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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vefaith May 21. 2020

부녀의 세계, 그렇게 아버지와 딸이 된다


딸이 문신을 하고 피어싱을 해서 고민이라는 아버지, 그러면서도 빨리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버지를 봤다. 아버지들에겐 골 때리는 고민이겠지만 그 밑바탕에 딸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다. 그도 그럴게 나이가 한참 된 딸과 애정표현을 하는데 스스럼이 없다는 이야기도 들었으니까.


그런 광경을 보면 이질감이 든다. 신기하다. 우리 아버지와 나는 그렇지 않아서. 나를 그런 식으로 걱정하지도 않고, 애정표현은커녕 따뜻한 말을 우리는 그렇게 나누지 않으니까. 괜찮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서 우리는 한참 비켜 있는 건 아닐까.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싶지 않은 딸은 없을 것이다. 어릴 적 아들로 태어나지 않은 나 때문에 아버지께서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아버지와의 관계는 계속 무덤덤했다. 몰랐을 땐 무척 아버지를 좋아했기 때문에 충격이 크기도 했고. 물론 지금은 시대의 강요도, 큰 아들로서의 압박도 이해하기 때문에 그 점은 받아들였다. 말로는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편이라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거나 사 오는 걸로 대신할 때가 많다. 한창 베이킹에 빠졌을 땐 스콘을 자주 구워드렸다. 요즘은 퇴근한 후 좋아하시는 닭발이나 순댓국을 사 온다.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한참 걸리는 길이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드시는 걸 보면 할 만하다 싶다.


그러나 가끔은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을 때도 있다. 나이가 들수록 더 깊이 있고 인자한 사람이 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과 우울은 가족들을 지치게 한다. 솔직하게 말해주지 않아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까지 숨길 수는 없다. 무슨 일인지, 왜 그러시는 걸까 고민을 하고 이렇게 저렇게 기분을 풀어드리려고 애를 쓰기도 하지만 점점 무력감만 늘어날 뿐이다.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정확하진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또 그렇게 한참이 지나 어느 순간 풀리면 다행이구나 한다. 언제일지 모를 그 순간을 기다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 사이에 남은 가족들은 상처를 받는다. 주관을 알 수 없는 반찬투정은 식탁에서 눈치를 보며 중재하게 만들고, 때로는 비수처럼 파고들어 있던 정마저 떨어지는 말은 아버지라는 이유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는지에 대해 회의감을 들게 한다. 아버지에겐 이 가족이, 혹은 내가 무슨 의미일지 묻고 싶을 만큼.

 



알고 있다. 아버지도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굴레로 전수받은 것들이다. 할머니가 작은 아버지만 유독 챙기셨던 게 아버지에겐 그게 상처가 되었을 것이다. 시어머니로선 어머니에게 상처를 잔뜩 주고서도 내가 그랬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고 말하시는 분이다. 할머니를 모셔야 할 때 작은 아버지는 뒷걸음질을 치고 못한다며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다. 권리는 동등하지만 의무는 나누지 못하겠다니. 두 분을 모신 건 아버지와 어머니지만 그렇다고 사이가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가끔 할머니께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말을 한 번이라도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한 다리 건너 보면 아버지는 할머니를 많이 닮았다. 별로 서로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도 취향은 똑같다. 아버지는 할머니처럼 김치 국물을 잔뜩 숟가락으로 드시고, 할머니는 아버지처럼 내가 사 온 닭발을 좋아하신다. 좋아하지 않지만 닮아 있다는 건 아이러니하다.


나라고 다른가. 나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점이 제법 많다. 언니들과 달리 왼손잡이였다가 양손잡이가 된 건 아버지를 닮아서다. 신체적인 건 그리 신경 쓰이지 않지만 신경 쓰이는 건 성격이다. 내가 그렇게도 상처 받은 것처럼 마음에도 없는 모진 말을 내뱉을 수 있다. 어머니로부턴 나이에 상관없는 돌직구를 물려받았으니, 모든 사람에게 돌직구와 후벼 파는 말을 할 수도 있는 셈이다. 써놓고 보니 큰일이네.


