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d I been surprisingly good for you?
* 뮤지컬과 영화 '에비타'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하면, 뮤지컬 '에비타'는 엄청난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얕은 호기심으로 본 작품이었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작곡의 작품을 좋아하는 편이었고 오랜만에 돌아오는 작품이니 다음에 언제 또 기회가 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뮤지컬이나 공연을 보면 미래를 기약하기보다 지금 보는 게 게 나중에 후회가 없는 순간이 오곤 해서다.
뮤지컬 '에비타'를 보고 난 후에는 관객으로서 '이질감'을 느꼈다. 확실히 어려운 작품이었다. 단조의 곡도 많고, 화음도 아마 사람들에게 친숙하지 않을 음도 많았다. 웨버가 자신의 작품 중 완성도가 높고 예술성이 높다고 한 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룸바, 삼바, 탱고 같이 다양한 장르가 내적으로 들썩이게 했고, 앙상블과의 안무도 합이 잘 맞아서 눈이 즐거웠다.
무대 연출 중에 조명을 잘 활용해서 무척 마음에 들었던 넘버(The Art of the Possible)도 있었다. 군대 내부일 듯 한 곳에서 여러 사람들이 의자에 앉아있고 노란 조명이 돌아가다가 한 명씩 붉은 조명을 물들며 제거해 버린다. 서로 제거할 수도 제거당할 수도 있는 과정을 잔인하지 않지만, 긴장감 있게 움직이는 조명을 통해 보여주었다. 가창력은 말해 무엇하겠나. 에비타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자신감에 차있었으며, 흔들리지 않았다. 물론 그녀에게도 좌절의 순간은 있었음에도 말이다. 그러니까 이상하다. 완전히 몰입할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그 이질감이 공연이 끝나고도 유지된다.
의도적일지는 모르지만 찬물을 끼얹는 존재들이 있다. 이 작품은 실화와 실존 인물을 배경으로 했다. 사생아였던 가난한 에바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와서 자리를 잡고, 후안 페론을 만나 그의 영부인이 되고, 부통령을 꿈꾸다가 자궁암으로 세상을 떠나는 일대기. 다른 뮤지컬은 비극이나 파국으로 치달아도 속으론 '그래, 이건 다 허구다'라는 마음이 있어서 안도가 된다. 누군가 죽거나 아프고 헤어지더라도. 커튼콜 때면 배우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사이좋은 모습으로 돌아오니까. 그러나 이 작품은 사실을 기반으로 했고, 커튼콜이 찾아와도 현실 속에 에비타는 남아있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마음 편히 소화하기는 버거울 수 있는 정치를 다루고 있다. 우리에게 군부독재 시절이 있었듯, 아르헨티나에도 군부독재 시절이 있었고 후안 페론 역시 옷을 벗기 전에는 엘리트 군인이었다. 그런 그가 에바와 함께 선거 유세를 하고 취임하고, 연임을 도전하는 과정이 도파민 터지는 과정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어쩌겠나, 우리의 뇌는 타인의 연애에는 흥미를 느끼지만, 정치에는 그만큼의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걸. 심지어 우리나라 이야기도 아니니, 이야기를 잘 모른다면 마음 절절히 공감하기 어려운 면도 있다.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 에비타에게 다분히 냉소적인 나레이터 '체'가 주변을 맴돈다. 그의 조롱이 가득 담긴 발언을 듣다 보면 흥이 오르다가도 살짝 떨어진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에비타라는 애칭까지 지어준 것을 보면, 분명 그 당시에도, 지금도 사랑받고 있는 존재일 텐데 작품 전반적으로는 에비타라는 사람은 믿을 수 없고, 그저 무대 위를 장악하는 카리스마와 매력이 넘치는 거짓말쟁이로 보인다. 그 간격이 에비타의 대사와 노래를 마음속에 온전히 담을 수 없게 했다.
그래서 한동안 혼란스러웠다. 에비타는 평가가 많이 갈리는 사람이긴 했다. 그녀가 펼친 자선사업, 교육과 여성 참정권 등에서 펼친 모습을 보고 산타나 성자라고도 불리고, 한편으로는 나라를 망하게 돈을 지나치게 흥청망청 쓴 사람이라는 평가도 있다. 이건 그나마 정치적인 행보에 대한 프레임이다.
