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같은, 현실 같은 어느 아침의 질문
"아니 근데,
사람 죽이는데 꼭 칼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
멋대로 지껄이고 있었지만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달리는 지하철에서 나는 지금 죽고 싶냐는 사람에게 시비를 걸었다. 그나 나나 드라마틱한 건 매한가지다. 둘 다 관심이 필요한 종족이다. 물론 그와 다른 점도 있다. 일단 나는 화를 잘 내는 편이 아니다. 먼저 건드리지 않는 이상.
지난밤 야근을 하는 내내 이러려고 사나 생각했다. 내가 아니어도 될 일이구나 했다. 시험기간도 그렇고 업무 할 때도 그렇고 사람은 참 그렇다. 집중해야 할 시간엔 케케묵은 인생 고민을 하고 있다. 철학가라도 된냥 어떻게 살아야 행복하나, 나는 지금 행복한가 이런 것을 곱씹고 있었다. 세계 7대 난제라도 되는 것처럼.
지긋지긋하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내내 앉을 궁리만 하고 있었다. 취업난이다 뭐다 하지만 가장 경쟁이 치열한 건 출근길 지하철의 자리싸움이다. 혹자는 잠깐 끼여 타려다가 목숨을 잃기도 하고, 포화상태를 견디지 못하고 한 입 가득 우겨넣은 문을 뻐끔거리게 한다. 대부분은 영영 마주치지 않을 사람들과 단 한번 몸을 마주하고 저마다 눈 둘 곳을 찾고 있다. 내리기 위해서도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 웰컴 투 지옥철. 이래서 삶은 전쟁이라 하나.
그러나 오늘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금방 자리가 났기에 야근으로 묵직해진 가슴을 잠으로 좀 보상받을 생각이었다. 맞은편을 바라보며 깜빡이던 눈이 속도를 줄여가던 참이었다. 그래, 나에게 허락된 합법적인 마약이 코앞에 있었다. 그때 그가 날 방해한 것이다.
어찌 된 일인지는 모른다. 갑자기 그는 옆 칸의 소란스러운 문 틈을 열며 등장했다. 지하철은 무대다. 아무도 듣지 않는 듯한 그 정적 속에 사실은 모두가 귀 기울이는 곳이다. 다만 먼저 반응을 할 만큼의 용기를 내기는 어렵다. 모르는 사람들이 나의 반응을 판단하겠지. 지하철에서 뭘 사는 사람은 핫바리다, 혹은 마음이 약해서 적선하는 거다, 의외로 나도 하나 사볼까.
그는 맥락이 없었다. 대뜸 세상에 화를 냈다. 질문을 던졌다. 대상이 있는 건 아니니 독백 같은 것이다. 그리곤 눈을 마주치는 사람에게 어떻게 죽고 싶냐고 외치는 것이다. 정장 차림이다. 그도 어딘가로 출근하던 이일까. 상당히 멀끔해 보였으나 눈빛은 삐딱했다. 추운 겨울 연착으로 문이 열려있어도 깨지 않고 잠을 청하려 애쓰던 나였다. 잠깐의 독백쯤이야 하려던 때 그는 칼을 꺼냈다. 잠시 주목을 받나 싶더니 한쪽 입꼬리로 실소를 터지게 했다. 케이크를 자르는 플라스틱 칼이었다. 별난 사람이다.
사람들은 존재를 알아차리곤 스케일 작은 미친놈을 다 본 것처럼 안도했다. 빨리 데려가라고 문자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볼썽사납게 곧 끌려가게 될 것이다. 그것도 엔딩치곤 나쁘지 않다. 그러나 그는 아직 독백에 열중이다. 먹잇감을 간 보는지 그는 아직 당황한 눈망울에게 먼저 묻기 시작했다. 어떻게 죽는 게 좋을 것 같냐고. 그는 아주 중요한 말처럼 핏대를 세우며 되물었다. 교수님이 학생에게 질문하듯이. 답은 교수님만 아는 질문. 본인은 칼이 좋은 것 같단다. 사실 찌르고 싶은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참 피곤한 사람이다. 내가 입을 연 건 참 별 것 아닌 이유였다. 일단 그는 시끄러웠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잠을 잘 수 없게 되었다. 잠은 죽음과 같다던 생각이 스쳐갔다. 그는 내가 즐기는 간헐적 죽음을 빼앗아 간 셈이다. 철학적인 걸.
"사람 죽이는 데 꼭 칼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얼마나 비효율적이에요. 옆에 피도 튀고, 피 비린내도 나고요. 목격자도 많고, 금방 죽지도 않아요. 그럼 죽을 때까지 몇 번 찔러야겠죠, 귀찮게."