때로는 유전인지 환경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는 이런 유산이 마음에 들지만은 않는다. 원하지 않아도 내 안에 그런 요소가 있다는 게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심지어 내가 그런 걸 누군가에게 또 전해줄 수도 있다. 기쁨만큼 상처가 대물림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상상만으로도 괴롭다. 신경 쓸수록 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아버지도 사람이다. 실수하고 상처 줄 수 있다. 날 때부터 아버지인 사람은 없고 딸이 여럿이라고 익숙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딸 셋을 똑같이 아끼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다. 좋은 점도 많다. 성실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에서 많이 배운다. 힘든 일도 묵묵히 맡아서 해내신다. 최근에는 엄청난 의지로 담배도 끊으셨다. 흔히 말하는 문제 있는 남편 혹은 아버지처럼 바람을 피우거나 도박을 하거나 폭력적이거나 빚보증을 선 적도 없다.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아버지가 노래도 잘 부르시고 젊었을 때 겸사겸사 기타를 들고 미국으로 떠날까 생각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버지의 좋은 점만 배우고 단점은 닮지 않도록 노력하면 뭔가가 달라질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미 나는 아버지와 다르지만 분명 비슷한 점도 많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 할머니와 아버지를 이어온 고리는 똑같이 반복될 것이다. 내게 전해진 아버지의 우울과 짜증, 모진 말의 가능성은 내가 잘 다스려야 한다. 결과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어머니는 이제 아버지의 그런 점들을 내려놓으신 것 같지만 나는 아직 내려놓지 못했다. 많이 상처 받았고 여전히 야속하다. 그런 면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쉽지는 않다. 아버지와 잘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두렵기도 하다. 짜증이나 우울도 때로는 버겁고 지칠 때도 있다. 반찬이 짜다며 투정할 땐 불안 불안하다. 저러다 어머니가 화가 나시면 큰일이다. 눈치는 내 몫이다. 우리 집만큼 어머니가 맛있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고 제발 평온하게 식사를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담아 말한다. (대충 내가 만들어 먹을 거 아니면 주는 대로 맛있게 먹자는 말이다. 실제로 어머니 음식은 맛있다.)


지난 크리스마스엔 "요즘 같으면 그냥 잠들어서 다음 날 눈을 뜨고 싶지 않다"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내가 멀리서 낑낑거리고 들고 온 순댓국은 무색하게도. 아무리 우울하다고 그게 딸 앞에서 할 말인가. 본인도 걱정할 게 그렇게 많지는 않다면서 무엇이 아버지의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일지는 알 수 없다. 막상 어머니는 다년간의 결혼생활로 "말만 저러지, 그냥 하는 소리"라며 걱정 말라고 하셨다. 얕은 우울의 표현이라나. 하긴 그러기엔 순댓국을 너무 맛있게 드셨다. 이거 봐, 나만 또 진심이었지.

 


이해할 수 없고 미운 구석도 많지만 그렇다고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조차 내 모든 것들을 좋아할 수는 없듯이, 아버지라고 해도 모든 것을 좋아할 수는 없다. 여기선 좋은 모습보단 좋아하지 않는 모습을 보고도 계속 노력하는 게 사랑이 아닐까. 그러지 않았으면 진작에 전해받은 대로 매몰찬 말을 던져놓고 떠났으면 그뿐일 테니까.


아버지는 어렵다. 아버지의 딸이 되는 것도 어렵다. 좋아하고 이해하려고만 하기엔 부딪히는 점이 많고, 그렇다고 누가 함부로 하는 꼴은 볼 수가 없다. 싫은 소리를 해도 내가 하지, 남한테 들을 수는 없는 일이다. 마음 편히 좋아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다. 부녀 사이란 대체 뭘까. 알다가도 모르겠다.


며칠 전엔 어머니께서 좋아하는 월남쌈을  가서 함께 먹었다.  드실 거면서도 "나는 닭발이  좋은데" 라는 아버지의 볼멘소리에 속이 상했지만 "오늘은 힘들게 포장해왔으니 그냥 맛있게 먹어달라"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다음날 닭발을  간다고 연락드렸더니 아버지의 카톡은 "고마워.."라고 쓰여있다. 정말 못말린다니까. 말줄임표에 속이 상했다가 피식 웃기도 한다. 별다른 애정표현이라고는 찾아볼  없는 사이에서 꿋꿋하게 넘치는 하트를  보내곤 하는 아버지의 카톡을 보면서 느낀다. 정말 여러 의미로 끈끈한 인연이라고. 어쩌면 상처 받고, 상처 주고, 다시 시작하면서 그렇게 아버지와 딸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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