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공방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벽은 세워졌지만, 마음은 더 이상 서 있지 않았다.
대출금이 바닥나면서 리모델링 공사는 멈췄고,
남은 부분은 셀프로 진행되고 있었다.
나는 이미 포기 상태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날, 남편은 또 다른 계획을 세웠다.
가게 입구로 들어서는 빈 공간이 거슬린다며,
그곳 일부에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겠다고 했다.
“그래요…”
이젠 뭘 해도 놀랍지도 않았다.
그 말엔 순응이 아니라, 포기가 섞여 있었다.
그렇게 2층의 빈 공간,
안쪽 일부를 ‘바(Bar)’처럼 꾸미겠다고 했다.
그리고 또다시, 지인을 불렀다.
“아는 형이 해줄 거야. 재주가 많은 형이야.”
그 말속에서 나는 드라마 속 ‘홍반장’을 떠올렸다.
못하는 게 없고, 자격증은 많고, 손재주 좋은 사람.
하지만 현실의 그는 그저 ‘열심히 사는 사람’에 가까웠다.
나는 더 이상 말릴 힘이 없었다.
형편은 여유롭지 않았고,
공사 기간 동안 그분이 지낼 곳을 마련해야 했다.
고민 끝에, 솔이와 내가 지내던 안방을 내어주기로 했다.
시부모님이 솔이 먹이라고 소중히 보내주신
여러 가지 먹거리들을 모두 꺼내 대접했다.
‘그래, 솔을 데리고 공사 현장에 지속적으로 올 수 없으니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다.
며칠 후, 솔이 옷을 세탁하러 잠시 집에 들렀다.
하지만 공사장은 낯설 만큼 냉랭했다.
“고생 많으세요.”
인사를 건넸지만, 그의 시선은 내게 머물지 않았다.
남편은 눈치 보며 조용히 말했다.
“갈 때 인사하고 가.”
당연한 말인데, 이상하게 들렸다.
빨래가 다 되어 친정으로 돌아가기 전,
인사를 하려던 순간 그가 전화를 받았다.
가벼운 농담, 웃음소리, 그리고 약속을 정하는 말들.
그 사이에서 나는 서 있었다.
기다렸다.
그 웃음이 끝나기를.
남편은 내 눈치를 보며
그에게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내가 기다린다’는 뜻이었겠지.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계속 웃으며 전화를 이어갔다.
시간이 길게 늘어졌다.
가슴이 끓어올랐다.
‘왜 나는 남편의 지인에게까지 이런 취급을 받아야 하지?’
화가 났지만, 참았다.
전화를 끊은 그를 향해
“고생하세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뒤돌아섰다.
문을 닫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의 태도를 지적하지도 않았다.
그저 동조하듯 묵묵히 있었다.
그때 깨달았다.
‘당신은,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아도 상관없구나.’
‘도대체 나와 왜 사는 걸까.’
그렇게 또, 마음이 무너졌다.
며칠 후, 공사가 끝났다.
그리고 우리는 또 싸웠다.
“그런 사람이 지인이에요?
내가 그런 취급을 받고 서 있는데,
어떻게 한마디도 안 해요?
‘형, 솔이 엄마 간대요.’
그 말이 그렇게 어려운 거였어요?”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문제냐’는 표정이었다.
이번에도, 나만 미친년이었다.
“앞으로 내 앞에서 그 사람 얘긴 꺼내지도 말아요.”
나는 단호히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마치
내가 자신이 아는 모든 사람들과
인연을 끊길 바라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런 말, 한 적 없다.
나는 단지 최소한의 존중을 원했을 뿐이다.
그러나 이제는 설명하는 것도,
이해를 바라는 것도 지쳤다.
그는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대로만 봤다.
그 피로함이
나를 점점 닳아가게 했다.
남편의 지인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든
이제는 상관없어졌다.
솔직히, 이번만이 아니었다.
셀프 공사 중이던 어느 밤,
공사 핑계로 나간 남편이 걱정돼
내려가 보니,
호주에 사는 친한 누나와 통화 중이었다.
그렇게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대화는 ‘하소연’이 아니라 ‘흉’이었다.
그때의 공기, 그 서늘한 기분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도 믿으려 애썼던
남편에게 나는
이미 버려진 사람 같았다.
심장이 싸늘하게 식어갔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 사람은, 절대 내 사람이 될 수 없겠구나.’
남편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다.
특히 함께 부부동반을 꿈꿨다.
처음엔 나도 동의했고, 그가 즐거워하는 모습이 좋았다.
하지만 이제,
그곳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나도 사람이고, 얼굴이 있다.
그들의 앞에서 웃을 수 없고,
웃고 싶지도 않았다.
‘내 흉을 보든 말든,
이제 상관없다.
욕먹은 만큼,
그저 오래 사는 것밖에 더 있을까.’
그렇게 씁쓸한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스스로를 달래 보려 한 노력조차
이제는 무색했다.
몸이 반응했다.
나는 다시 아파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