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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Mar 23. 2018

패터슨의 시간

: me time


*이 글은 영화 패터슨(Paterson)의 스포일러가 될 수 있습니다.
영화 패터슨을 봤다. 뉴저지 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 사는 '패터슨'의 이야기다. 주인공은 아담 드라이버. HBO 드라마 시리즈 Girls를 통해 이 배우를 알게 됐다. 진지할 땐 한없이 가라앉고, 가벼울 땐 시끄럽고 바보 같은 목소리를 가졌다. 여기저기 얼굴 위에 흩뿌려진 듯한 점과 안짱다리를 하고 어슬렁어슬렁 걷는 모습이 좋다. 아담 드라이버는 영화에서도 여전히 드라이버다. 버스 드라이버를 연기한다. 매일 아침 6-7시 사이에 일어나 시리얼을 먹고, 녹색 양철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잔잔하게 꿈틀거리는 일상. 운행 시작 전 운전석에 앉아 시를 쓰는 순간이 그렇다. 핸들 위에 노트를 올려놓고 조용히 문장을 짓는다. 훌륭한 시인이다. 받아 적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영화 초반 내레이션으로 나왔던 성냥갑은 몇 번의 매만짐을 거쳐 근사한 사랑의 매개체로 거듭나기도 한다. '시크릿 노트'에 기록했던 시들은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생각하고 쓰고 다듬었던 순간은 그의 몸 어딘가에 작은 세포 단위의 기억으로나마 남았을 테지. 

매일 아침 뜨거운 물에 사과 식초 한 스푼을 넣고 레몬을 띄워 마신다. 한 달 정도 된 것 같다. 시큼한 자극으로 미각이 돋는 순간 잠에서 완전히 깨어난다. 조용히 읽고 조용히 적는다. 시간은 빠르게, 아주 빠르게 달리지만 목적지는 항상 같다. 희미한 것들이 깨끗하게 걷힌 청명한 지점. 아침의 여유를 누리는 사람이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한다던 누군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돈다. 내 뜻대로 각색되었을 수도 있지만 요점은 같으리라. 앞으로는 '패터슨의 시간'을 늘려갈 생각이다. 종이와 팬과 함께. 아마도 걷어내야 할 말과 정리되어야 할 생각은 테트리스 블록처럼 쉼 없이 내려올 거다. 깨지 못한 블록은 또 다른 블록을 더 빠르게 쌓겠지. 모래알같이 가볍게 날리던 시간이 큰 바위가 되어 내 앞에 놓여 있는 느낌이다. 통나무를 구해 천천히 굴려봐야지. 때마침 필요했던 말을, 어쩌면 듣고 싶던 말을 듣게 되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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