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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May 06. 2020

민망한 노래, 머쓱한 연주

  민망하고 머쓱한 게 뭔지 모르던 시절이 있었다. 참으로 간 큰 시절이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랬다. '까짓 거 한 번 하고 말지'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때론 나서서 참여했다. 혼자 리코더로 가요를 연주해서 장기자랑을 했다. 다소 유치 찬란한 율동과 노래를 곁들여야 할 때도 멀쩡했다. 다들 나를 쳐다보는 것도, 그 앞에서 뭘 하는 것도 어색하지 않았다. 어느 날 말하기 대회에 나간 친구를 보곤 왜 그렇게 긴장하는 걸까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후로부터는 간이 콩알만 해졌다. 사람들 앞에서 긴장하고 버벅거리던 친구의 모습은 어느새 내 모습이 되어있었다. 한 가지를 꼽자면 왜 굳이 시키는지 모르겠는 가창 시험 때문이었을까. 아무래도 노래가 제일 민망했으니까.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을 반성하라는 큰 그림인가. 많은 사람들이 나를 바라보는 상황이 머쓱하다. 덕분에 가창 시험은 제대로 말아먹었다. 긴장했다고 가사를 잊어버릴 줄이야. 좋은 소식은 이제는 가창 시험을 볼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노래방은 손에 꼽게 간다. 혼자 흥얼거리면 된다.


   노래보단  하지만 악기 연주도 비슷하다. 여럿이 함께 하더라도 오케스트라 연주회는 여전히 긴장된다. 곡이 끝나고 일어서면 나오는 박수가 머쓱해진다. 어디가 부족한지 알고 있어서일 것이다. 솔로라도 있으면 인생 난제를 만난 것처럼 고뇌에 빠진다. 영상도 남고, 음원도 남고, 사람들의 반응도 남으니 망치면 삼단 콤보다.   없이 연습하더라도 안심이 되지 않는다. 실전엔 예측 불가능한 변수가 있다. 아무리  순간을 상상하면서 연습을 해도 삐끗할  있다. 잘해야 본전일 수밖에 없지만 심지어 본전이었던 적도 많지 않다.  


  지긋지긋한 긴장 대신 여유란 녀석은 찾아올 수 없는 걸까. 그나마 버티고 있었는데 새로운 복병이 나타났다. 기타 레슨에서 곡을 연습해서 노래와 기타 연주를 녹음한다. 그래, 실력 향상을 위해 참 좋은 과제다. 다들 재밌어한다는데 가능하면 피하고 싶다. 녹음하는 날은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떨리는 손으로 덜덜거리며 연주하고, 눈을 질끈 감고 녹음하는 건 아쉬움이 남는다. 이렇게까지 떨 필요 없잖아. 알면서도 참 답답하다. 더 심각한 건 녹음이 끝난 후다. 믹싱을 하느라 녹음된 내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차마 못 들어주겠다. 어디 도망갈 곳도 없다. 어떻게 잠시 미세먼지라도 될 순 없을까.


  가장 최근 녹음한 곡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노래를 워낙 민망해하니 기타 반주에 색소폰을 노래 대신 연주하기로 했다. 큰일났다. 악보 키가 맞지 않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렸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위기감이 몰려왔다.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연주는 불안정하고 노래는 이제 시작이다. 이대로 망치고 싶진 않았다. 레슨을 받으러 가기 전까지 연습을 했다. 손 끝은 아리지만 한 번 더, 한 번만 더 하다 보니 녹음할 시간이 되어버렸다.


  결과는? 생각보다는 선방했다. 실력보단 노력이 선방했다고 봐야겠지. 기대치가 낮아서 그랬을까. 시간이 없고 준비가 부족해서 총체적 위기란 생각에 철렁했던 마음에 비해서 말이다. 이번엔 평소와는 달랐다. 선생님이 '나중에 녹음본 들으면 그렇게 말 못 할 텐데~'라고 놀리긴 하셨지만 이만하면 만족스럽다. 처음이다. 손이 잔뜩 굳거나 파르르 떨지 않았던 게 마음에 들었다. 마감 효과까지 아낌없이 탈탈 털어 넣고 나니 녹음이 끝나 있었다.


  선생님은 신기해하신다. 레슨 하면서 대화할 때랑은 딴 판이라면서. 왜 아니겠나. 방금 전까지 신나게 조잘거리던 애가 잔뜩 쫄아서 바들바들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부끄러움이 많습니다, 선생님. 녹음과 믹싱의 수고로움을 잘 알고 있다. 비루한 기타와 노래를 살려주시느라 얼마나 고생이신가. 그걸 알기에 잘하고 싶은데 잘 안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잘하려고 애쓸 필요 없다 하신다. 잘하려고 하다가 오히려 더 망칠 수 있다면서.


  잘하려는 마음이 긴장이 되고 과부하를 만들어냈던 걸까. 기타도 노래도 잘하고 싶은 건 당연하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아서 그랬던 걸까. 연습은 최대한 열심히, 다만 내려놓는 연습도 그 못지않게 열심히. 못 해도 된다. 못할 수도 있지. 세상이 뒤집히는 중대사도 아니고, 가수도, 기타리스트도 아니다. 부족한 모습까지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선생님이 믹싱으로 든든하게 보완해주시겠지. 믿어보시라, 선생님 찬스!


   악기도, 노래도 힘을 빼야 좋다고 한다.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잘하고 싶을수록, 열심히 하고 싶을수록마음은 조급함에 굳어버리고 몸은 힘이 잔뜩 들어간다. 어떻게 몸과 마음의 힘을 빼야 할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그래도 참고할 수 있는 좋은 기억이 하나 생겼다. 여전히 녹음이 끝나면 으악, 너무 민망하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곤 멋쩍게 웃곤 한다. 모르지, 그렇게 한 번 두 번 쌓여 힘을 푸는 게 익숙해지고 참을 수 없던 민망함과 머쓱함이 줄어들지. 덜 민망한 노래와 덜 머쓱한 연주를 하는 날. 그 날이 언제 올까 싶다가도 어느새 성큼 와 있기를 바라며 새로운 곡을 만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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