또 다른 프레임은 그녀를 성자와 매춘부로 보는 프레임이다. 그녀에게 반발하는 사람들이 만드는 프레임. 그녀가 노동자들을 지지하기에, 반대편에서 그녀를 탐탁지 않게 보는 사람들의 시선. 에바에게 지킬 앤 하이드처럼 완벽히 나눈 인간의 이중성이라도 기대하는 걸까? 전략적으로 사생아로 태어나 가난했던 그녀가 만약 여러 남자에게 매력을 발산해서 5년 만에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멋지게 자리를 잡았다면, 그걸 비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녀와 체가 노래했듯이 '영원한 사랑은 없다'는 걸 우리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그녀가 한 건 시카고의 록시처럼 쇼 비즈니스에서 한자리를 차지했을 뿐인데? 한 남자에게 순애를 보이다가 눈물 흘리고 좌절하는 것보다야 성공의 발판으로 삼고 그게 정말 성공으로 이끌었다면 된 것 아닌가. 만약 그렇다면 그녀는 처음에 그녀에게 도시에 대한 꿈을 심어준 탱고 가수의 말만 철석같이 믿고 5년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어차피 그는 돌아오지 않았겠지만.
산후안 대지진의 구호 기금을 마련하는 자리에서 그녀는 후안 페론을 만나 둘 다 첫눈에 반한 것처럼 빠져들었고 그 이후에도 함께 한다. 배우의 길을 뒤로하고 후안을 전폭적으로 지지하는 과정에서 그녀 자신의 지지도 무척 높아졌다. 후안 역시 많은 위협을 받았을 테고 그래서 망명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에바는 그때마다 그런 패배주의적인 생각에 빠지지 말라고, 지지하는 국민들을 생각하라며 용기를 주었다. 아마 흔들리는 후안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이 이야기도 여기서 끝났을 것이다.
기득권층이라면 그녀가 '근본도 없이 감히' 이 자리까지 넘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약점을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다. 그녀의 이야기는 로맨스 판타지나 드라마에서 일어날 법한 일에 가깝다. 내가 대통령의 영부인이 되다니! 그들이 그녀의 배경과 이미지를 깎아내리더라도, 그녀가 출신 배경을 덮으려고 하지는 않았다. 페론이 갇혔을 때도, 여러 연설에서도 노동자와 자신을 동일하다고 표현하며, 페론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듯 여러분을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하는 걸 보면 말이다.
계속 남는 무거운 의문이 있다. 정말 에바와 후안 페론이 아르헨티나를 돌이킬 수 없는 망조로 끌고 내려난 것일까? 자선사업을 하면서 돈을 너무나 흥청망청 써서 그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진 것일까? 대통령과 영부인이 되었으니 몇 년 만에 나라를 망가뜨릴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국민들은 어리석은 선택을 한 것이고, 아직까지도 어리석음에 빠져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그렇게나 페론, 에바, 에비타를 외치고, 그리워하고, 눈물 흘린다. 그녀는 자신을 위해 울지 말라고 할 정도로. 그게 공연을 보면서도, 공연을 보고 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의문이었다.
물론 그녀의 자선사업이 '지속 가능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르헨티나가 농업에서 경공업으로 산업구조를 바꿔가고 있었다고 하지만, 이 시기에 나라의 성장을 이끌어갈 생각까지는 부족했을지도 모른다. 성장이나 생산을 고려하지 않고 자선에만 너무 치중했다면 어쩌면 타격이 생겼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전략적으로도 노동자들의 지지를 많이 받고 있었던 페론이 노동자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지 세력을 배신하는 셈이 된다. 그가 되지 않았다면 아마 이전처럼 군부가 통치를 했을 것이고, 실제로 페론은 그 이후에도 군부로 인해 대통령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기도 했다.
노인과 미혼모를 돕고,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고, 가족들에게 빵을 주고, 노동자들에겐 유급휴가를 쓸 수 있게 장려하고, 여성 참정권을 얻고자 애를 쓴 모습을 보면 가난과 배고픔, 사회적 약자에 대한 고민을 한 걸로 비판하기는 어렵다. 영화에서는 캄캄한 곳에서 살던 이들에겐 전기로 불이 켜지고, 물이 콸콸 나왔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에바를 그리워한다면, 그건 앞날이 캄캄했던 그들에게, 불안한 세상이 처음 따스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기 때문이다.
뮤지컬을 보고, 영화를 보고, 뉴스를 보고, 영상을 보면서 고민해 보았다. 그래서 그 남은 의문에는 어떻게 스스로 답변할 수 있을까. 한 나라가 망해가는데 단 한 사람, 혹은 두 사람만 탓할 수는 없을 것이다. 페론은 포퓰리즘으로 유명했지만, 그의 반대세력은 그와 반대의 길을 가면서도 더 큰 빚더미에 오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그에게 다시 정권을 맡기려고 했던 모습이나 페론주의의 일파로 다시 정권을 잡은 정치가들을 보면 이 향수는 과거가 단순히 미화된 것으로만 보기는 어렵다.