시선이 다시 몰려왔다. 칼을 든 저 사람을 쳐다보던 눈빛이 나에게도 흘러들기 시작했다. 그의 무대에 침범한 것이다. 그는 독백을 방해받은 것에 당황한 눈빛으로 멍하게 나를 바라보았다.
"추리소설만 봐도 청산가리를 쓰고 김정남도 정체불명의 독극물로 참신하게 죽는데 칼이라뇨. 어떻게 죽이냐가 아니라 어떻게 죽고 싶냐고 물었잖아요. 칼로 찔리는 거 말고 목 졸리는 거 어때요. 금방 숨도 끊어지고. 장갑 하나면 깨끗하죠. 클래식하고. 엄한 사람 말고 저요. 저 죽여주세요. 대신, 제가 원하는 대로. 칼 말고 손으로."
아직 칼을 들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죽고 싶었던 적은 없었다. 질문을 던지기에 내 취향을 말했을 뿐. 내 몸이 난도질당하는 건 싫다. 나름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효자도 몸은 성해야지. 그리고 그냥 얌전히 죽고 싶지. 아직은 아깝다. 못해본 게 많으니까. 보고 싶은 건 있었다. 그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변하는 것. 칼을 들면 다 무서워할 줄 알았겠지. 근데 당신, 별로 안 무서워. 그러기엔 내가 지쳐서 보이는 게 없다. 칼자루를 고쳐 잡는 손을 보았다. 그의 손은 왠지 모르게 부끄럼 많은 소년 같았다. 허여 멀 건하고 앳되었다. 그의 손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목을 줄 테니, 칼을 달라고. 칼을 잡으며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았다. 칼은 내 손에 있는데 목은 멀쩡하다. 멀뚱히 서서 갑자기 정장의 넥타이를 고쳐 매기 시작했다. 불편한 모양이었다. 새삼스럽다. 그의 질문이 그렇게 사소한 것이었던가. 나는 진지하게 응해주었는 걸. 화가 나기 시작했다. 넥타이의 매듭이 다 지어졌을 때 나는 곧장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컥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목이 졸렸겠지.
"이렇게 하면 된다고요. 조르는 거"
그의 서류가방에 칼을 다시 조심스레 넣어주었다. 죽음을 부르기엔 그의 칼은 너무나 사소하다. 자살 기도하는 사람들이 정맥을 긋는 것과 같은 이유다. 죽음을 부르진 않으나 죽음의 뉘앙스는 느낄 수 있다. 그 시도는 성공하진 않지만 기록을 남긴다. 손목에, 주변 사람에게, 병원에. 그는 화장실도, sns 계정도 아닌 지하철을 골랐다. 그에겐 살아 숨 쉬고 눈을 반짝이는 관객이 필요했을 것이다. 나처럼 살아 숨 쉬지만 심드렁한 사람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머쓱하다는 듯 그는 플라스틱 칼이 꼽힌 서류가방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미 잠이 깬 지 오래였고 벌써 내가 내릴 역에 도착할 거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꿈같기도 하던 순간이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이만한 일은 뉴스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정말 칼을 꼽거나 불이라도 질러야 뉴스가 되니까. 지하철에는 관객이 필요한 수많은 배우가 드나든다. 물건을 파는 역할, 종교를 전도하는 역할, 죽음을 논하는 역할. 그는 희소성이 있는 역할이었다. 하지만 지하철의 관객은 냉정하다. 희소성은 가능성일 뿐이다.
다른 세상으로 넘어가는 듯 정거장 문이 열렸다. 관객의 역할은 끝난 것이다. 정장을 입은 광부의 심정과 같을까. 매일 갱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탈 때처럼. 여기를 내리는 순간 나는 다시 어딘가에 소속된 어딘가의 부품으로 바뀌는 것이다. 살아 숨쉬는 부품.
아니다. 나는 어딘가의 관객이며 배우이다. 나의 몸에 붙여진 수많은 역할의 꼬리표가 덕지덕지 보였다. 겨울바람에 나풀거리고 있었다. 무수한 꼬리표 중 행복한 꼬리표는 어디쯤 있나 헤매던 순간이었다. 지하철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서로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이윽고 우리는 눈으로 짧은 인사를 했다. 아주 사소한 순간인 듯, 사소한 사람인 듯 수많은 사람들 속에 뒤섞였다. 그 덕분에 한쪽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오늘 생긴 사소한 꼬리표를 서걱거리면서. 사소하지 않은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