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결혼식장의 일을 떠올려 보면,
그날의 모든 일들 그리고 앞으로의 모든 일들까지도
그 안에 담겨 있었던 듯하다.
나는 그때 눈치채지 못했다.
무의식 속에서 흘려보낸 나의 습관들이
사실은 아주 중요한 신호였다는 것을,
뒤늦게야 후회하게 되었다.
집안 첫인사 때 나는 놀랐다.
3대가 한자리에 모인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모두가 웃고 있었고, 분위기도 활기찼다.
하지만 왠지 모를 기시감이 있었다.
이유는 몰랐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그땐 굳이 생각하지 않았다.
낯선 불편함에 굳이 이름 붙일 이유도 없었다.
그렇게 지나쳤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알게 되었다.
그날 느꼈던 이상함의 정체는
온기가 아니라, 연극 같은 온도였다.
진심이 아니라, 체면으로 포장된 웃음이었다.
결혼식장에서도 그 느낌은 계속됐다.
너무 큰 웨딩홀이 낯설었고, 남편의 하객은 넘쳤다.
우리 가족은 한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사진 촬영 후 내려간 식당에서
처음 뵙는 집안 어른에게 인사드리다
“너 그러면 안 돼.”
갑작스러운 꾸중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환복 후 쉬라고 마련된 신랑신부 대기실엔
시어머니의 가족들이 들어가 있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웃음 너머로 그들의 시선을 따라 보았다.
우리 가족을 팔짱 낀 채 노려보던 시어머니와 그 여동생.
그 한 장면이 내 결혼식의 전부였다.
‘우리 가족이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지?’
상견례 때 미리 말씀드린 인원인데,
챙김 받지 못하고 오히려 노려지는 눈빛.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칼날이었다.
내 속은 절규했다.
저 상황이 내 탓인 것만 같아,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나 때문에 받지 않아도 될 취급을 받은 것 같아,
미안하고 또 미안했다.
그날 이후, 나는 남편에게 거칠게 말했다.
“그곳에 간 내 가족 중 그 누구도 그런 취급을 받을 이유는 없었어요.
다시는, 누군가의 체면을 위해 내 가족을 희생하지 않을 거예요.”
늘 시끌벅적한 시어머니의 가족들.
표면적으로는 화목했다.
모이면 웃고, 서로의 말을 맞장구쳤지만
그 웃음에는 온기가 없었다.
말끝엔 늘 돈이 있었다.
누가 얼마를 벌고, 누가 얼마를 썼는지.
돈으로 평가하고, 돈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
그들의 대화에는 사랑보다 돈이, 감정보다 계산이 많았다.
‘의정부 조카’처럼 돈을 잘 버는 사람은 언제나 예외였다.
그 아이의 지갑은 언제나 열려 있었고,
그건 ‘괜찮은 일’로 여겨졌다.
가면같이 웃는 얼굴들.
서로의 감정보단 자기감정에만 취한 사람들.
나는 그들이 화목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건 진짜 화목이 아니라,
돈과 체면으로 묶인 동맹이었다.
그들의 모임엔 언제나 아이들이 있었지만,
아이들의 눈은 웃지 않았다.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고개를 끄덕이는,
순종적인 ‘작은 어른들’이었다.
그때 알았다.
저 사람들의 ‘화목’ 속에서
내가 숨 쉬기 어려운 이유를.
그 웃음의 공기가 너무 탁해서,
숨을 들이쉴 때마다 내 마음이 조용히 메말라갔다.
그날은 솔이가 태어난 지 백일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시어머니의 어머님,
그러니까 솔이의 증조할머니가 아이를 꼭 보고 싶다고 하셨다.
시부모님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가면 다들 아이를 안고 놓지 않을 거다.
솔이 보자마자 물고 빨고 난리 날 거다.”
그 말에 나도 살짝 기대가 됐다.
정말 그렇게 아이가 사랑받는다면,
그건 얼마나 따뜻한 일일까.
하지만 막상 그 집 문을 열었을 때,
그런 공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시어머니의 여동생은 평범하게 인사를 건넸고,
그들의 아이들도 하나둘 들어왔지만
누구도 아이를 반기거나 안아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의례적인 미소,
형식적인 “잘 왔어”만 오갔다.
그런데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들떠 있던 사람은
솔이 아빠였다.
“이쁘지? 사랑스럽지? 안아봐, 이쁘지 않냐?”
그는 웃으며 아이를 건넸다.
하지만 그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억지로 손을 내밀어 아이를 받았다.
그 순간, 내 눈앞의 풍경이 낯설게 일그러졌다.
누구도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들은 예의로 미소를 지었을 뿐,
그 웃음엔 온기가 없었다.
남편은 그들의 표정을 보지 못한 채
혼자 들떠 있었다.
그 장면이 내겐 참담했다.
누구도 바라지 않은 사랑을
굳이 증명하려 애쓰는 그 모습은
사랑이 아니라 ‘구걸’처럼 보였다.
그날의 공기는
마치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사람들 같았다.
자기들만의 상상 속에 취해 있었고,
그 상상 속에서
내 아이의 사랑은 조용히 구걸당하고 있었다.
그날의 나는 분노와 서늘한 냉정을 동시에 느꼈다.
사랑을 말하던 사람들의 얼굴엔
정작 따뜻함이 없었다.
그때 알았다.
사랑은 말이 아니라 눈빛이고,
온도이며, 마음의 방향이라는 걸.
그날 그 집엔
사랑의 말은 있었지만, 사랑의 체온은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상상 속에서만 들떠 있었고,
그 상상 속에서 내 아이의 사랑은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구걸되고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그토록 믿고 싶었던 가족의 환상이
산산이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
품 안의 아이는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고요 속에서, 나만이 떨고 있었다.
내려오는 차 안에서
나는 한참을 말이 없었다.
창밖으로 스쳐가는 풍경보다,
방금 전의 공기가 더 무겁게 따라붙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는 우리 아이의 사랑을 구걸하지 말아요.
솔이는 그 자체로 충분히 사랑스럽고,
이미 충분히 사랑받는 아이예요.”
남편은 처음엔 화를 냈다.
하지만 한참을 말없이 운전하다 작게 중얼거렸다.
“당신 말이 맞는 것 같아.”
그 말이 내 가슴 어딘가에 조용히 닿았다.
무겁던 공기가 조금은 옅어졌다.
나는 창문에 비친 잠든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엔
세상의 어떤 사랑보다도
단단한 온기가 있었다.
내 아이의 사랑은
그 어떤 사랑보다도 내가 더 단단히 지켜줄 것이다.
그 누구의 동정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언젠가 그도 스스로 알게 되길 바랐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다짐했다.
“더 이상 내 아이의 사랑을 구걸하게 두지 않겠다.”
하지만 결혼식이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오자,
세상은 또 다른 방식으로 나를 시험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