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나는 무엇 때문에 살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이 힘들고도 지겹고도 지겨운, 때로는 행복감에 닭살이 돋고 광대가 아릴 정도로 웃어보기도 하는 삶을 왜 이어가는 걸까.
어쩌다가 혹은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태어났기에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내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가끔 찾아오는 행복감 때문일까,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일까, 흐르는 눈물이 따뜻해서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렇다고 하기엔 지겹게 느껴지는 날이 더 많은 것 같은데 말이다.
살면서 모두 다 한 번씩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심오한 질문을 자주 물어오고 은근히 즐기는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럼 곰곰이 생각에 잠겨보다가 답변을 내놓지 못한 채 포기하곤 한다.
너무 많은 답변들이 떠올라 정리가 안된 채 마구 섞여있어서 이기도 하고, 정말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어서 이기도 하다. 한 가지 답만을 정해 놓는 것이 편한 편협한 나는 복잡한 생각이라면 차라리 포기를 해버리는 편이다.
친했던 고등학교 친구 한 명에게 잘 지내고 있냐고 물어보면 그 친구는 항상 "죽지 못해 사는 거지 뭐"라고 답변을 했었다.
그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 언뜻 보기엔 입버릇처럼 그냥 쉽게 툭 뱉은 말 같기도 했고, 아니면 정말 내가 모르는 그 친구만의 지옥세계에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각자 자신만의 지옥세계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더라도 죽지 못해 사는 삶이란 건 정말 지옥세계만 있는 삶이 아닐까.
감히 가늠조차 할 수 없는 고통일 것 같다. 살고 싶은 날이 없는 거니까.
평일이면 매일 같은 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퇴근 후에는 크게 벗어나는 것 없이 나와의 약속으로 하루를 채우려고 노력하고, 이미 뚫려진 뇌의 회로를 따라 흐르는 비슷한 생각들과 자연히 따라오는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비슷한 생각들 덕에 수반되는 괴로움. 그럼 그 생각들을 벗겨내려 발버둥 쳐보지만 글쎄다.
회로를 바꾸기 위해 따로 기능사 자격증이라도 필요한 건지, 노력해 봐야 그 언저리의 생각들뿐인 것만 같다.
그럼 강원도에 가서 시퍼런 바다를 본다거나, 독립서점에 가서 공간이 주는 안온함을 느끼고 마음에 드는 책을 산다거나,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가끔 먹는 술을 먹고 취해 한 명이 " 이 맛에 사는 거지" 하면 모두가 공감하는 듯 복창하고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인생 뭐 있어"라는 생각도 함께 하며 그 맛들로 내가 살아가는 걸까.
아니다. 사실 난 그 맛에 살지는 않는다. 그 순간들의 기분은 분명 그러했지만 그건 단지 기분일 뿐이고 기분은 결국 지나간다.
그것들이 내가 살아가는 이유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그럼 나는 무엇 때문에 살아가는가. 어떤 이유로 삶을 버티고, 나를 견뎌내는가.
그럼에도 내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이유는 단연 내일이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겠다. 지겨운 날들을 이어가고 싶다는 소리를 하고 싶은건가? 그 내일도 어차피 오늘이 되어 똑같은 날들의 반복일 텐데.
그러나 내일은, 내일의 나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로 나의 삶은 이어진다.
내일은 아주 기똥차게 아침을 맞이할 것이고, 음식물을 꼭꼭 씹어서 음식의 좋은 영양분들을 모조리 다 흡수할 것이며, 과자는 먹지 않을 것이며, 강박의 파도는 잠잠할 것이며, 그것들이 덮친다면 태연하게 서핑을 할 것이며, 조금 더 선한 사람이 될 것이며, 방향지시등은 잊지 않을 것이며, 배울 것이며, 땀 흘린 몸을 개운하게 씻겨줄 것이며, 하체 운동은 빼먹지 않을 것이며, 샐러드를 챙겨 먹을 것이며, 영어 공부를 30분 이상 할 것이며, 책과 오붓한 시간을 즐길 것이며, 글이 술술 써질 것일 것이며, 나를 사랑할 것이며, 감사할 것이며, 지금을 느낄 것이며, 그럼에도 괜찮을 것이며, 수고한 나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넬 것이며, 비로소 내일의 나는 오늘을 살게 되었다며 꿈도 꾸지 않는 단잠에 들 것이다.
나에겐 내일이 있기에 오늘의 나도 있을 수 있다. 내일이라는 종교에 난 오늘의 삶과 내 모든 걸 바치고 기도하며 꿈꾼다.
그렇다, 쓰면서도 읽으면서도 이상함이 감지된다. 오늘의 내가 있어야 내일의 나도 있을 텐데 거꾸로 생각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만약 내가 오늘에 있는다면 어제와 비슷한, 늘 그랬던 것처럼 그저 그런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어쩌면 조금 더 나아져있을 수도 있고, 완전히 무너져 내린 오늘을.
그리고 견뎌내야 한다. 지금을. 권태로움을. 불완전함을. 슬픔을. 외로움을. 사랑하지 못한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한 날을. 사랑하지 못한 나를.
그렇게 나는 내일을 위해 오늘을 견뎌내고, 오늘을 위해 내일에 모든 걸 바친다.
내일은 기적이 일어날 것이라며.
오늘을 팔고 내일을 사는 나는 "내일 인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