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havefaith May 21. 2020

안녕히 가세요, 아딸 떡볶이 사장님


떡순튀+탕수육 세트는 로망이었다

10년이 넘었다. 간식거리라곤 없는 학교 주변에 아딸 떡볶이 집이 생긴 이후로 여태까지 최애 떡볶이다. 한창 크는 나이도 지났지만 떡볶이는 질리지도 않고 고팠다. 가끔 야자를 빼먹고 친구와 신나게 떡볶이+순대+튀김(떡순튀)를 시켜 먹으면 그렇게 짜릿할 수가 없었다. 마침 좋아하는 만화책이 나오면 떡볶이와 함께 한아름 집에 들고 가는 길은 싱글벙글했다. 인생의 행복이 뭐 별거겠나.


사장님과는 한두 마디씩 짧게 대화를 나눴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진 않아도 간간이 소식을 들려드렸다. 대학을 붙었을 땐 같이 떡볶이를 먹으러 오던 친구와 내 소식을 함께 전해드렸다. 마침 사장님의 집이 내가 다니게 된 대학교 근처였다. 여기가 집, 학교는 사장님 동네인 나와 가게는 여기고 집은 우리 학교 근처인 사장님. 이런 우연이 있나. 같은 지하철을 쭉 타고 다닌다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다.


팀플, 과제, 시험 등에 허덕이면서 고등학교 때처럼 자주 들리지는 못했지만 잊지 않고 꾸준히 들렀다. 어느새 고등학교 때처럼 떡볶이, 순대, 튀김을 혼자 먹기엔 많은 양이 되어버렸다. 떡볶이 하나만으로도 행복했던 때와 다르게 이제 고등학교 친구들과 만나면 낯설지 않게 안주와 술잔이 함께 한다. 회사를 다니고도 종종 강아지와 산책을 나와서 사가곤 했다. 맛있는 냄새에 혹해서인지 이리 킁킁 저리 킁킁 대며 제 집 안방인 것처럼 누비는 게 민망스럽기도 했지만. 그 사이 아딸이란 상호는 상표권 분쟁 끝에 아딸 떡볶이와 감탄 떡볶이로 나뉘었고, 우리 동네 아딸 떡볶이는 감탄 떡볶이로 바뀌었다. 떡볶이 맛은 그대로지만 바뀐 이름이 아직까지 그렇게 와 닿지는 않는다. 아직까진 '아딸 떡볶이 사장님'인 걸로. 프랜차이즈이지만 우리 동네 가게란 느낌이 더 강하다.


몇 달 전, 갑자기 한 달이 넘도록 열지 않는 떡볶이 가게를 보면서 어디가 편찮으신가 무척 걱정을 많이 했다. 오늘은 열렸으려나 하고 지나가다 신기하게 가게를 들어가서 다행이라는 말을 참 여러 번 했다. 한동안 입원을 했다는 말씀처럼 사장님의 얼굴은 많이 상해 있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느 때처럼 참새방앗간 마냥 지나치지 않고 떡볶이를 사러 갔더니 이번 달까지만 가게를 운영하신다 한다. 가게는 다른 사람이 인수했고 사장님은 다른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거라면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고민하다 말했다. 좋은 일인 거죠? 새로운 곳에 가서도 잘하실 거라고, 5월이 가기 전에 자주 찾아뵙겠다고 말씀드리고 나오는 길엔 마음이 흔들렸다. 집에 와서 열어본 떡볶이, 순대는 여전히 맛있었다. 서비스로 주신 어묵 국물에는 말도 없이 따끈한 어묵이 하나 담겨 있었다.



이별을 좋아하지 않는다. 차마 좋아하기가 힘들다. 좋아할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다. 당황스럽다. 온 세상이 변한다는 걸, 당장이라도 변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당장 이별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며 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무기력하다. 붙잡을 겨를이 없거나, 붙잡을 만한 사이도 아니거나. 그저 떠나가는 걸 지켜보아야 한다. 이별을 코 앞에 두고서야 상대방에 대해 참 아무것도 몰랐구나 하는 아득함에 빠진다. 그렇게 큰 변화를 눈치조차 채지 못한 게 어리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게 계속 지낼 수 있으리란 생각은 근거 없는 상상이었다.


헛헛함 때문에 이대로는 이별을 맞이할 수 없는지도 모르겠다. 내겐 사람 사이에선 시작보다 끝, 처음보단 마지막이 중요하다. 처음 만날 땐 미처 알아차리기도 전에 모든 게 정신없이 시작되지만 헤어질 땐 가능하면 마음을 표현하고 싶다. 아름다운 이별이란 건 없을지라도 상처뿐인 이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별보다는 더 좋은 이별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이별에 최선을 다해야 아쉬움이 덜하다. 이렇게 예정된 이별은 그나마 마지막 기회가 있는 셈이다.


크고 작은 이별이 다가올 때면 이렇게 느닷없이 선물을 골랐다. 내가 누군가를 떠나올 때는 감사함과 미안함을 담아서, 누군가가 나를 떠나갈 때는 감사함과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서. 의도로 보자면 제법 이기적인 선물이다. 고작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것도, 나를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인 것도 맞다. 그럼에도 다른 의미를 찾아보자면 그게 상대방에게 해줄 수 있는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당신을 기억하고 있고, 당신이 떠날 때 빈 손이나 빈 마음으로, 혼자인 채로 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걸 전해주고 싶었다.



떠나시는 길에 선물을 드리고 싶어서 고민을 하다 작은 스카프를 골랐다. 스카프는 골라본 적이 없어서 열심히 찾아보다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서 샀다. 집에 고이 모셔놓은 스카프와 짧게나마 쓴 편지를 사장님께 드릴 예정이다. 파릇파릇한 꽃바구니와 함께여도 좋겠다. 편지엔 아직 뭐라고 써야 할진 모르겠지만 지금 떠오르는 건 감사함이다. 한결같은 것, 변함없는 것들이 얼마나 나를 든든하게 뒷받침해줬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10년이 넘게 사장님과 사장님이 만들어주신 떡볶이가 있어 얼마나 즐겁고 큰 위로가 되곤 했는지 말이다. 아마 지금 근처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를 다니는 친구들, 그리고 동네의 많은 분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입원하느라 볼 수 없었던 수많은 마음들이 사장님께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기를 응원하고 있을 것이다.


떡볶이를 들고 가게를 나설 때마다 '잘 먹겠습니다' 하고 나오곤 했는데, 이제 사장님이 바뀐다고 하니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별 선물을 전해드리러 가선 티 나지 않게 덤덤하게 드리고 올 수 있을까. 그때의 내 표정은 물론 사장님의 표정이 어떨지 감이 잡히진 않는다. 매번 이렇게 이별이 처음인 것처럼 어색하고 긴장하는 모습이 이상하다. 끝이 있어야 시작이 있는 건데도 훌훌 초연하게 보내지 못하고. 그렇다고 이별에 익숙해진다고 흡족할 것 같지도 않다.


늦은  천장을 보고 누워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떤 방식으로 이별과 마주했는지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니다. 이별의 진정한 종착점은 내가 함께하지 않더라도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가 함께할  없어서,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랄 수가 없어서 괴롭고 아픈 경우도 많겠지만 결국엔 시간을 들여  마음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그러니 사장님이 행복하시기를 바라는 마음만 생각하면  거라고. 그러니 한아름 떡볶이를 들고 문을 나서며 사장님께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은  필요가 없다.


"잘 먹겠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안녕히 가세요, 사장님."  

매거진의 이전글 부녀의 세계, 그렇게 아버지와 딸이 된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