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립소와 조개껍질 묶어, 개구쟁이, Hey Hey Hey
고새 통기타를 접은 건 아니다. 잊지 않도록 쓰고 싶었지만 매주 쓸 만큼의 짬이 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글을 쓴 이후로 3개월이 지났다. 그 사이 새로운 노래와 코드를 만났다. 옛사랑과 영 이별한 것은 아니고 연습할 때 손을 풀 수 있는 익숙한 곡이 되는 중이다. 칼립소 주법을 배웠다. 칼립소? 칼립소라니, 내가 태어나서 알고 있는 칼립소는 영화 <캐리비언의 해적>에 나오는 칼립소인데! 선생님께 그 칼립소가 그 칼립소냐고 여쭤보니 오,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 없는데 칼립소라는 마녀가 있긴 하지요 하셨다. 리듬 자체는 칼립소보다는 '캡틴 잭' 스럽다. 캡틴 잭 스패로우가 럼이나 퍼마시면서 어느 섬이나 바다 한가운데 배 안에서 뚱당거 릴 것 같은 나른함이 잔뜩 묻어난다. 우리는 럼이 없으니 무얼 마셔야 하지, 모히또를 마셔야 하나, 현실적인 나른함은 치맥이나 피맥, 떡볶이와 쿨피스로 채운 배를 두드리는 것은 어떤가.
칼립소 리듬이 <조개껍질 묶어>라는 노래와 찰떡이다. 나른하고 왠지 만사형통이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교재에 있는 연습곡들은 그런 근거 있는 자신감이 있는 곡들이었다. 정글 숲을 지나서 가면 악어떼가 나오는데 무서워하지 않고, 조개껍질은 그녀의 목에 걸어주면 되고, 어두운 날들에게 안녕을 고하며 자우림이 Hey Hey Hey도 외쳤으며, 우리 같이 놀자는 개구쟁이도 있다. 이 중에 최애곡을 꼽자면 자우림의 Hey Hey Hey인데 기타를 잘 못 치는 입장에서는 코드가 세 개 밖에 안 나오는 '이득'스러운 곡이었기 때문이다. 리듬이 이렇게 분위기를 다르게 만들어준다면 사람도 그럴 수 있는 걸까. 자기만의 리듬으로 고유의 분위기를 낼 수 있는 것일까.
16비트 슬로우 고고와 싱코페이션
레슨이라는 게 은근히 예측하기 힘들다. 숙제 해왔니 하고 바로 검사를 꼬박꼬박 받지만은 않는다. 때로는 연습을 열심히 했는데 다른 진도를 나가서 아쉬움이 +1 정도 들 때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자신감이 넘치는 건 아니니 시간을 벌었다고 속으로 좋아한다. 나중에 짠! 하고 들려드리면 더 임팩트가 있으리라 본다.
연습은 하고 있지만 레슨 시간에는 새로운 곡들을 연습하느라 잠시 뒤로 밀려난 상태인 곡들이 있다. 10cm의 스토커나 Feist의 Gatekeeper. Feist의 음악은 처음 접했다. 문지기 노래인 건가. 해석하면 읭 스럽지만 가사나 분위기가 좋다. 사랑이 열린 문(Love is an open door)이나 문지기가 마음(사랑)의 문을 열고 닫는 게 그리 다른 생각은 아니다. 물론 전자에 비해서 후자의 노래가 좀 덜 달달하다. 싱코페이션이 들어간 16비트 슬로우 고고를 배웠다. 역시 멋있는 리듬엔 싱코페이션인가 싶게 멋있는 만큼 어렵고 헷갈리기도 한다. 굳이 박자를 앞으로 땡기셔야겠냐고 묻는다면 멋지려고 땡긴다고 해야지 어쩌겠나. 리듬보다도 손이 그 사이에 쇽쇽 바뀌어야 하는데 손이 그리 재빠르진 않다.
