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몽유도원'과 소설 '몽유도원도'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새로운 뮤지컬이 막을 올린다는 소식을 들으면 고민을 하게 된다. 뮤지컬 티켓은 올라가긴 해도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고 이미 알려진 공연만 보고 싶지는 않은 마음이 부딪히기 때문이다. 최인호 작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큰 규모로 우리의 색을 가득 입힌 뮤지컬을 만들지 않았을까 기대가 됐다.
참 '고운' 공연이었다. 공연 내내 배경으로 수묵화 그림이 다양하게 펼쳐지는데 소매가 긴 의상과 아기자기한 소품과도 잘 어울려서 무대의 느낌을 한층 살려주었다. 앙상블을 포함해서도 의상 소매가 특히 아름다워서 눈이 무척 즐겁다.
그러나 이야기는 마냥 곱지 않다. 설화는 종종 생각보다 잔인하다. 몽유도원에서 다루는 설화는 도미와 그의 아내 아랑, 그녀를 원하는 백제의 개로왕 여경에 대한 내용이다. 저렇게 아름다운 꿈 속에서 여인과 사랑하게 된 여경은 꿈을 깨고 나서도 그녀와 같은 사람을 현실에서 찾고자 한다. 세상은 예상보다 좁았고, 마침 향실이라는 신하가 꿈속 여인과 동일한 얼굴의 여인을 찾게 된다. 그녀는 이미 도미라는 읍차(마한 목지국 후손, 소국의 우두머리)의 아내였다. 이미 혼인을 한 상태인데도 여경은 포기하지 않고 계략을 펼쳐서 아랑을 자신의 곁으로 데려오려 한다.
저렇게 아름다운 꿈 속에서 당신을 기다렸다고 하고 사라진 여인이 있다면, 여경처럼 그녀만을 찾아 평생을 바칠 수 있을까? 뮤지컬만 봤을 땐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꿈이 좋았을 수는 있지만, 그랬다고 저렇게까지 한다 싶게 그의 절절한 사랑 혹은 집착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공연을 보던 순간 여경을 가장 이해하기 어렵기에 그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리뷰를 쓰기로 했다.
"저는 억겁을 통해서 당신을 사랑해 온 여인입니다.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 하늘의 허락을 얻어 잠시 지상에 내려왔습니다"(p.14) - 소설 '몽유도원도'
소설 '몽유도원도'를 보니, 이 꿈속의 여인은 여경의 마음을 뒤흔드는 말을 던졌다. 마침 꿈에서 그녀와 평생을 사랑했다고 하니, 그렇다면 여경이 그랬을 수도 있겠다 싶다.
마침 보름달이 뜬 이날은 극 중에서 도미와 아랑이 혼인을 하는 날이었다. 함께 하는 사람들이 솟대를 들고 귀여운 모자를 쓰고 축하해 주는 모습이 귀엽다. 소설에서는 비자라는 인물이 아랑보다 신분이 낮고, 아랑인 척하고 여경을 속이는 입장인데, 뮤지컬에서는 비아라는 인물이 제사장으로서 사람들을 함께 이끄는 역할을 하는 점이 다르다. 도미와 아랑으로 인해 정착하여 살던 곳이 위태로워지자, 비아는 춥고 척박한 곳이더라도 새로운 곳으로 이동해 간다.
한편 향실의 정보로, 꿈속 여인을 현실에서 만나게 된 여경은 일부러 다쳐서 이곳에 머문다. 소설에서는 잘하지 않던 사냥을 하러 가선 말에서 굴러 떨어졌다고. 뮤지컬에서는 사냥을 하러 갔다가 도미와 아랑의 결혼을 축하하는 겸 사람들이 불을 붙이고 화살을 쏘며 즐기는 와중에 다친 것으로 묘사된다.
살벌한 삼국사기 설화가 아니랄까 봐, 여경을 치료하는데 젊은 여인의 피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랑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마시게 했다고 한다. 뮤지컬에서는 피를 마시게 할 리가 없고 그저 다친 상처의 붕대를 갈아주었을 뿐이다.
아랑을 얻고자 하는 여경, 그녀를 지키고자 하는 도미의 바둑 대결이 펼쳐진다. 앙상블이 마치 흑돌과 백돌인 것처럼 나타나서 역동적인 대국을 보여준다. 옷이 한쪽은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다른 쪽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그라데이션이 되어 있다. 인상 깊은 장면이면서도 추가적인 효과로 대국의 흐름을 알려주면 좋았겠다 싶다. 승리가 결정되는 장면에 효과음을 넣어준다거나 혹은 멀리 여경과 도미의 머리 위에 화면에 대국의 흐름(바둑판)을 보여준다거나 한다면 좀 더 흥미로웠을 것이다.
