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급하게 들어간 집이었다.
햇빛이 잘 들고, 바람이 스며들었다.
그게 전부였다.
그 집은 낡았고, 수도에선 녹물이 흘러나왔다.
물엔 쇳가루가 섞여 있었고,
아이를 낳고 그 물로 씻기고, 키운다는 게 두려웠다.
그때의 ‘괜찮아, 괜찮을 거야’는 말이
유일한 위로였다.
창문이 없는 화장실엔 환풍기마저 고장 나 있었고,
현관 센서등도 작동하지 않았다.
집주인에게 고쳐달라 말했지만,
“처음부터 그랬어요.”
그 한마디로 모든 게 끝났다.
그렇게 불안한 공간에서,
나는 아이를 맡을 준비를 했다.
수돗물마다 필터를 달고, 센서등을 교체하고,
환기를 위해 화장실 문엔 커튼을 걸었다.
그렇게 조심조심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 어느 날 새벽,
잠결에 화장실에 갔다가 문이 잠겨버렸다.
뱃속엔 아이가 있었다.
놀라면 안 된다고,
숨을 고르며 아이에게 속삭였다.
“괜찮아, 엄마가 곧 나갈 거야.”
몇 번이고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도 듣지 못했다.
새벽의 어둠은 길고, 조용했다.
그 시간은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고립된 듯했다.
다행히 그날은 엄마가 오기로 한 날이었다.
문 밖에서
“도대체 전화를 왜 안 받는 거야.”
투덜거리며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드디어 나갈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문이 열리고, 빛이 스며들자
다리의 힘이 풀렸다.
엄마의 부축을 받으며 방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병원 안 가도 되겠어요?”라고 묻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그 말들은 점점 멀어졌다.
피곤이 몰려와 눈이 감기려는 순간,
나는 속으로 아이에게 말했다.
“엄마는 씩씩해.”
그날, 그렇게 속삭였다.
시간이 흘러, 그 몸으로 나는 아이를 낳았다.
처음 마주한 얼굴에 웃음이 나왔다.
“어쩜 이렇게 못생겼지?”
그런데도 이상하게, 그 얼굴이 세상에서 가장 예뻤다.
‘이쁘다’는 말은 생김새의 문제가 아니었다.
아주 작은 숨결 하나가, 그저 눈부신 것이었다.
그 집은 여전히 낡았고,
문제들은 해결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매일 아이의 젖을 물리고,
세탁기를 돌리고, 하루를 시작했다.
모든 게 불완전했지만,
그 불완전함 속에서
나는 하루하루 ‘엄마’로 자라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