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

by 교씨

단연 여름 별미는 콩국수라 할 수 있겠다.

한겨울이 지나고 아직 패딩 벗기는 춥지만 겨드랑이에선 슬그머니 나오는 땀에 미끄러지는 3월에 들어서면 진한 콩 국물이 생각난다.

본가 근처에 콩국수 파는 집들이 모여있는 일명 콩국수 마을이 있다.

3월인데 불구하고 여름이면 치열한 경쟁을 할 테지만 사이좋게 모여있는 식당들에 전화를 걸어본다.

3월 중순부터 개시한다고 하여 일주일을 참아내고 당일이 되자마자 외투를 걸치고 먹으러 갔다.

여름이면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인데 그날 손님은 나 혼자뿐이었다.

마치 내가 콩국수의 창조자라도 된 듯 시작을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사장님께서 물을 가져다주셨지만 이날 나에게 물이란 콩 국물뿐이어서 마시지 않는다.

이 정도로 이 음식에 진심이다.

개인적으로 뽀얀 국물보다는 거무스레한 서리태 콩국을 선호한다.

내 기질도 맑기보단 어두운 쪽에 가까워서 인지.

반찬들을 집어먹고 있다 보면 기다리던 콩국수가 나온다.

검은콩들의 몸은 말끔히 갈리지 못한 채 수많은 점으로 남아 회색빛을 띄는 국물의 공백을 메우고 있었다.

찬물에 한번 들어갔다 나와서 인지 탱글 해 보이면서 영롱한 노란 면발은 국물에 다 잠기지 못한 채 머리를 내밀고 있었고, 그 모습은 더욱 군침을 돌게 만들었다.

그 위에는 채 썬 오이들이 가지런히 누워있었다.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숟가락을 들고 간도 하지 않은 폭신한 국물을 두어 번 퍼먹는다.

혀에 생전 덮어보지 않은 이불을 덮는 느낌이랄까.

마땅히 씹어야 할 것은 없지만 나도 모르게 씹어 삼킨다.

그럼 고소함은 더욱 선명해진다.

짠맛은 느껴지지 않고 고소함에서 나오는 약간의 단맛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서 빛을 잃은 잔흠집 가득한 쇠젓가락을 이용해 둥그스름히 뭉쳐있는 면들을 살살 풀어본다.

흩어지면 먹힌다는 것을 아는 듯 꽤나 단단히 뭉쳐있었다.

콩 국물 범벅이 되어버린 면발을 들어 올려 먹는다.

쫄면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느낌의 탄력과 졸깃함,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면발의 식감이다.

면발 겉은 콩 국물에 보호를 받으며 폭신하고 부드럽게, 이어서 면의 잘빠진 매끄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밑간 없는 본연의 맛을 즐긴 후에야 자리마다 배치되어 있는 소금 부대를 투입시킨다.

최대한 면에서만 짭짤함을 느낄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흩뿌린다.

그러면 배달음식에서 맛볼 수 있는 극단적인 단 맛과 짠맛이 아닌, 심심함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단짠의 조화를 누릴 수 있다.

심심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건강한 맛에 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어느새 무엇을 먹은 흔적만 남긴 빈 그릇이 앞에 놓여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은 깨끗한 상태로 만들어 놓고 싶었지만 이 음식의 특성상 그러려면 혀로 설거지를 해내야만 한다.

그걸 본 사장님은 그만큼 우리 집 콩국수가 맛있나 보다 하며 한 그릇 더 내어 줄 수도 있고, 블랙리스트 명단에 올려버릴 수도 있다.

혹시 모를 위험을 굳이 감수하고 싶진 않았다.

간식이라고 해야 할지 끼니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간식이자 간식에선 느낄 수 없는 포만감을 불러오는 끼니로도 볼 수 있겠다.

얼마나 신비로운 음식인가.

이 신비로운 여름과 콩국수를 모두가 나름대로 잘 누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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