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사려보려 애쓴 시간들
남편과는 주말부부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일을 유지해야 했고, 나는 친정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그 집은 오래 머물 수 없는 곳이었다.
하루, 이틀이면 숨이 막혔다.
나는 아버지를 싫어한다.
나에게 아버지는 생물학적 존재일 뿐,
아무 의미도 없는 사람이다.
초등학교 이전의 기억 속 나는
울고 있는 엄마 곁에 있었다.
옥상 한쪽에 앉아 흐느끼던 엄마가 말했다.
“내가 너를 두고 어디를 가겠니.”
그때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함께 울었다.
그 장면만이, 내 기억 속에 남았다.
폭력적인 아버지, 울고 있는 엄마,
그리고 그 옆에서 바라보던 어린 나.
아버지는 존중을 모르는 사람이었다.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때렸다.
엄마는 늘 참았다. 그게 삶이었다.
사진 속엔 웃음이 남아 있지만,
내 기억 속엔 없다.
사랑보다 배신이 더 깊이 새겨졌기 때문이다.
이제 늙고 병든 아버지를 봐도
여전히 마음은 굳게 닫혀 있다.
엄마는 아직 그와 함께 산다.
언어폭력은 지금도 멈추지 않았다.
나는 안다.
엄마의 삶은 끝내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음을.
오빠 둘은 아무도 말리지 못했다.
큰오빠가 때릴 때면,
그 어떤 어른도 끼어들지 않았다.
말리면, 맞는 대상이 바뀌었고
그만큼 폭력은 더 심해졌다.
나는 그 집안에서 가장 오래 맞은 사람이었다.
웃어도, 울어도, 대답을 안 해도
무슨 이유든 폭력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무표정해졌다.
그게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우리 집의 폭력은 대물림이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아들들.
여자들은 언제나 화풀이의 대상이었다.
어느 여름날, 또 폭력이 시작되었다.
의자가 부서지고, 머리에서 피가 났다.
노란 원피스에 떨어지는 피를 보며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이제 그만 끝났으면 좋겠다.’
그 생각 하나뿐이었다.
베란다로 향하던 순간,
문 앞에 서서 울고 있던 엄마를 보았다.
그 앞을 지나칠 수 없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엄마가 살아 있는 동안까지만, 살아보자.”
그렇게 나의 인생 2막이 시작되었다.
엄마는 나의 목숨이 되었다.
아버지는 여전히 변하지 않았고,
엄마는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일했다.
그 덕에 집을 마련했지만,
명의는 여전히 아버지였다.
“나가라.”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게 사라질 수 있는 집.
그게 엄마의 현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숨이 막혔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이다.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모든 것이
그 아이의 세상이 된다.
나는 엄마다.
그리고 여전히, 딸이다.
나에게 부모는
불안과 고통이자 전부였다.
그래서 오랫동안
그들을 ‘불행’이라 부르고 싶지 않았다.
엄마는 내 목숨이었다.
그런 엄마가 내 불행의 씨앗이라면,
그건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한 날,
숨이 멎는 듯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숨이 자주 막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그건 트라우마의 흔적이었다.
언니는 말했다.
“너는 엄마가 좋은 사람 같지?
아빠보다 더해.”
처음엔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을 함께 지내며 알았다.
엄마도 아빠와 다르지 않았다는 걸.
그건 나를 또 한 번 무너뜨렸다.
엄마의 언행은
나의 감정 구조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그 영향은 절대적이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다.
행복했던 날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억은 왜곡되었다.
엄마의 울음과 아빠의 외도,
그 사이에서 형성된 사랑은
두려움, 공포, 절망으로 엉켜 있었다.
그럼에도 하나는 분명했다.
나는 부모처럼 살지 않겠다고.
그들의 방식이 남긴 상처는 지워지지 않았지만,
그 상처 덕분에 나는
끝없이 ‘다르게’ 살고자 애썼다.
좋은 사람이 아니면서도
좋은 사람이 되려 애쓴 이유.
그건 그 하나의 배움 때문이었다.
그 아이가 어떤 세상을 만나게 될지는
결국 나에게 달려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배운다.
하지 못한 표현을 연습하고,
듣지 못한 말을 따라 하고,
하지 못했던 행동을 시도한다.
그건 완벽한 변화가 아니다.
기억 속에 없는 행동을 따라 해보고,
몸에 배지 않은 따뜻함을 흉내 내며
조심스레 살아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금의 나에겐
가장 진심인 일이다.
연기처럼 보일지라도
그 안엔 간절함이 있다.
그건 내가 진짜로 변하고자 하는
작은 몸짓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