'머리가 문제일까요, 손이 문제일까요, 머리와 손 사이의 문제일까요?'라고 물어보니 선생님이 '대답해볼까요?' 하시길래 '아니에요, 바보라고 하실 거잖아요' 했더니 그냥 아무 문제도 없이 반복의 문제라 하신다. 재능이야 분명 여부가 있겠지만 내가 고민하는 수준은 반복의 문제일 뿐이다. 그저 반복의 문제니 그저 하면 되는 것.
하이코드와 아르페지오, 사랑하기 때문에
정신없이 세 달이 흘렀고 그 와중에 레슨을 몇 번 미뤘다. 60여 포기의 김장을 한다고 미뤘고 출장을 간다고 한 번 미뤘다. 매주 나갈 땐 몰랐는데 그렇게 두어 번 쉬고 나니 기타가 어색한 순간도 있었다. 매일 조금씩 치는 게 목표였지만 그게 되지 않는 날도 있었고 선생님 역시 모르시지 않았을 터. 약간 부진한가? 싶은 생각이 들긴 했지만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스트레스가 가중되니 모르는 척 하자. 알아도 모르고, 몰라도 모른다.
하이코드는 시원스레 나지 않고 손이 쉽게 익지 않는다. 막상 소리를 들어보면 이래서 좋은 건가 싶지만 여전히 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코드들의 장벽에서 떨어져 나가게 만들었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왕 좋은 거 다 같이 좋으면 좋았을 텐데. 코드를 안 보고 짚을 수 있으면 좋겠는데 그건 잘 안 되고 악보는 연습하다 보니 잘 외워지고 있다. 그래서 악보를 안 보고 손을 보고 있으니 선생님께서는 곡을 다 외웠냐 하시기에 허허하고 말았다.
아르페지오를 집중적으로 다룬 새 책을 꺼냈고 오른손 역시 왼손만큼 바빠지게 됐다. 그래도 양손이 같이 움직이는 상황이 재밌다.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연습하다 보니 악보는 외웠는데 몇 군데 손이 잘 막히는 부분이 있다. 하이코드 친구들, 곱게 말하고 연습하다 보면 우리도 언제 절친한 사이가 되는 날이 오겠지. 실력 점검 겸 녹음을 해보자고 하는데 정말 그 얘기를 듣고 나서 다음 레슨 날이 되기까지 너무 긴장이 됐다. 혼자 연습하거나 강아지가 옆에 있을 때야 그나마 편하지만, 핸드폰으로 녹음기만 켜놔도 몸이 굳고 손이 긴장으로 엇나가기 시작한다. 게다가 노래까지 하면 기타 반주와 다른 지점도 있고, 노래도 편하지 않고 손에 든 기타도 편하지 않으니 불편함이 가중되고, 녹음을 하면 선생님도 듣고 파일도 남는다니 상상으로도 괴로운 기분.
지난번 옛사랑을 녹음할 때도 감기에 된통 걸려서 정신이 헤롱헤롱 할 때로 얼렁뚱땅 녹음하고 넘어갔지만 부끄러워서 온 몸의 세포가 오그라드는 줄 알았다. 약속은 약속이니 연습을 해 가긴 했더니 선생님이 그렇게 긴장되면 무리해서 할 필요가 없다고 하셔서 의외로 놀랐다. 그래도 해보라고 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쉽게! 선생님도 노래 부르는 게 많이 긴장됐던 편이라 이해한다고 하셔서 더 놀랐다. 지금은 이렇게 편안하게 잘 부르시는데. 나만 그런 건 아니었던 거라니 위안이 됐다. 돌이켜보면 중고등학교 때 가창 시험 하나에도 얼마나 속을 졸이면서 연습했는지. 긴장해서 잘 알던 가사를 통째로 잊어버리기도 했고, 몇 마디의 솔로 연주만 있어도 수능시험을 볼 때처럼 긴장해서 마음을 다잡느라 고생을 했다. 망칠까 봐 두렵고, 연습 때만큼 못할까 두렵다. 말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노래는 왜 이렇게 어려운 걸까. 언젠가 기타를 배우고 싶었던 건 기타를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내 목소리에도, 내 손에도, 내가 연주하는 음악에도 편해지는 날이 오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음을 부정하지 못하겠다. 악보는 다 외웠으니 혼자서 녹음해보면서 익숙해지기로.
