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

by 교씨

어젯밤, 다음 날 아침에 등산을 가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아침이 되어 오늘의 꿈자리가 영 시원찮아서 다짐은 실행될 수 있었다.

잡념의 부산물인 번뇌를 조금은 덜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품고 산으로 향했다.

어제는 포근했던 날씨가 하루아침에 무척 겨울스러워졌다.

살갗에 닿는 바람은 몹시 추웠지만, 안에 들어있는 나는 춥지 않았다.

이제야 비로소 내 마음의 온도와 얼추 비슷해졌기 때문이다.


산의 초입에서 사람들이 조금 보이다가 어느 정도 올라와 보니, 어느새 산속에는 덩그러니 나만 남겨진 것 같았다.

그건 꽤나 짜릿했다.

마치 산이 내 소유가 된 것처럼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하지만 번뇌는 사라지지 않았고, 과연 이 고통의 터널에는 끝이 있긴 할까 두려워하다, 끝내 산을 불신하기까지 이르렀다.

결국엔 산도 나의 고통을 무찌르지 못하는구나 하며 터벅터벅 걸어 나갔다.


걷다 보니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를 쪼아대는 모습을 보곤 멈춰 섰다.

그 소리를 시작으로 산속에서 쉴 새 없이 오가는 자연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산행을 이어갔다.

바람이 입김을 불어넣으니 산에 살 고 있던 모든 이들이 소란스럽게 떠들었다.

벌거벗은 나무와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낙엽들이 가까스로 입을 열었고,

새들은 그것도 모른 채 천진난만하게 수다를 떨었다.

이방인인 나는 그 소란 속에서도 단 하나의 언어조차 알아듣지 못한 채 걸어 나갈 뿐이었다.

때로는 알아듣지 못하고, 들리지 않는 것이 이로울 때가 있다.

덕분에 나는 귀와 정신의 피로감을 덜어낼 수 있었다.


혼자 다녀서 좋은 점은 내가 멈춰 서고 싶을 때 멈춰 설 수 있고, 걷고 싶을 때 걸을 수 있고, 뛰고 싶을 때 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중 단연 가장 좋은 것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가만히 서서 보고 싶을 때까지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가냘픈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빛일지라도.

단점이라면 조금은 쓸쓸하다는 것.

하지만 이내 쓸쓸함이 옆에 있어 더 이상 쓸쓸하지 않을 수 있었다.


가방에 챙겨 온 디카를 꺼내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것들을 담아낸다.

한 몸이었던 나뭇잎은 낙엽이 되어 앙상한 몸을 드러낸 나무, 생기를 잃고 죽음을 기다리는 푸르던 낙엽들, 아무도 없는 길거리.

비로소 우린 우리가 될 수 있었다.

더 이상 외롭지 않을 수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평온하던 마음은 조급해진다.

뭐랄까, 나만의 게임이라고 해야 할까.

얼마 남지 않은 거리를 단 번에 해치워버리고 싶은 귀여운 마음이다.

그럼 숨이 넘어갈 것 같더라도 절대 멈추지 않고, 끝내 게임에서 승리를 쟁취한다.

얼마 만에 느끼는 성취감이던지, 만족스러운 게임이었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하산하는 길,

산을 불신하던 나는 어느새 터널에서 빠져나온 희망이 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끝없던 터널의 끝을 나는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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