뮤지컬 에비타는 에바를 국민들의 사랑에 빠진, 야망이 많은 여자로 그려냈다. 대사 중엔 부통령을 하고자 하는 그녀의 열정이 허무하게도 보였지만, 그건 잘 드러나지 않았던 아쉬운 부분이다. 그녀의 욕망 때문만이 아니라, 이미 그녀는 부통령에 준하는 일 그 이상을 하고 있었고 다른 지지자들이 그녀가 부통령을 했으면 좋겠다는 시위도 한 상태였다.
아마 페론의 사람들도 그녀가 정신적 리더 그 이상의 존재가 되기를 바라진 않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도 여자 부통령은 2020년이 되어서야 만났으니 어느 나라라고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녀를 두고 무엇을 했나? 26살에 영부인이 된 그녀가 야망이 많은 것이 문제였다면, 혹시나 잘못된 선택을 했다면 그보다 2배가량 나이 차이가 많았던 후안이,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움직였어야 한다. 자발적이지 않은 자발적 기부를 하게 해서 기업가들이 망명하게 가만히 보고만 있었고, 유럽 국가 순방을 할 때도 지켜만 보지 않았나.
30대에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까지 그녀는 쉬지 않고 그의 유세에 참여했고, 나중에는 서있을 기운이 없을 때도 지지대에 몸을 기대서 사람들 앞에서 서게 했다. 그녀의 죽음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분분하다. 남편인 후안의 첫째 부인 역시 자궁암이었기에, 그가 영향을 미쳤다는 설로 있고, 그녀가 정확히 어디가 좋지 않은지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그 와중에 고통으로 감정이 격해지자 전두엽 수술을 시켰다는 설도 있다. 그녀는 죽음 이후에도 미라가 되어, 존재감을 계속 드러내야 했고 수난을 겪으며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지지 못했다. 적어도 죽음 이후의 행보는 그녀가 바란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 내용이 뮤지컬에서는 그려지지 않아서 아쉬웠다. 죽음이 그녀의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럼에도 체가 필요하고 마음에 들었던 건, 그녀를 예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마저 그녀를 예찬했다면 이 극의 균형이 맞지 않았을 것이다. 큰 고민을 하지 않고 대단한 사람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만들었다며 흡수하고, 이렇게 고민하면서 에비타에 대해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누군가를 냉소적으로 평가하려면 보다 많은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생각하면, 균형된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누구보다 도움을 주었다. 그가 조금 약 오르게 느껴진다면, 조금 불쌍해지는 순간도 오니까 괜찮다. 우리의 체는 커튼콜 후 앵콜에서 7/8 박자의 넘버로 관객들의 호응을 끌어야 하는데 2,2,3 박자로 쪼개야 하는 박자라 관객들과 체가 동시에 난처하다. 미리 7/8박자와 조금이라도 친해지고 간다면 이 역경을 헤쳐나가기 쉬워질 것이다.
처음 들을 때부터 끌렸지만 그 뒤에서 여전히 생각나는 넘버는 'I'd be surprisingly good for you'. 플룻 소리와 함께, 후안 페론을 처음 만나 에바와 둘이 서로 호감을 잔뜩 표시하는 넘버다. 공연을 다 보고 나면 이 문장이 또 다르게 해석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후안과 에바는 정말 놀랍게도 좋은 존재였을까. 후안에게 에바는, 에바에게 후안은 좋은 사람이었을까. 에비타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는 'Don't cry for me, Argentina'이지만, 에비타가 가장 하고 싶었던 질문은 '당신에게 정말 내가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었나? '였을 것이다. 그건 평범한 사람이라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배우가 아니더라도, 대통령의 영부인이 아니더라도 늘 궁금할 질문일 테니까.
It seems crazy, but you must believe
There's nothing calculated, nothing planned
Please forgive me, if I seem naive
I would never want to force your hand
But please understand I'd be good for you
(중략)
But do you understand my point of view?
Do you like what you hear, what you see,
and would you be, good for me too?
I'm not talking of a hurried night
A frantic tumble then a shy goodbye
Creeping home before it gets too light
That's not the reason that I caught your eye
Which has to imply I'd be good for you
I'd be surprisingly good for you
뮤지컬 에비타 'I'd be surprisingly good for you'
이 리뷰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