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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미어먼 스콧·레이코 스콧, 『팬덤 경제학』
((주)미래의창:2021)
궁금한 뮤지션의 음악을 음반 단위로 감상하기, 집중이 필요한 순간에는 현대음악이나 엠비언스음악을 틀어두기, 매일 새벽 6시 이전에 일어나 고요한 환경에서 명상하고 책 읽기, 일주일에 1번은 제철 채소로 요리하고 식사하기, 일주일에 최소 2번은 킥복싱 수업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그리고 세븐틴. 좋아하는 것으로 나를 말하자면 끝도 없이 댈 수 있다. 중요한 건 그것을 왜 좋아하며 그것들 사이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내가 호기심을 갖고 듣는 이야기는 대체로 나와 세상의 연결감에 관한 내용이다. 박정현의 ‘꿈에’가 누군가에게는 연인의 이별로 와닿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가족의 상실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이야기가 내포하는 감정이 깊고 넓을수록 오래 마음에 머문다. 작년부터 요리 수업을 듣게 된 계기도 그렇다. 농작물의 재배와 지구 생태계의 연관성은 먹는 일뿐만 아니라 입고 사용하는 등 모든 소비 생활에 관한 나의 사고를 바꾸었다. 이렇듯 나의 모든 행동에는 [연결]을 지향하는 바람이 담겨 있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는 보이그룹 세븐틴이 출연하는 tvN 예능 프로그램 <나나투어>를 보면서 홈트레이닝을 했다. 바쁜 스케줄 중에도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는 멤버들의 모습을 보고는 활동량이 부족했던 오늘의 나를 돌아보며 자극을 받았기 때문이다. 세븐틴을 좋아하는 일에서도 세상과 연결되고 싶다는 나의 소망을 확인할 수 있다. 세븐틴을 좋아하는 팬들과 더 많이 만나고 싶고, 그들과 삶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나누고 싶고, 그들과 함께 각자의 이상에 도전하고 싶은 소망. 세븐틴이 그러하듯이.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자기 삶에서 경험하고 체화한 화두가 내가 좋아하는 대상과 강력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알면, 소비자는 팬이 된다. 대중은 팬이 된다. 만약 팬 대상이 인물이거나 서비스라면, 팬 대상은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노력을 비롯해 팬과의 교류를 도모해야 한다. 나는 그 지점에서부터 팬덤 경제학이라는 말을 조심스레 사용할 수 있다고 본다. 모순된 진정성과 무분별한 상업성으로 빚어진 팬덤은 삶과의 유약한 연결성으로 금세 왜곡되고 퇴색된다.
팬이 된다는 것은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다른 사람들과 이를 공유하며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으로 그 행동의 결과는 다른 사람들이 거울 삼을 수 있는 모델이 되기도 한다. (p. 20-21)
‘패노크라시 Fanocray’는 팬이 통치하는 문화로, 공동의 노력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을 결속시키는 행위다. 조직이나 개인이 팬들을 존중하고 그들 사이의 의미 있는 관계를 의식적으로 키워나가는 행위를 말한다. (p. 35)
사람들은 혼자 있고 싶어하지 않는다. 함께 있고 싶어한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공유하는 감정의 힘은 더욱 강해진다. 근접성의 영향력은 … 교환하는 모든 것의 감정적 영향력이다. … 팬은 무언가를 따르려는 계산적이고 지적인 결정 때문이 아닌 그들의 열정, 감정, 즐거움 때문에 만들어진다. (p. 73)
브랜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강력한 도구일 뿐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지 탐색하는 방법이기도 하다. 단지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방법인 것이다. (p. 169)
기업이 하는 일에 대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람들을 그 세계로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즉, 고객이 자신의 경험을 만들고 기업이 하는 일의 중요한 일부가 되게 하는 것이다. (p. 230)
이것이 팬덤이 하는 일이다. 팬덤은 사람들을 서로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게 하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눌 수 있게 해준다. 즉, 서로를 알아가는 소통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팬덤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그 행복감으로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는다. (p. 330-331)
『팬덤 경제학』은 2020년 Fanocracy: Turning Fans Into Customers and Customers Into Fans로 발간되어 1년 후인 2021년에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 마케팅 전문가이자 록 밴드의 팬인 데이비드 미어먼 스콧, 뇌신경과학을 다루는 의사이자 만화의 팬인 데이비드 레이코 스콧. 두 사람은 부녀 사이로 이 책을 한두 챕터씩 번갈아 가며 집필했다. 전공, 세대, 성별 등 다양한 차이점을 가진 두 사람이 공저에 이름을 올린 데에는 ‘팬’이라는 강력한 정체성 공유가 있었다.
흔히 양육자와 피양육자 사이에서 이런 관계는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피양육자의 팬 생활을 엄격하게 부인하고 제재하는 상황. 이 관계는 사뭇 다르다. 일단 양육자가 록 밴드의 열렬한 팬이다. 라이브 공연 필수 참석에 타인의 노트북에 붙은 시그니처 스티커를 반갑게 알아본다. 피양육자가 진로 문제로 고민할 때 라이브 공연을 권유하는 데서 소통의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좋아해 본 사람만이 좋아하는 마음을 안다는 논리의 좋은 사례인 것이다. 그 점에서 마음이 놓인다. ‘팬덤=돈’이라는 말을 하려는 책은 아니겠거니 하고.
두 사람은 줄곧 좋아하는 마음에서 힌트를 발견하고 그것을 아주 즐겁게 이야기한다. 아버지인 미어먼 스콧이 객관적 사례를 위주로 서술 후 ‘그래서 나는 이 브랜드의 팬이 됐다’라는 식의 발랄하고 산뜻한 결론을 내리면, 딸인 레이코 스콧은 주관적 경험을 위주로 서술 후 ‘팬은 이런 것이다’라는 식의 통찰력 있는 견해를 내놓는다. 밸런스가 좋다. 팬덤의 진정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마음가짐을 세팅하는 데 참고하기에 좋다. 마냥 엄숙하지도 장난스럽지도 않은 그저 적당히 진지하고 유쾌한 우리 삶의 일부일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