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에너지가 별로 없는 사람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분부전증 증상을 겪고 있는 사람이다. 최선을 다하다가 한계치를 넘어버리면 나의 정서적 , 인지적 상태는 바닥을 찍어버린다. 죽고 싶을 정도로 비관적이 되어버리고 무기력해졌다가 극도로 예민해져서 참을 수 없는 짜증이 폭발한다. 나 자신도 정말 뭐라 설명할 수 없이 괴롭지만 함께 살고 있는 반려자에게도 영향이 안 갈 수가 없다. 한번 이렇게 바닥을 찍으면 회복하는데 꼬박 한 달이 걸린다. 수없이 반복해 온 경험으로 나는 무리가 될 것 같은 행동을 본능적으로 거부해 왔다. 나의 한계치가 남들보다 낮다는 것을 까먹으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또 나는 자극추구형 사람이다. 매일 똑같은 일상을 지루해하는 편이라 자주 한 번도 안 가본 동네에 가서 산책을 하고 여기저기 맛집탐방도 다니고 주기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해주지 않으면 답답함을 느낀다. 내가 의도하진 않았지만 20살 이후로 거주지도 1~2년마다 바뀌었고 그중에는 해외도 있었다. 너무 똑같은 루틴을 반복하는 계획은 나에게 실효성이 없다.
이 두 가지 요소들은 늘 충돌한다. 무기력에서 빠져나와 조금 기력을 되찾고 나면 어느 순간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은 동기가 자꾸 샘솟는데 이때 조절해주지 않으면 개복치처럼 고꾸라져버린다. 뭐랄까 이런 한계를 가진 삶은 참 답답한 삶이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가 극심하다고 해야 하나. 나름 살면서 이상을 많이 낮춘 건데도 이렇다.
이러다 보니 성과가 잘나지 않다. 나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지난 2~3년간 커리어를 쌓지 못했다(백수였다는 말이다). 커리어와 나의 사정을 병행할 자신이 없어서 이런 선택을 했다. 중간에 병행을 시도하긴 했는 데 잘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무서워하게 된 현실 안에서도 작은 시도들은 계속되었지만 작은 시도답게 눈에 보이는 결과도 작고 느리다. 사실 작더라도 잘 생각하면 절대 당연한 게 아니고 감사함이지만 어째 부전증 때문인지 성취감이 쉽사리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런 사람도 있다고 말하고 싶었고 분명 어딘가에 있는 나 같은 사람에게 너만 그런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글이 너무 부정적으로 흐른 것 같은데 사실 나는 꽤 잘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자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어떻게 쓸 수 있을까 고민하고 도전하면서 조금씩 더 건강해지고 풍성해지려고 노력 중이다. 그냥 왜인지 모르게 오늘따라 남들보다 내세울 게 없는 삶이 서글퍼서 글을 끄적였다. 센치하다는 게 이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