레슨 선생님과 만담 같은 티키타카는 계속하고 있다. 동아리나 오케스트라를 할 때와 달리 1:1 레슨을 한 게 처음이다. 색소폰을 할 때도 그룹레슨처럼 돌아가면서 했으니까 1시간은 온전히 선생님과 나로만 이뤄지는 게 신기할 때가 있다.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땐 악기뿐만 아니라 사람과의 관계 역시 중요한 문제다. 악기를 하러 모인 사람들이지만 악기만 하고 헤어지진 않는 법. 연주회도 있고 식사, 작은 발표회, 크고 작은 의견을 나누고 대화를 하고. 그렇게 합주를 할 때 오는 스릴도 분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괴로운 시간도 많았다. 잘 맞지 않아도 적당히 지내야 하고 때로는 그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쓸쓸하기도 하다.
오랜 시간을 보내도 나는 그저 소리가 비지 않게 채워주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게 분명한 말이나 행동을 마주할 때마다 믿음과 따뜻한 마음이 부서지는 기분일 때도 많다. 인정받기 위해서 하는 건 아니고 악기도, 합주도, 연주회도 좋지만 그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꼭 당연한 것일지 회의감이 들고 나서 혼란스러웠다. 갈 곳을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애초에 여기에 내 자리가 있긴 했을까.
내년에는 자주 얼굴 볼 수 있냐는 말에 선뜻 답을 하지 못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또 떠나니까 붙잡으니 기분이 요상하다. 알지, 필요해서인 것도. 과거의 나는 이럴 줄 알고 사람이 별로 없는 소수 악기를 했나 보다. 오래 하고 싶다고 생각해서 그랬는데 덕분에 붙잡히는 것도 같다. 돌아가신 색소폰 레슨 선생님은 기타가 외로운 악기라 했지만 아직까지는 외롭지 않다. 선생님의 악기가 매물로 올라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왈칵할 때가 있다. 곧 한 번 가볼 생각인데 막상 상상만 해도 마음이 무겁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여러 사람에게서도 자유롭고 싶었다. 기타를 배우고 새로운 레슨 선생님을 만난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말을 선생님께 하지는 않았다. 굳이 할 필요 있을까. 새로움에 익숙함을 풀어놓을 필요는 없지. 구조상 1:1이니 그 1시간에 나는 선생님에게만, 선생님은 나에게만 집중하면 된다. 곁다리로 듣는 이야기들은 흥미롭지만 나를 뒤흔들 만큼 가까운 이야기가 아니라서 오히려 편하다. 적당한 거리가 내게는 이런 건 아니었을까.
뭐했지 싶게 시간이 가서 벌써 다섯 달에 접어든다. 친구들이나 가족들은 칠 수 있는 곡이 있냐고 물어보는데 뉘앙스가 속상하다. 제대로 칠 줄 아는 곡이 없을 것 같다는 낮은 기대가 전제된 질문! 속으로는 발끈하지만 끙하면서 몇 곡 칠 수 있다고 말한다. 하긴 초짜는 초짜인 걸. 1년을 잘 채우면 내게 선물을 주기로 했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다. 기타를 열심히 한 거니까 기타를 업그레이드하고 싶다고 했더니 생각해 둔 게 있다고 하신다. 1년을 채웠을 때 어떤 기타를 들고 어떤 곡을 연주하고, 어떤 마음일지 궁금하다. 그때는 1:1 레슨 너무 갑갑하다고 하는 건 또 아닌가 몰라. 아르페지오로 더듬더듬 연주하면서 올 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