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빠져있던 TV 프로그램 〈고등 래퍼 2〉. 아직도 종종 음악을 듣고 있다. 첫인상을 기억한다. 처음에는 덥수룩한 머리에 눈이 가려 있어서 잘 몰랐던 래퍼. 마음을 콕콕 찌르는 가사에 지켜보았다. 그 래퍼의 손목에 바코드 같은 상처가 나 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그는 손목에 상처를 냈을 것이다. 아픈 가사를 듣다 보면 그의 손목이, 마음이 괜찮은지 궁금해진다. 그를 아끼고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도 비슷할 것이다.
자해가 그 친구만의 일은 아니다. 자해를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어렸을 때 엄마에게 혼난 어느 날 화가 도통 잠잠해지지 않았다. 돈이 없고 어른도 아니니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불리했다. 당장이라도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면 나가야 하고, 공부를 그만하라고 하면 그만해야 한다. 힘없는 내가 싫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책상을 밀어 버릴까 하다가 다시 주섬주섬 제자리에 갖다 놓을 생각을 하니 꼴이 우스웠다. 의욕이 사라졌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좀더 진지하고 상징적인 게 어떨까. 별 생각 없이 꽂혀 있던 커터 칼을 손목에 대보았다. 세상 진지하지 않나. 물론 여기서 상식을 따지면 말이 안 된다. 차라리 책상이나 밀어 버리는 게 피를 보는 것보다는 낫다. 다만 이 상황도, 내 자신도 그만큼 너무 싫었다. 사라져 버리는 건 어떨까. 어차피 다들 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을 텐데. 어설프게 흉터나 남길 거면 아서라. 하려면 제대로 해. 지긋이 날을 대보았더니 자국이 났다. 힘을 더 주면 상처가 날지도 모르겠다. 그때 눈에 들어온 건 팔딱거리며 열심히 뛰고 있는 손목의 혈관이었다.
힘을 주면 심장 소리가 더 잘 들리고 핏줄도 파르르 떨리는 것만 같다. 갑자기 안타까웠다. 안됐다. 운도 더럽게 없구나.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맥박을 쿵쾅거리며 뛰는 것 좀 봐. 넌 이렇게 살고 싶은데 힘이 있다는 이유로 내가 널 아프게 할 권리가 있나. 하필 내 몸으로 태어나서, 몸을 소중히 여기지도 않는 마음을 만나서. 넌 말을 할 수 없으니 날 탓하지도 못하겠지.
몸과 마음을 별개로 생각해 보자. 내 마음 끌리는 대로 하자고 몸이 고생하는 거였다. 평생 쌔빠지게 일하면 뭐 해, 인정도 안 해주고 뒤치다꺼리나 하고. 나라고 이 몸으로, 이 마음으로 태어나려고 한 건 아니지만 좀 억울하겠네. 혹시 몸이 물어보면? 내가 뭘 잘못했길래 상처 내고 죽으려고 하냐 하면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너무 화가 나서? 어차피 내 몸이니까 내 마음대로 할 거라고? 그냥 미안하다고 할까? 나 같은 사람 몸으로 태어난 운명이라고? 대답이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할 말이 없었다.
생각해 보니 흉터를 내고 피를 볼 정도로 화가 난 건 아니었다. 흉터는 덤벙거리다 부딪히고 깨져서 생긴 걸로도 충분하다. 갑자기 몸에게 미안함이 몰려왔다. 그 뒤로 커터 칼도, 자해도 생각하지 않았다. 확실해졌다.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얼마나 살지는 몰라도 나는 이 몸의 세입자고 그러니 내 몸 중에 당연한 건 없다. 월세는 묵묵히 일하는 이 친구에게 감사하고, 최소한 내가 나를 다치게 하지 않는 걸로 하자.
돌이켜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뭔 이유 때문이었는지 밥상에서 한마디 지적받으면 밥만 꾸역꾸역 먹고 방 안에서 펑펑 울었다. 밤바다 베갯잇에 눈물 자국을 수놓았다. 시기상 혼돈의 중2병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히 그렇게만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손목은 오늘도 열일하고 있다. 그 손목으로 이렇게 글도 쓰고.
자해나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그들을 비난할 생각도 없다. 오히려 어떤 의미에서 아프지만 대단한 일이다. 생각하는 것과 실행에 옮기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너무 힘들고 아프면 오히려 칼끝이 내게 갈 수 있다.
그보다 더 깊은 생각을 한 건 나중의 일이다. 직장에서 인신공격을 잔뜩 받았다. 일 때문은 아니었고, 대부분이 그렇듯 인간관계 때문이었다. 어느새 영 점짜리 혹은 마이너스에 불과한 사람으로 전락해 있었다. 세뇌되듯이 내가 영 점짜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은 일에도 화가 났고 침을 삼키듯 화를 넘기곤 했다. 가슴이 뻐근해졌고 밤에 누우면 심장이 쿵쾅거렸다. 바보같이 그게 누군가에게 설렐 때 이렇게 쿵쾅거리는 걸까 했다. 둔했다. 몸은 아프다고 하는데 잘 알아듣지 못했다.