여경은 집착을 대놓고 드러낸다. 도미와 아랑은 서로 여경을 잘 속여보자며 눈빛을 교환하며 다짐하지만, 궁예의 관심법 못지않게 사람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여경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며 분노에 가득 차서 도미의 두 눈을 찔러 멀어버리게 한다. 전에 없던 마음이 당신이 왕이라고 해서 갑자기 생기면 또 갈대 같다고 싫어하진 않았을까? 그의 충신인 향실은 왕의 곁에서 그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주고자 노력한다.
"무릇 모든 부인의 덕은 정절이 제일이지만, 만일 어둡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좋은 말로 유혹하면 마음을 움직이지 않을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향실은 솔깃해진 대왕 여경의 마음에 한 가지 계교를 내어 유혹하였다. 일단 그 소문난 아랑이라는 여인을 한번 직접 보고 나서 마음에 들지 아니하면 그 여인을 버리고 마음에 들면 그런 연후에 다음 방법을 도모해도 늦지 않으리라고 유혹한 후, 우선 그 도미라는 읍차가 살고 있는 부락으로 사냥 나가서 그 여인을 한번 만나 보라는 것이 향실의 권유였다. 여경은 향실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소설 '몽유도원도' p.33-34
이 부분은 소설과 다르다. 뮤지컬에서 여경에게 공감하기 어려웠던 이유는 그가 고민이라는 걸 깊이 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본인은 혼인을 하지 않았지만, 도미와 아랑은 어엿하게 혼인을 했는데 스스로만을 위해서 결혼에 대한 책임이나 무게를 무시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소설에서는 여경이 이 부분을 고민해서 그녀를 포기하고자 하기도 한다. 오히려 그 마음을 돌려놓은 게 충신처럼 보였던 향실이었다. 결혼을 했더라도 금은보화를 주면 마음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향실과 여경의 캐릭터가 더 입체적으로 될 수 있었던 지점이지만, 그 감정을 여경에게 전가해 버렸다.
"사람의 정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마마. 그러나 신의 아내 같은 사람이라면 죽더라도 마음을 고쳐먹지는 않을 것입니다."(p.61)
"하늘과 땅이 서로 바뀌고 욱리하의 강물이 말라서 강바닥의 돌들이 하늘로 올라가 하늘의 별들이 되는 개벽이 일어난다 하여도 신의 아내는 조금도 마음을 변치 않을 것입니다.""좋다. 만약 그대의 아내가 마음을 변하여 내게 몸을 허락한다면 그대의 두 눈을 빼어 장님을 만들 것이요, 그대의 말처럼 굳게 아내로서의 정절을 지킨다면 그때에는 크게 상을 내리고 너를 살려줄 것이다."(p.63)
"대왕마마께서는 내기에서 지고 마셨소. 대왕마마는 신에게 분명히 약속하시었소. 신의 아내가 마음을 바꿔서 몸을 허락한다면 내 눈을 뽑아 소경을 만들 것이며 만약에 신의 아내가 마음을 바꾸지 않을 시에는 후한 상을 내려서 나를 살려 돌려보내시리라 말씀하시었소. 헛허허, 헛허허."
크게 웃으면서 도미가 말하였다.
"보다시피 신의 아내는 마음을 바꾸지 않았으며 대왕은 내기에서 지셨소. 그러하니 약속대로 나를 풀어주시오."(p.99)
"대왕마마께오서 신의 아내의 목을 베어 온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아내의 마음을 가져온 것은 아니오니 신을 그를 믿지 못하겠나이다. 신은 알고 있나이다, 대왕마마. 일월성신이 하늘에서 떨어져서 아리수 강바닥의 돌이 되고 강바닥의 돌이 하늘로 올라가 별들이 된다 할지라도 그 무엇도 아내의 마음을 바꾸지 못할 것이나이다."(P.101-102)
"좋다. 아직 내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여경은 이를 악물고 다짐하였다.
