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말하는 방법
하루는 아주 우울한 날이었는데 글을 쓰려고 해도 막막하니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점에 방바닥에 익숙한 책이 보였다.
바로 김금희 작가님의 너무 한낮의 연애.
처음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한국 문학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빠밤)
책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 때라고 해야하나?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지만 사회문제에 귀 기울이기에 나는 너무 힘든 시기였고
문학에서 지적하는 여러 자잘한 문제들이 심경을 건드리는 것마저 품고 싶지 않은 시기가 있었다.
그렇게 이렇다 할 취미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배회하던 와중
어떤 기념일이 있을 때마다 책을 선물해주던 사람에게 선물받은 책이
너무 한낮의 연애다.
너의 무기력을 사랑해,
너의 허무를 사랑해,
너의 내일 없음을 사랑해
_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이 문장 덕분에 책을 읽기 전부터 이 책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기는 했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때는 문장이 꽤 낭만적이라고 생각했고 그게 마음에 들어 두 번은 더 읽었을 정도로 취향에 맞는 사랑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머리가 굵어지고 다시 책을 읽으니 낭만은 흔적만 남고 남은 자리는 분노가 채우게 됐다.
책 속의 문장은 좋아하지만 그 주인공에겐 분노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다.
아니근데진짜 필용은 찌질해도 너무 찌질하다.
책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문장을 곱씹고 다시 읽을 수록 양희의 귀한 애정이 그에게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만 되새김질 될 뿐이라 화가 두 배로 난다. 과한 분노를 자제하기 위해 가장 좋아하는 장면을 먼저 말해보자면 바로 양희와 필용이 맥도X드에서 대화하는 장면인데,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저번에도 말했다시피 나는 장면보다는 문장을 곱씹는 쪽의 사람이다. 그러나 이 장면은 볼 때마다 사랑을 고백하는 입장에서도 담담한 양희의 감정과 밀어내는 입장에서도 안달내는 필용의 불안함, 그리고 맥도X드 특유의 냄새까지 떠올리게 해 취향을 넘어 문장보다는 장면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서 더욱 좋아하는 부분이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예나 지금이나 이 장면에서의 양희의 담담한 어조는 가슴을 울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후에도 필용은 수 없이 양희를 떠봤고 결국 그녀에게서 이제는 사랑하지 않는다는 말까지 들은 후에야 후회하며 양희를 잡으려 찾아간다.
그러나 그의 어려운 상황을 직접 목격한 뒤 그의 마음을 전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결국 마음을 전하지 않고야말며 속으로만 사랑을 읊조리는 장면에서 좋음과 빡침 두 가지의 감정이 섞여버린 나는 결국 짜증이 터져버렸다. 그럴거면! 사랑한다고! 해! 그 한 발, 한 끝의 확신이 어려워서 그렇게 양희와 필용의 관계는 끝이 나는데...
이전에 완독했을 땐 책 속의 문장이 참 예쁘다는 감상으로 그쳤지만 다시 읽어 본 현재는...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짜증이 끓어오른다.
양희의 사랑은 고요하지만 굉장히 솔직하고 직선적인데 그런 사람의 애정표현에 기쁨과 우월감을 느끼면서도 솔직하게 자신도 사랑하고 있노라고 말하지 못하는 필용에게 그럴 거면 그 사랑 나 달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솔직함이 거북한 시대. 요즘은 솔직하게 마음을 내놓으면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더 좋아하는 건 쪽팔리니까. 네가 나를 더 좋아하니까 이 정돈 견뎌야지. 하는 태도로 순수하고 올곧은 애정들을 폄훼하는 사람이 늘어난 까닭이다.
나는 자기가 좋아하고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정한 것도 일종의 재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이 좋고 사랑을 사랑으로 말할 줄 아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서 노력하지만 솔직히 밑지고 들어가는 것은 늘 어렵다.
사실 우리는 모두 양희가 되고 싶지만 필용에 한 없이 가까운 사람이기 때문에... 나도 이 글을 읽은 모두도 그의 행동에 찔리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짜증이 났던 것도 있고....
누구나 자신의 감정에 단단한 확신을 가지고 앞뒤 잴 것 없이 현재에 솔직하며 담백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겠지만 이 사람이 주는 애정이 기껍고 설레면서도 나의 일상이 망가지는 게 싫고, 또 얼마 없는 체력을 소비하면서까지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하고 재보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지말아야지...
하면서도 어느새 똑같이 행동하고 있는 나를 보면 수치심과 자기합리화가 뒤섞여 차마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꼈던 것도 같다. 필용의 태도를 보며 화가 나다가도 나도 필용과 다른 게 없다는 생각에 우울해진 너무 한낮의 연애 재독.
양희처럼 사랑의 보상을 기대하지 않으면서도 자기 감정에 담담하고 솔직한 사람이 되려면 얼마나 더 커야하는걸까?
그래도 이 글을 쓰면서 아주 조금은 더 큰 것 같다. 이 글을 읽은 다른 친구들도 내일은 좀 더 솔직한 사랑을 하기를 바란다. 그러다 행복해지면 나한테도 꼭 알려주기.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ˏˋ ♡ ˎ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