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은 우리가 잘 아는 팝송 'We are the world'가 녹음된 단 하룻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날 밤 녹음실에 모인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뮤지션들이었다. 녹음을 총괄했던 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녹음실 문 앞에 이런 메모를 붙였다.
'Put Your EGO at the door.'
자존심은 문 앞에 두고 들어오라.
단순한 이 문구는 녹음실에 들어오는 톱클래스 가수들에게 하나의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이다.
이곳에서는 개인의 명성보다 음악이 먼저라는 것.
이 문구가 실제로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하룻밤 만에 위대한 명곡이 탄생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애플 TV에서 명작으로 손꼽히는 드라마 '테드 래소'에는 비슷한 메시지를 담은 대사가 나온다.
'Be curious, not judgemental.'
판단하기보다 호기심을 가져라.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주인공인 축구 감독 테드와 전 구단주 루퍼트가 우연히 술집에서 만나 다트 대결을 펼치게 된다. 전용 다트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다트에 일가견이 있는 루퍼트는 테드와 내기 경기를 시작하게 되고, 테드는 마지막 결정타를 날리며 앞선 멘트를 날린다.
테드는 사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와 매주 다트클럽을 다녔을 정도로 다트의 실력자였다.
그러나 루퍼트는 테드를 어리바리한 축구감독 정도로 쉽게 단정해버렸다.
만약 그가 테드에 대해 조금만 더 호기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졌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까.
자존심은 문 앞에 두고 들어올 것,
판단보다는 호기심으로 세상 만물을 바라볼 것,
이 태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절실히 필요하다.
나 또한 그동안 쌓아온 것들에 기대어 나의 에고와 선입견에 사로잡혀 세상을 바라본 것은 아니었는지 반성하게 된다.
최근 조직에서 새로운 업무를 제안받아 나의 전문 영역과 조금 거리가 있는 신규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다.
물론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내가 중장기 전략을 짰던 과업의 일부였기에 완전히 낯설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조직에서 유일한 특수 직군으로 자의 반타의 반 한 영역의 업무에 집중해 온 나에게는 낯선 역할인 것은 분명했다.
전략적으로 중요한 일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스친다.
"조직에서 내가 제대로 인정받고 있는 걸까"
누구나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는 순간이 있다.
특히 나이가 들어맞게 되는 낯선 환경은 소위 지금까지 쌓아온 본전(?)을 생각하게 만든다.
'이거 하려고 내가 지금까지 고생했던 것인가?'
이런 생각들이 스멀스멀 올라오게 되면 지금 나의 처지에 대한 한탄만 나올 뿐이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경험치가 많은 이들이 빠지게 되는 함정인 '이런 사업 예전에도 해봤는 데...'라는 막연한 선입견으로 새롭고 신선한 관점은 사라지기도 한다.
우리는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동안 축적된 나의 커리어에 반하는 경험을 해야 할 순간이 계속 생길 것이다.
최근 끝난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부장 이야기'에서처럼 정리해고 후 새로운 직장을 구하면서 느끼는 감정은 복잡다단하다.
그동안 전문성이라고 생각했던 강점이 광야에 나와보니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느끼게 되는 그 순간
우리는 어떠한 태도와 감정으로 일상을 맞이해야 할까.
라이언 홀리데이의 책 '에고라는 적'이라는 책에서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지금까지 당신이 무엇을 이루었든 간에 앞으로도 여전히 배우겠다는 자세를 가지는 것이 좋다. 만일 지금 당신이 배우고 있지 않다면 당신은 이미 죽어가는 중이다. 다만 시작하는 학생처럼 배우는 자세를 가지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서, 그리고 모든 사물과 상황으로부터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 당신에게 패배한 사람에게서, 당신이 싫어하는 사람에게서 그리고 심지어 당신이 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배워야 한다. 인생의 모든 단계와 걸음걸음마다 배움의 기회는 늘 존재한다.'
에고는 때로는 나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다.
에고가 실종되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의 존귀함을 잊게 된다.
그러나 에고가 내 삶을 지배하게 되면 우리는 나만의 장벽에 가려 고립되기 쉽다.
어느 정도 삶이 익숙해지고 나의 커리어가 영글어가는 순간 맞이하는 새로운 환경에서는 오히려 에고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마음 한편에 보관하는 것이 현명할 수 있다.
과거의 본전도 생각할 필요가 없다.
앞으로 배워야 할 정보들, 만나야 할 사람들, 보내야 할 시간들에 대한 설렘을 더 많이 채워야 한다.
낯선 환경에서 고군분투하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면 나의 에고는 더 단단해져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에고를 다시 돌봐야 할 순간은 바로 그때일 것이다.
에고 뒤에 가려진 새로운 기회와 호기심을 잊어서는 안 된다.
새로운 환경에 처하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든,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나의 에고와 적당한 거리 두기로 낯선 도전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기 위한 선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