"만약 그대의 아내가 마음을 변치 않는다면 그대를 살려 보내겠지만 만약 그대의 아내가 마음을 바꾸어 나와 상관한다면 그때는 그대를 목매어 죽일 것이다." (103)
-소설 '몽유도원도'
"대왕마마, 도미는 제 남편이며 저 또한 도미의 아내이나이다. 저희들은 지게미와 쌀겨를 먹으면서 고생을 함께 나눈 하늘이 맺어준 부부입니다. 그러므로 대왕마마께서 제게 남편을 버리고 마음을 바꾸어 두 사람의 지아비를 섬기라 이르시니 어찌 제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겠나이까.(p.121)
"그대가 나를 한 번만 속였다면 나는 그대의 남편인 도미의 눈동자를 빼어 소경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나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이나 속였으니 그대의 남편인 도미의 눈동자를 빼어 소경을 만드는 한편, 그를 참형시켜 죽여버릴 것이다.(p.125)
그의 얼굴은 잔인한 복수심으로 불타고 있었다. 그는 아랑의 정절을 탐하는 욕심보다는 두 사람의 금슬에 대한 질투심으로 가학함으로써 고통에 신음하고 괴로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즐기는 것 같은 잔혹한 취미에 빠져들어 있음이었다. (p.126)
"대왕마마, 만약에 소저가 마음을 바꾸어 대왕마마께 몸을 허락한다 하여도 남편의 목을 베시겠습니까."
그러자 여경은 냉정하게 대답하였다.
"만약 그대가 마음을 바꾸어 내게 몸을 허락하여 서로 상관하게 된다면 그때는 도미의 목을 베지 아니하고 목숨을 살려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서로 내기를 하여 약속을 하였으니 목숨을 살려주는 대신 눈동자를 빼어 소경을 만들어버림은 면치 못할 것이다."(p.127.)
"대왕마마, 우리 마족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작은 배에 실어서 물 위에 띄워 보내는 풍습이 있습니다. 남편 도미가 비록 목숨을 잃어 죽은 시체는 아니라 할지라도 앞 못 보는 소경이 되어 이미 죽어 있는 목숨과 다름없으니 그를 배에 실어 띄워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고 생각하나이다.(p.131)
-소설 '몽유도원도'
여경이 이해하기 어려운 캐릭터가 된 건 전적으로 여경만의 잘못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도미와 아랑이 순응적이거나 약한 모습을 보여서 균형이 맞지 않기 때문이다. 극 중에서 그들의 소극적인 저항은 도미에겐 자신의 목숨을 거두고 아랑을 살려달라는 것이고, 아랑은 불길한 일식을 틈타 여경과 원하지 않은 혼인을 앞두고 흔적도 없이 도망치는 것이다.
소설에서는 도미과 아랑은 천생연분 아니랄까 봐 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늘만 살 것처럼 할 말을 해버린다. 도미가 아내가 자신을 배신할 리가 없다고 단언을 해버리면서 여경의 승부욕이 자극을 받기 시작한다. 아랑은 자신이 아닌 비자를 대신 내보내서 왕을 속여버린다. 아랑을 취했다는 생각에 의기양양한 여경에게 도미는 왕이 속았다고 말하고, 실제로 다시 확인해 보니 자신이 두 번이나 아랑이 아닌 비자를 만난 것을 알게 된 왕은 복수심에 빠지게 된다.
설화의 전개를 비슷하게 가져왔더라면 여경은 꿈속 여인에게 미친 왕이 아니라, 희대의 사랑꾼 부부에게 속고 괘씸죄를 물고자 하는 왕으로도 해석될 수 있었을 것이다. 당신이 속았다며 웃어버리는 남편과, 속인 걸 미안하다는 말 대신 자신은 할 일을 했다는 식으로 배짱 좋게 나오는 아내를 보면, 둘의 말이 맞는 말이라도 왕이 마음 좋게 넘어갈 틈이 생기질 않으니까. 서로의 강단 있는 성격을 보여줘야 갈등에 설득력이 생긴다. 만약 다른 여인을 취했다는 개념이 조금 부담스러웠더라면 그 부분은 다르게 풀어나가도 됐을 것이다. 왕이 꿈속의 여인을 그리워했다는 것을 알았다면, 분장을 해서 고운 얼굴을 숨겨서 속이는 방식도 나쁘지 않았을 것이다.
1막의 마지막 결국 소경이 되어버린 도미를 배에 태우는 것은 향실의 몫이 된다. 왕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시작했지만 이 천생연분 부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리게 된 것이다.
