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지인 찬스

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by 가을꽃나무

나는 더 이상 시댁과 연결되는 일,

남편의 지인들과 얽히는 일을 꺼려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늘 호구가 되었고, 일이 틀어졌고,

결국 피해는 언제나 우리 몫이었다.


그럼에도 남편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습관처럼 ‘지인 찬스’를 쓰며 말했다.


“아버지한테 부탁드려 봐야겠어.”

“이번엔 아는 사람 통하지 말고 해 보면 좋겠어요.”


남편은 마지못해 알았다고 했지만

결국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께 한 번 여쭤보기라도 하자.”


나는 이미 지쳐 있었고, 결론이 정해진 설득이었다.


그 반복에 무력해진 나는

결국 체념 섞인 동의를 했다.


“그럼, 물어보기만 해요.”


하지만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시아버님은 “그것보단 싸게 할 수 있다”며

두 팔을 걷어붙이고 우리의 공간으로 들어오셨다.


‘그래, 전문가시라니까.’

그때는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했다.




공사가 시작됐다.

현장은 이미 무너지고 있었다.


도면 요청이 들어와,

밤에 아이를 재우고 줄자를 들고 가게의 실측 사이즈를 재며 밤을 보냈다.


시아버님은 아는 분들을 모셔 함께 내려오셨고,

공사하며 지내실 숙소와 식대도 마련해 드렸다.

다행히 건물주 이모님이 1층에 식당을 하고 계셔서

그곳에 부탁드릴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이후였다.

매일같이 시아버님은 나를 불렀다.

솔이를 두고 먼지 날리는 공사장을 오르내렸다.


아버님께 도면을 드리면 끝날 줄 알았던 일은

또 다른 요청으로 이어졌다.


“이건 실제 장비 크기가 필요해.”


그날부터 나는 다시 자료를 찾고,

제품 사이즈를 일일이 기입하며 드렸다.


하지만 반복되는 호출로

하루에도 몇 번씩 현장을 오갔다.


남편은 “내가 중간에서 조율할게.”라고 했지만,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온 말은 늘 같았다.


“이쪽엔 뭐가 들어가?”

“사이즈가 몇이더라?”

“이건 이게 낫지 않겠어?”


“아니요, 이건 이렇게 해야 돼요.”

그렇게 말하고 올라갔지만,

잠시 후면 또 전화가 울렸다.


반복된 호출에 한 날은 아이 때문에 서둘러 올라가며 말했다.

“그러면 아버님이 전문가시니까 알아서 잘해주셔요.”




공사 마무리 단계,

나의 도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확인차 내려간 현장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너무 높아진 주방 바닥,

주방과 공방을 연결해 주는 벽 한 면엔

폴딩도어 대신 자바라 문이 달려 있었다.


오픈 천장은 얼룩덜룩한 자국과

노출된 배관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창문 하나 없는 주방,

햇빛 한 줄기 들지 않는 거대한 창고가 되어 있었다.


그곳이 내 작업실이었다.

공사는 결국 중단되었다.


견적은 이미 두 배로 늘어났다.

싸게 하려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고,

“이럴 거면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낫지 않았을까.”


후회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 말이 절로 흘러나왔다.

내 안에 쌓인 무언가가

그 한마디로 새어 나온 듯했다.




일은 계속 꼬였다.

쉬운 길도 멀리 돌아가야 했다.

원인을 모르는 게 아니었다.


“제발 홀로 서자.

남에게 기대는 그 습관을 버리자.”


나는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다.


편하게 가려다 더 힘들게 가는 사람들,

보여주기식의 삶에 갇힌 사람들.

겉으론 고생하고 노력하는 모습,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 그대로였다.


그들은 알까.

이게 얼마나 무의미한 반복인지.


결국 상처만 남은 집 겸 가게.

일부를 다시 리모델링하며 대출금은 더 늘어났다.

중간 임금 대금을 갑자기 지불해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해

다시 융통해야 했다.


그 모든 원인은 시아버님의 닦달이었다.

사업자가 있을 거라 믿었지만 아니었다.

자재는 모두 소매로 구입했고,

결국 이익은 없었다.


공사 인부들 대부분은

건설업을 그만둔 지 오래된 분들이었다.

아버님은 경력자셨지만 오너는 아니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끌려,

편한 대로, 빠른 대로 진행된 공사.

결과는 엉망이었다.




공사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우리 부부는 눈에 보이게 금이 가기 시작했다.


한숨이 나왔다.

아니, 끝이 없는 한숨이었다.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떨어지는 기분.

정말 속이 터져도 너무 터졌다.


가슴이 뻥 뚫리면 차라리 나을까 싶을 정도로

미칠 것 같았다.


“왜 그러시는 거예요?

사람 말을 왜 듣질 않으세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예요?”


대화는 다툼이 되었고,

다툼은 싸움이 되었다.

그 반복 속에서 남은 것은 불신 뿐이었다.


리모델링은 끝나지 않았고,

결국 남편과 내가

셀프 인테리어로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도록

공사는 이어졌다.


“아직도 해요?”

내가 알지도 못하는 주변 상인들의 물음에

나는 그저 목례만 할 뿐이었다.


거리로 나올 때면

지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남편에게 말을 걸어왔다.


남편은 먼지를 뒤집어쓴 채

그런 그들에게

옆에 서 있는 나를 향해 말했다.


“우리 와이프예요. 예쁘죠?”


그 모습은,

이 더위 속에서도 아내의 일을 도우며

함께 땀 흘리는 사람처럼 보였다.


누군가는 말했다.

“남편이 참 자상해요.”

“부부 금슬이 좋네요.”


그럴 때면 남편은 웃으며 말했다.

“저희 신혼이에요.”

그리고 나를 끌어안았다.


나는 그런 상황마다

가슴 어딘가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가 ‘자상한 사람’으로 비치는 동안,

나는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의 태도 속에서

나는 점점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깨달았다.

내가 발 딛고 있던 이 집이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 되어버렸다는 걸.


그때부터

무언가 계속 꼬이고,

늘어지고를 반복했다.


점점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었다.

벗어나고 싶었지만,

그 방법을 몰랐다.


그게 또 다른 시련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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