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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술잔에는 상처가 있다

by havefai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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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플래쉬> 플레처 교수 같다는 말을 종종 듣는 지휘자 선생님. 알고 보면 플레처 교수와 비교할 수 없이 따뜻한 면도 있지만 여전히 어려운 선생님. 그런 선생님이 달라졌다. 말하지 않으면 모를 테니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연주회나 합주 후에 있는 뒷풀이 자리에서 꼭 말씀해 주신다.


“널 혼낸 건 네가 싫거나 미워서 그런 게 아니다. 그 순간에 보여줘야 할 것을 보여주지 못해서일 뿐이야.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실력이 금방 늘 수는 없지만 노력해다오.”


본인은 비겁해진 것이라고 하지만 선생님께서 좀더 일찍 비겁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한다. 아마 많은 것이 바뀌었을 것이다. 적 대신 친구를 얻었을 것이고, 오해를 덜었을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종류의 비겁함이 필요한 순간이 종종 있다. 그 비겁함을 진솔함이라고, 따가운 상처에 스며드는 연고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뒷풀이 술자리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그날 술자리는 달랐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괜스레 쓸쓸해 보이는 건 느낌 탓이 아니었다. 대부분 술잔을 기울일 때는 농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보내지만 어딘지 진지했다. 선생님을 싫어하는 사람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상처 받으신게 느껴졌다. 싫어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가까웠고 친했던, 믿었던 사람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선생님을 싫어하는 사람의 입장으로 너무도 쉽게 돌아섰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은 이에게 받은 큰 상처보다 기대하던 사람이 준 크지 않은 상처가 더 깊다.


듣고 있다가 말씀드렸다.

“선생님을 미워하거나 싫어해서 그러신 게 아닐 거예요. 다만 선생님보다 먼저 지켜야 할 자기 이익, 이해관계, 목표가 있었을 겁니다. 그저 자기 자신이 더 먼저인 사람일 뿐이에요.”


선생님은 놀라신 눈치였다. 정리되지 않았던 생각이 정리되는 말이었다면서. 놀라시는 걸 보고 내가 놀랐다.

“그런 걸 어떻게 아냐?”

“오래 살지 않았다고 경험이 부족하진 않으니까요. 저도 시간이 걸렸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데까지.”

비슷한 일을 겪어서 그랬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결국은 그게 내가 내린 답이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믿음이란 쉽게 허물어지는 것이었다. 생각하던 모습과 달라서 받아들이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연애가 그런 것을 가르쳐준 것이냐며 농담했고, 나는 웃으며 그것을 포함해 수많은 일들이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선생님이 질문하셨다.

“그럼 나한테 상처를 준 사람을 싫어해도 되는 거냐, 아님 좋아해야 하는 거냐?”

“그건 선생님의 선택이에요. 좋아하시든 싫어하시든 문제될 거 없습니다. 선생님 자유예요.”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술내 나는 대화 치고는 멋졌단 말이지. 다는 아닐지 몰라도 뭔가는 전해진 것 같았다. 뒷모습이 덜 쓸쓸했으면 좋겠다. 뚜렷하지 않은 감정으로 나처럼 오랜 시간을 아픔에 허비하지 않았으면 했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우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신나게 술잔을 비웠다.


대화를 시작할 때는 걱정스럽고 마음이 아팠지만 마칠 쯤에는 걱정스럽지 않았다. 선생님은 잘 알고 계실 것이다. 선생님이 투덜거리면서도 사람들에게 다가가 진심을 말씀하셨듯이 이 문제에도 답을 찾으실 것이다. 이 모든 건 선생님이 하시는 지휘와도 비슷하다. 좀더 귀를 기울이고 집중하지 않으면, 힘을 들이지 않으면 놓칠 수 있다. 수많은 사람과 사람의 자취, 사람이 만드는 음악과 악보가 보여주는 음악 사이를.


선생님께 드린 말씀이 내가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내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싫어해야 할지 내게 묻던 순간이 있었다. 똑같은 질문을 다른 사람이 하고 내가 대답하는 날도 오다니. 내가 아파 봤으니까 다른 이의 아픔이 눈에 보인다. 오늘 같은 날이 오려고 내가 아팠나보다 생각하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호랑이 지휘자 선생님. 호랑이처럼 지휘할 때는 먹잇감을 본 것처럼 매섭고 지적은 지축을 박찬 포효처럼 무섭다. 그러나 왜 호랑이라고, 왜 엄한 지휘자 선생님이라고 상처받지 않고 고민하지 않았겠는가. 연거푸 마시던 술잔에도 즐거움만큼 깊은 상처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생님의 술잔, 함께 한 술자리의 끝엔 따뜻함이 남아있을 것이다. 따뜻하고 큼지막한 선생님의 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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