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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아스팔트가 먹구름처럼 쏟아진다

by havefaith


아스팔트가 먹구름처럼 쏟아진다

늘어놓은 말을 담고 싶지도 않고
눈빛이나 입술조차 행여 웃어주고 싶지 않은
성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대답이 뒤섞인
뻑뻑하고 매캐한 아스팔트 알갱이
맨발 위에 검댕이가 뿌려지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보라며
영웅인 양 베푸는 선처는 비참하네
입은 자발적으로 다물은 것
말 삼키고 깨물라고 있는 것이었나
내가 연극 무대에 선 배우였으면 좋겠네
여기가 현실이 아니라면 견딜만 하겠지

즉흥 연기라면
뭐라고 대꾸했을까
조목조목 따졌을까
집어던지고 소리를 지르며
난장판을 만들었을까
단숨에 클라이막스로

그러나
나의 역할은 무엇인가
영웅을 표방하는 이 배우를
빛나게 단점은 가리며
오로지 긍정 뿐인 작은 단역은 아닌가

보이지 않는
힘의 차이와 무게가
어쩌면 사람보다도
너무나 야속하기 그지없네
칼자루라도 쥐었어야 할까
너무나 힘이 필요한 날

언제쯤 속시원히 살 수 있을까
기회가 있어도
멈칫하다 놓치진 않을까
비인간적인 소망인가
겁이 많아 놓칠 것이 많아
거미줄에 스스로 매달려 있는
내가 한심하고 미운 날

차라리 어서
완전히 생각도 없이 굳어버렸으면
아니 어서 저 끈적한 먹빛 물 속으로
내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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