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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Aug 13. 2019

언젠가는 통기타 쳐봐야지 - 도레미파솔라시도

                                    

내겐 주기적인 뽐뿌가 온다. 기타, 재즈댄스, 수영 같이 생각만 해뒀다 미뤄뒀던 일들이 머리 속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오, 지름신보다 더 셀거다. 운동은 지금도 내 수준에는 많이 하고 있는 편이었고 이번 뽐뿌는 통기타였다. 가고 싶은 곳이 한 군데 있었다. 아늑한 분위기 같아 보였고 1:1 레슨비가 너무 비싼 편도 아니었다. 나중엔 노래와 연주를 녹음도 한다니 신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소심하게 일주일은 영상과 글을 찾아보면서 고민했다. 답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지만. 연주하고 싶은 곡들을 카톡 나와의 채팅창에 저장해 놓았다. 신청곡도 받아놨는데. 아주 김칫국이 제대로다. 모르지, 올 해 안에 몇 곡 치게 될지는. 설레는 것도 좋지만 조급함은 내려놓아야겠다.


새로운 악기를 시작하는 게 무척 긴장되고 떨렸다. 다시 아무것도 모르고 서투른 사람이 되는 게 겁이 나는 걸까? 새 악기를 배우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거라 그게 긴장되는 걸까? 낯을 가리진 않지만 어색하긴 할 테다. 전화를 걸어서 문의를 하러가니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설문지를 작성했다. 내가 어떤 악기를 배우고 싶은지, 어느 수준과 진도를 목적으로 하는지, 좋아하는 가수와 노래, 신기했던 건 노래에서 가사, 인성, 멜로디 등 순위를 매기는 질문이었다. 아마 하고 싶은 곡을 따질 때 그 점도 고려가 되나 보다. 통기타, 우쿨렐레, 일렉 기타, 베이스 기타, 클래식 기타중에서 고를 수 있었다. 세상에, 베이스 소리가 너무 좋잖아! 라고 생각했지만 선생님이 쳐주신 통기타 소리도 무척 좋았다. 언니가 남겨두고 간 악기도 통기타이기도 했고. 우선 통기타를 배우기로 결정했다.


상담을 해준 선생님께서 나의 레슨선생님이 되셨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하다 했는데 고등학교 학원 수학선생님과 닮았다. (아직 말씀은 못 드렸는데) 덕분에 그래서 편하다. 선생님께서 악기를 잘 배울 것 같다, 오래 배울 것 같다는 긍정적인 말씀을 하면 저는 손도 느리고 생각보다 잘 못할지도 몰라요, 제가 오래 할 수 있을까요? 라며 한 발 뒤로 뺐다. 나도 내 마음을 잘 모르겠고 의지라는 녀석이 예전보다 쉽게 지치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열심히 하지 않겠다는 건 아니다. 오랜만에 예습이란 걸 했다. 코드부터 배우지 않을까? 하고 유투브에서 ADE코드를 익숙해지게 연습해갔건만. 첫 시간은 10여년이 더 된 작은 언니의 기타의 줄 갈기와 도레미파솔라시도 배우기였다. 기타 줄을 가는 걸 보면서 말씀을 나눌 땐 재밌었다. '오! 이빨 뽑는 것 같네요' 라고 했더니 무척 재밌어 하시더라. 정말 비슷해서 그런건데. '무슨 줄로 바꿔줄까요?' 하면서 세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기타도 '줄빨'을 받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그렇다면 초보인 저는 줄빨이라도 받아야겠다고 답변드렸다. 줄까지 갈고 나니 제법 모양새가 난다. 선생님 손이 금손이시다!


이제 저 줄에 손이 아릴 차례. 악기하면서 어디 안 아플 수가 있던가. 관악기는 입이 아프고 현악기는 손이 아프고, 그 외에 다른 곳도 아프고. 도레미파솔라시도를 배울 시간. 즐거운 음악시간이여야 했을텐데. 아니, 머리도 바보고, 손도 바보인겁니까? 상호 바보인겁니까? 잊고 있었다. 내가 1:1 레슨에 무척 긴장하는 편이라는 걸. 집에 가서 연습을 좀 많이 해야겠다 다짐했다.


통기타를 별 것 모르는 입장에서 좋은 점은 어지간하면 소리가 작아서 심심할 때 연습하기 좋다는 것이다. 멍멍이도 색소폰 소리에는 번개소리 들은거마냥 충격을 받더니 기타는 뚱땅띠롱 이런 소리가 나도 옆에서 가만히 있는다. 악기의 단짝 친구 튜너와 메트로놈. 스마트폰에서 잘 쓰고 있다. 튜너로 잘 맞춰보고 메트로놈으로 아주 느리게 서서히 연습을 해보고 있다. 손가락과 머리 힘내보자! 연습곡이 산토끼, 나비야, 반짝반짝 작은별, 도레미송이다. 도레미송이 제일 연습곡 중 고난도! 다 아는 곡이고 쉬운 곡이지만 통기타로는 처음이니까.


고작 도레미파솔라시도일지도 모르지만 거기서 모든 게 시작한다. 독학으로도 많이 배우는 게 기타지만 이번엔 처음부터 선생님과 배워보고 싶었다. 색소폰을 배울 때는 여유도 없었고 레슨을 못하고 마냥 대강 배우고 한 터다. 당장 정기적인 동아리 연주회를 준비하기 바빴다. 그 버릇이 어중간한 실력을 만들고 나중에 내 발목을 잡고 원점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시작이 잘못 되면 되돌리는 게 그렇게 힘들다. 부족한 점을 알아도 도망치는 게 더 편한 사람인 걸 알아서, 다른 악기를 배울 때는 그러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손이 아프다는 얘기를 많이 듣고 시작한 터라 아프겠거니 했지만 아프긴 하다. 그래도 쉬었다 뚱당, 또 쉬었다 뚱땅 하면 금방 30분씩 간다. 다음 레슨 때 연습곡들을 멋지게 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매일 옥탑방에서 어스름한 저녁에 뚱당거리는 소리가 들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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