전시를 보고, 잠시 쉬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흐름이 하나의 리듬처럼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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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준비 중인 기획자들(좌), 듀스포레 전경(중, 우), (출처-듀스포레 인스타그램)


새로운 시도 - 실패와 도전의 경험을 공유하는 <재미진 부산>


우선 처음 시도하는 프로그램으로 토크 콘서트 [재미진 부산]을 기획해 보았다.


'재미지다' 라는 단어에서 착안한 이 자리는, 지역에서 도전과 실패, 재도전으로 업을 이어나가는 문화기획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결과로만 기억되는 사람들의 전후 순간들을 꺼내보고 싶었다.

어쩌면 그것은 나 자신의 질문이기도 했다. 지역에서 일을 이어가며 흔들렸던 순간들이 다른 이들에게도 낯설지 않다면, 그 경험을 공유하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연결이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공백은 전시장이 아니라 대화의 장이자, 연결의 플랫폼이 되기를 바랐다.


첫 번째 게스트는 영화기획사 로켓트필름의 김영진 대표와, 로컬바이로컬의 홍순연 대표다.

그들은 처음 입직했던 순간부터 고비의 순간, 실패라고 생각했던 아픈 기억, 그럼에도 다시 이어지는 일의 경험들을 허심탄회하게 나눠주었다.


김영진 대표는 부산 원도심에서 영화를 가까이 두고 자란 뒤 서울에서 프로듀서로 성장했고, 독립해 회사를 세웠다. 그러나 야심차게 준비한 프로젝트가 무산되며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영화가 아닌 일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기의 불안과 망설임을 담담하게 꺼내 놓았다. 이후 영화 「소풍」을 통해 다시 자리 잡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성공보다 그 사이의 시간을 더 오래 붙들고 있었다.


홍순연 대표 역시 전형적인 경로를 벗어난 사례였다. 건축학을 전공하고 근대건축유산을 연구하며 도시재생과 기업 사회공헌 현장을 넘나들었다.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 때마다 겪었던 낯섦과 부담, 경영의 압박, 육아로 인한 공백의 시간까지 숨기지 않고 이야기했다. 그 고백은 화려한 성취보다 더 깊은 공감을 만들었다.


이 자리에서 공유된 것은 성공의 결과가 아니라, 흔들리던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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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진 부산-홍순연 대표 편


또 다른 토크로는 공백을 만든 기획자 5명(한 명은 시간이 안 맞아 불참)의 토크, 전시 참여 작가 3인의 토크가 준비되었고, 특별 게스트로 중국 심천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Kaiqin Zhang의 작품 활동을 소개하는 자리도 함께 마련했다.


오프닝 행사로 작은 공연을 마련하고, 모르는 사람들과 계속 연결될 수 있는 네트워크도 오랫동안 이어졌다. 주말 이틀 동안에는 전시장 밖에서 아트마켓을 함께 꾸려서 더 다양한 작가와 작품들이 소개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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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라이프 공백 세번째 행사 사진
스크린샷 2026-02-19 143605.png 아트라이프 세 번째 전시 포스터


아트라이프 공백이 남긴 것 - 일상의 공백을 채우다, 관계의 공백을 연결하다


사실 4일 동안 기획자들이 공간을 지키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 작은 변수들도 끊임없이 생겼고, 더운 여름 날씨는 피로를 더했다.


그러나 그 시간은 하나의 질문을 또렷하게 만들었다.


기성의 예술 현장은 대개 결과 중심으로 작동한다.

전시는 열리고, 공연은 끝나며, 프로젝트는 마감된다.

작품은 완성된 장면으로만 소비된다.

그 앞뒤의 시간, 흔들림과 맥락, 실패와 재시도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우리는 바로 그 ‘사이’를 드러내고 싶었다.


아트라이프 공백은 그 간극에 잠시 개입해 보는 실험이었다.

작품을 보여주는 데서 멈추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사람들의 시간까지 함께 드러내는 일.

성공의 결과만이 아니라 과정의 흔들림까지 공유하는 자리.

속도가 아니라 체류를 허용하는 구조.


감상과 구매의 간극을 줄이려던 시도는 결국 더 큰 질문으로 이어졌다.

예술은 왜 항상 완성된 결과로만 사람을 만나야 하는가. 그 앞과 뒤의 시간은 왜 현장에서 사라지는가.

세 번의 공백은 완성된 대안 모델이 아니다.

다만 다른 가능성을 잠시 증명한 장면이었다. 예술은 더 느리게, 더 오래, 더 맥락 속에서 만날 수 있다는 가능성.


공백은 채워졌다고 말하기 어렵다.

대신 우리는 빈 공백의 새로운 가능성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인식은 이후의 시도를 조금 다르게 만들 것이다.


다음 실험도, 아마 그 ‘사이’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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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라이프 공백(Artlife 0100) 을 함께 만든 사람들 -


홍순연 / 부산지역 어묵 브랜드 삼진어묵의 사회공헌사업 '삼진이음' 프로젝트를 이끌었으며, 지금은 로컬 콘텐츠 기업 로컬바이로컬 대표를 맡고 있다.

이인미 / 건축분야 사진작가이자 도서출판 비온후의 대표, 망미동에서 비온후 책방을 운영하며 기록과 공간을 잇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김미희 / 문화기획 기업 올아트22 대표이자 진주공예비엔날레 총괄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지역 작가들과 호흡하며 다양한 전시를 기획하고 있다.

박나리 / 로컬잡지 <다시부산>을 만들었고, 문화기획 홍보 전문기업 다시부산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임현지, 이송 / 영도복합문화공간 아트스페이스 원지 운영에 참여하였고, 현재 콘텐츠 IP 브랜딩 기업 모노링크를 운영하고 있다.

원향미 / 부산문화재단 정책기획센터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부산지역 문화환경을 파악하고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연구 업무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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