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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잉 요가, 거꾸로 사는 시간

by havefaith

요가를 시작한지 4개월이 지났지만 플라잉요가만큼은 손을 대지 못했다. 다른 요가도 아직 서툰 내게는 과한 욕심이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그러다 오전 운동 시간표에 플라잉요가가 생겼을 때 굳이 피할 필요 있을까 싶어서 새벽에 벌떡 일어났다. 월요일 아침 일주일에 한번, 어차피 한 달이다. 다음 달 시간표에는 사라질 수도 있다. 한 달 정도는 시험해봐도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새로 뵌 선생님은 해먹에 대롱대롱 매달려 자유로워보였다. 눈만 끔뻑이고 있는 나는 플라잉 요가가 처음이라고 했고 선생님께서는 당황하신 듯 했으나 '괜찮아요, 처음에는 어려울 수도 있는데 하다 보면 재밌을 거예요.' 하셨다. 놀랄 만 하기도 한게 그냥 기초반 수업이 아니라 코어 강화용 플라잉요가 수업이었다. 몇 분은 이미 배우셨던 분들도 있었지만 태반이 플라잉요가가 처음이었다. '오전 반 사람들이 잘 하실 거라고 원장님이 빡세게 하셔도 된다고 그러셨는데', 하면서 뒤이어 찾아온 플라잉 요가 생 초보 무리에 머쓱한 듯이 웃으셨다.
요가가 정적이란 건 편견이었다. 정확히는 나의 편견이다. 겉은 정적일지 몰라도 기본적인 동작도 제대로 하기 위해 신경쓰는 마음 속, 남들은 알 수 없는 몸의 움직임은 바쁘다. 좀 더 정확한 동작을 하기 위해 삐그덕 거리며 따라주지 않는 몸의 굳은 부분을 어르고 달랜다. 따라주지 않는 숨을 놓치지 않으려고 거칠게 몰아쉬며 나를 다잡아야 한다. 운동을 하는 데 가장 위험한 순간은 왜 이렇게까지 힘들게 해야하는지 의구심이 들 때다. 모든 걸 해야하는 의미가 사라지면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이 사서 하는 고생은 분명 나를 도와주고 있다. 다음날 몸이 아파서보다는 마음이 편안해져서.
플라잉 요가는 눈에 보이기에도 훨씬 더 동적이다. 가장 쉬운 동작 중 하나가 거꾸로 매달려 있는 동작이다. 거꾸로 매달린 세상은 더 많은 숨이 필요하다. 숨을 깊게 쉬지 않으면 세상은 훨씬 더 어지럽다. 플라잉요가를 하고 나서야 영화 <수어사이드 스쿼드>에서 아름다움에 놓쳤던 할리퀸이 하던 게 플라잉요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줄 위에서 편안하기가 쉽지가 않던데. 할리퀸의 매력이 더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처음 플라잉 요가를 하고 이틀은 어지러움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새벽에 운동을 했으니 하루종일 넋이 빠져 있었다. 그래도 넘치던 두려움에 비하면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두, 세번째 할 때는 힘들어서 지난 주 일찍 자만했던 걸 반성했다. 그리고 네 번째 플라잉요가를 하면서는 다음 주가 기다려졌다. 크리스마스여도 하고 싶을 만큼. 해먹을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여전히 나를 믿지 못한다. 사진처럼 아름답고 멋진 동작을 하기는 어렵다. 가끔 거울 속에 보는 나는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줄에서 버둥거리고 있다. 가끔은 또렷한 눈빛으로 더 좋은 동작을 하려는 열의에 찬 사람이 보인다. 평소에 나에게선 쉽게 나오지 못하는 눈빛이다. 거꾸로 매달려 있는 그 어지러움이 두 발을 땅에 디디는 삶의 어지러움보다 평온할 때가 있다. 보이지 않은 거미줄에 걸리고 내려오지 못하는 많은 날에 비하면 확신이 있다. 이 해먹에서 나는 무사히 내려올 수 있고 조금씩 나아질 거라는. 그러나 다시 생각해본다. 현실의 줄 역시 해먹처럼 내려올 수 있을 것이다. 줄에 엉켜 터질 것 같은 아픔이 있어도 이리 저리 풀면 결국은 언제 그랬냐는 듯 풀리듯이.
팔 힘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역시 착각이라고 했다. 사실은 코어와 하체 힘, 해먹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운동을 하면서 늘 조금씩 배워간다. 운동을 하기 위해 몸에 단단한 기반과 중심이 필요하듯, 나의 마음에도 흔들리지 않은 중심과 기반이 더 필요하다. 세상이 흔들리는 것보다 내가 더 많이 흔들리고 있다. 역치가 낮아지고 있다. 이따금 흔들릴 때 두려워하지 않도록, 흔들려도 괜찮고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한달만 해보려고 했는데 다음 달 오전에 혹시 하지 못하게 된다면 저녁에라도 해먹을 찾아볼 생각이다. 어렵게 시작했으니 기초부터 배울 수 있는 수업을 들어볼까 보다.
거꾸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모든 걸 뒤집어볼 수 있는 시간. 이미 당연한 중력을 거스르는 시간. 땅과 멀고 공기와 가까운 시간. 내가 하지 못할 거라는 편견을 하나씩 깨보는 시간. 아무 생각 없이 숨과 함께 하는 살아있는 시간. 거꾸로 함께 하는 시간의 끝에는 뭉쳤던 가슴이 풀어져 개운함이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은 네번째 운동 시간을 마칠 때 '그래도 처음보다 많이 나아졌죠?' 하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그런 것 같다고 했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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