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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May 05. 2020

행복해져라, 당신

 10년이 훨씬 더 지나고 드라마 <연애시대>를 다시 봤다. 부제처럼 '헤어지고 시작된 이상한 연애'가 아니었다. 마음을 외면해보려고 애썼던 시간이었다. 요상한 이야기인데 왜 막장이라고 느껴지진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들이 이혼을 하고도 친구처럼 지내고, 서로 새로운 사람을 소개해주고 만나기까지 하는데. 먼길 돌아왔지만 어차피 인연이기 때문이었을까. 은호와 동진이 너무 힘들게 마음고생하는 걸 봤기 때문이었을까.


  이상했다. 다사다난하게 꼬인 이야기에 위로를 받았다. 나만 이렇게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게 아니구나 하는 안도감도 있었다. 전남편이랑 내 친구랑 어떻게 만날 수 있냐고? 안될 거 없더라. 시간이 지나 보니 그랬다. 요지경이 곧 사람 사는 세상이다. 현실은 드라마 못지않다.


  하지만 이상한 건 따로 있었다. 연애시대가 나에겐 사랑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다. 꿈이었다. 남들에겐 한 번 해볼까 싶고, 멋있어 보일 수도 있지만 상당히 지루해 보일 수도 있는 꿈 이야기로 느껴졌다. 이렇게 글에서조차 정확히 말할 수 없는 꿈. 은호가 하던 혼잣말처럼 이렇게 사는 것도 지낼 만하다. 어느 날은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다. 그러다가도 아, 아니다. 이렇게 살다 간 영영 잘못되겠다 싶다.

 

  동진은 은호와 헤어지고 재혼한 아내 유경에게 종종 질문을 했다.

"행복해?"

유경이 그렇다고 말하면 그는 그러면 됐다고 답했다. 은호와 헤어지고 다른 여자를 만날 때 좋은 아빠, 좋은 남편 역할에 족하며 지내려고 애를 썼다. 상대방의 미소와 행복이 우선순위였다. 나 역시 다르지 않다. 좋은 딸이자, 좋은 연인, 좋은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것도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산책 나온 강아지의 총총거리는 뒷모습을 보면 그래, 좋은 언니인 것도 좋겠다 싶다. 내게 소중한 존재들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다. 일방적인 희생은 아니다. 이런 삶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질투와 상실감에 휩싸인다. 누군가 그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마음 놓고 축하해주지 못한다. 못났다. 마음이 알싸하게 콕콕 쑤신다. 그 사람이 잘 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못하고 있는 게 아프다. 은호와 동진이 너무 늦었다며 서로에게 돌아가지 않으려 했듯이, 내게는 지금도 너무 늦었다는 두려움이 주저앉게 한다. 심지어 둘은 그래도 쌍방향이다. 꿈은, 길은 아무것도 장담해주지 않는다. 연애는커녕 짝사랑이다. 그런데도 꿈은 내 마음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한다. 단순한 미련이라고 말하면서도 마음이 철렁한다. 배부른 투정일지도 모른다.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서일 것이다. 행복의 요소는 어디에나 있지만 결국 그걸 받아들이는 건 마음의 몫이다. 마음은 답이 정해져 있는 걸 어쩌겠나.


  은호의 아버지는 동진과 함께 해도 될지 고민하는 은호를 앞뒤 가리지 않고 응원해주었다.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라고. 주저하지 말고 , 망설이지 말라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고. 네가 행복해져야 이 세상이 행복해진다고. 행복해져라, 은호야.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에게 같은 말을 해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냉정하게 생각해라. 사랑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네 행동엔 네가 책임을 져라. 실패하더라도 기댈 생각 하지 마라. 네가 그 길을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걷는 거냐. 높은 확률로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말없이 도전하고 있다.  내거나 말해버리면 허물어질까 두려워 말하지도 못한다. 결과도   없고 터무니없이 늦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지금 하고 있는  헛되다는 후회를 하진 않았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은 마음보다,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보다  마음에, 내가 담은 꿈에 다가서고 싶었다. 아깝지 않다. 어떤 결과가 펼쳐지더라도, 설사 상처 받는다고 해도 어쩔  없는 일이다. 소확행,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은 남몰래 죄책감을 안겨주곤 했다. 채워지지 않는   욕심이라고, 소소하지도 확실하지않은  행복이,  마음이 얼마나 대단한 착각인지 묻는 것만 같아서. 도둑이   저린 것처럼.


  크기나 확실함은 모르겠다. 다만 내겐 마음이 개운해야 행복이다. 고개 너머 무지개를 평생 좇다가 머리가 하얗게 새 버릴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미룰 수 없는 건 세월이 지나 서른, 마흔, 죽기 전에도 여전히 마음에 걸릴 것이기 때문이다. 가지 않은 길이라 미련이 생긴 게 아니라 마음이 향하는 곳을 지나쳤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이다.


  손편지를 가끔 꺼내 읽는다. 칭찬과 응원, 좋은 말이 고플 때 이만한 게 없다. 아무도 들려주지 않는다면 내 이름을 불러 스스로에게 들려줄 것이다. 행복해져라, 지원아. 네가 행복해야 이 세상이 행복해진다. 나와 비슷한 사람이 어딘가 있을지도 모르니 어떤 이름이라도 함께 부르겠다. 이런 말은 아무리 들어도 모자라지 않거든. 아무도, 그 무엇도 당신이 불행하기를 바라지 않는다. 당신이 날이 갈수록 행복해지기를, 마지막에 웃을 수 있길 바랄 뿐이다. 그러니 두려워 말고 늦지 않게 시작하시라. 행복해져라, 당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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