소설에서 아랑은 도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왕의 여인이 되기로 마음을 바꾸는데, 최종적으로는 세 번 속이는 것처럼 보인다. 월경 기간이라며 바로 왕을 만날 수 없다고 하면서 시간을 벌었기 때문이다. 왕에게는 남편을 마한족의 문화를 따라 배에 태워달라고 요청을 해서 그를 물에 띄워 보낸다. 소경이 되어 어딘가를 힘들게 헤매는 것보다는 배에 띄우는 게 낫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더 이상 시간을 끌 명분도 사라지고 목욕 재계하면서 절망하던 와중에 남편을 태웠던 배가 그녀에게 떠밀려와서 그 배를 타고 그를 만날 수 있게 된다. 하늘이 그들을 갸륵하게 여겼을 테니 이 정도의 도움은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하늘이 보우하사 용케 살아남은 도미는 어느 외딴곳에서 직접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잘 불어 파도를 잠재우는 재주를 보여준다. 아마도 신라시대의 만파식적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온 게 아닌가 싶다.
극에서는 크게 언급되지 않았으나 경국지색에 버금가는 절세미인인 아랑은 배를 타고 떠밀려온 곳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갑자기 이 얼굴이 문제였다며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랬다. 깨달음이 늦긴 했지만 그게 핵심이긴 했다. 아름다움이 이렇게도 도미와 그녀의 삶을 고달프게 만들었다는 걸 알아버리고 나니, 그녀는 갈대로 생채기를 여러 번 내고서 얼굴을 망가뜨린다. 그녀는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도미는 아니더라도, 왕은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 더 이상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것이라는 데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극 중 2시간이 넘게 아랑을 울부짖으며 찾아다니던 여경은 얼굴이 변한 아랑을 보고서 뒷걸음질을 치며 돌아간다. 돌이키는 발걸음은 만난 지 한 10초쯤 됐을까? 그의 사랑은 외모지상주의였던 것일까. 허탈하기 그지없게 말이다. 한 여자에 미칠 순 있지만 그는 이미 다른 판단력마저 흐려졌다. 향실은 죄책감 때문인지 왕에게 자기 손으로 아랑이 도망치게 내버려 두었다고 실토해 버리고, 여경은 그에게 두 번의 기회도 주지 않고 베어버린다.
한때는 읍차였던 도미는 아랑과 둘만 함께 다닌다. 도미는 피리를 불고, 아랑은 춤을 춘다. 비아와 떠난 사람들과 다시 만나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부부가 고구려로 떠났다 했으니, 백제에 남은 사람들과는 아무래도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둘은 다시 처음 혼인했을 때처럼 고운 모습으로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 얼씨구 아라리요 아르랑 아르랑 아라리요 아르랑 얼씨구 아라리요"
아랑이 도미의 피리 소리에 부르던 노래의 소절이 뮤지컬에서도 앙상블의 목소리로 자주 울려 퍼진다. 그게 아랑의 노래인 것이 좀 더 강조되었다면 큰 의미가 있었을 것 같지만 아르랑이란 단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것이 있으니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유달리 서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게 된 작품이었던 건, 아마도 다른 부분이 마음에 들기 때문이어서 아쉬운 마음 때문이었다. 마음에 들수록 아쉬운 소리만 가득해지는 심리다. 정가와 판소리, 국악에서 쓰이는 태평소, 소금, 북 등 다양한 악기가 때로는 전면에 나올 때도 있고, 때로는 조화롭게 느껴졌기 때문이기도 하다. 입에 맴돌아 부르고 싶은 넘버가 있다기보다는, '몽유도원, '목지의 옛 노래', '어이해 이러십니까', '어둠이 깊어질수록', '인생은 한바탕 꿈놀이'처럼 다시 찾아 듣고 싶은 넘버가 있다.
여경은 여러모로 참 외로운 삶을 살았다. 매달리던 사람도, 사랑도 얻은 바 없다. 신하들도 떠나고, 전쟁도 패했다. 난 데 없이 어떻게 날아왔나 싶은 화살을 맞고 숨을 거뒀다. 그의 패착이 있다면 그는 현실에서 꿈을 좇기만 한 것뿐이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 했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의 쓸쓸함은 넘버에서도 나타난다. 여경, 도미, 아랑 셋이 함께 나오는 건 '죽여주소서' 1곡만 있고 여경이 혼자 소화하는 넘버들의 감정선이 비슷한 편이다. 여경의 넘버에 아랑이 소리가 아니더라도 무대에 함께 등장한다거나, 효과를 넣어주는 식으로 표현을 해주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는 그의 그 엄청난 꿈의 내용을 정확히는 알지 못하니까. 새삼 보니 여경과 아랑은 둘만 함께 하는 넘버가 하나도 없다. 여경과 아랑이 함께 한 것은 앙상블과 함께한 꿈속. 몽유도원뿐이다. 그의 꿈을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현실에서의 안쓰러움만은 확연하다.
-이 리뷰는 ARTinsight와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