그해 연말 잘 버틴 기념으로 건강관리 겸 동네 지압원에 들렸다. 원장님은 맥을 짚더니 내게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냐고 말했다.
“화병이에요. 맥이 완전히 망가졌어요. 여태까지 이렇게 나빴던 적은 없었는데. 진짜 많이 힘들었구나.”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그때 말없이 눈물을 흘렸던 건 보지 못했을 것이다. 힘들었구나, 라는 말에 삐걱거리는 자물쇠처럼 마음이 열렸다. 화병 증상은 구구절절 맞지 않는 게 없었다. 시집살이로 고통받는 여성들, 사회생활 등으로 스트레스가 넘친 직장인에게 찾아오는 한국적인 병. 영문 이름도 화병이다. 일련의 증상에 이름까지 붙이니 재미있게도 후련했다. 뒤늦은 오춘기라 생각했던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순간이었다.
나에게 정말 미안했다. 아프게 내버려둬서 미안했다. 나는 고작 미천한 세입자에 불과한데 이렇게 속을 썩여서.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그만 아프자. 행복보다도 아프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종교를 가져 본 적은 없지만 왜 믿는지는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누군가 종교를 아편 같은 것이라 했다면 나는 아주 고전적인 스테디셀러라고 말하고 싶다. 합법적이고 보편적이고 대중적이지 않나. 갑자기 하느님, 부처님, 온갖 종교의 대표들께 기도하고 싶지는 않았다. 여태까지도 기도한 적도 없었고 염치가 없어 보였다. 하다못해 친구도 자기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친구가 별로인데 나는 듣도 보도 못한 존재였다. 그래도 다짐을 하긴 했다. 그만 아프고 싶어요. 지겨울 것 같긴 합니다. 뭘 원하고 아픈 사람들이 당신께 찾아오겠죠. 하지만 지켜봐 주세요. 지금은 그저 그런 사람으로 보여도 나아질 겁니다. 그리고 모든 날에 감사할 겁니다.
엄마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화병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때는 화병인지도 모르고 힘들기만 했다면서. 우리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평행이론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엄마가 화병에 걸린 나이와 내 나이는 그리 차이가 나지 않는다. 엄마는 하고픈 말이 많았다. 아닌 건 아니다 짚고 가는 사람이었다. 나이가 많다고 부조리한 말을 하는 사람을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약을 달여 왔다. 지압도 같이 받으러 다니자고 했다.
“엄마도 많이 힘들었겠다.”
“맞아. 그랬지.”
“많이 비싸잖아. 내가 낼게.”
“됐어. 월급도 별로 많지도 않으면서. 나중에 필요한 거 생기면 사줘. 돈은 잘 모아 두고.”
“세 달쯤 됐죠? 지압 받은 지.”
원장님은 예전보다 나아지고 있어서 다행이라 했다. 처음에는 상태가 더 심각해서 말을 더 못했다면서.
“쉽게 안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확실히 나아졌어요.”
“제가 봐도 그래요. 달라졌어요.”
“허허. 젊으니까 좋긴 좋네요. 아픈 것도 더 빨리 낫는 것 같고요.”
어깨를 주무르던 원장님은 문득 물었다.
“공황장애 같은 게 있었다고 생각 안 해봤어요?”
담담하게 답했다.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초기 증상도 맞는 것 같다. 연예인만 걸리는 줄 알았는데 새삼 연예인이 가깝게 느껴진다. (멘탈만은 연예인 급인가.)
왜 사람들이 죽고 싶어 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 내가 힘들었던 것보다 좀더 힘들고, 주변에 도와주고 아껴 주는 사람이 없고, 더 살고 싶은 의지가 없으면 어떤 사람은 죽는 것으로 용기를 냈으리라. 그게 유일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건 어떤 의미로는 쉬운지도 모른다.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부터 우리는 살아 있었으니까. 나를 해치는 건 다른 의미로 어렵다.
죽을 걸 알고도 기를 쓰고 실행할 수 있을까? 언제 태어날지 모르고 태어났으니 죽을 때도 그랬으면 싶다. 그들은 죽는 쪽으로, 나는 살려는 쪽으로 용기를 냈을 뿐이다. 방향이 달랐을 뿐이다. 그 뒤로 세입자로서 몸에게 월세는 꼬박꼬박 잘 내려고 한다. 몸과 마음에 좋다는 것은 다 하고 있다. 보약도 먹고, 운동도 하고, 지압도 받고, 명상도 해봤다. 신기하게도 나를 점점 감당할 수 있었다.
지압원 원장님이 말씀하셨다.
“독이 쌓이면 풀어내는 게 쉽지 않아요. 앞으로 더 나아질 거예요. 지금도 나아지고 있고. 혹시나 다음에도 그런 때가 찾아오면 이 순간을 기억해요. 이렇게 고비를 넘었지 하고요.”
해가 뜨고도 밤처럼 어두운 날이라고 기억할 것이다. 그 밤은 내 눈과 귀를 감겼고, 먼지처럼 숨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무엇보다 심장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따로 대답하지는 않았다. 이미 서로 알고 있으니까. 깊은 밤을 이미 건너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