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이사 날짜가 다가오는데,
마음에 드는 집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결국 급하게 매물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들어간 집은 아이를 키우기엔 적합하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땐, 선택보다 버팀이 더 필요했다.
그 시기 나는
삶에서 가장 큰 결심 중 하나를 해야 했다.
사실, 나는 비혼주의자였다.
결혼 없이도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믿었고,
그게 내겐 더 건강한 방식이라 생각했다.
결혼이라는 제도보다,
서로의 신뢰와 존중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으니까.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달랐다.
아이를 갖는다면 혼인신고는 ‘당연한 절차’로 여겨지는 사회.
나는 그 고정관념을 거스르고 싶었다.
그래서 혼인신고는
내 삶의 큰 틀 하나를 내어주는 일이었다.
아이를 갖기 전,
나는 혼자 난임센터를 찾았다.
남편이 외동아들이라는 사실이
신경 쓰이지 않으려 해도 마음 한편이 자꾸 불편했다.
‘대를 잇는 문제’에 예민한
대한민국의 시어머니의 그림자가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두드리고 있었다.
의사는 말했다.
“인공수정으로도 임신 확률이 1%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는 담담히 받아들였다.
‘그래, 우리 그냥 연애만 하자.
그게 더 나답고, 편할지도 몰라.’
그런데 기적처럼 아이가 찾아왔다.
의학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거의 포기했던 그때,
자연임신이 된 것이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생각했다.
그동안 지켜온 신념들,
나를 지탱해 온 틀들,
그 모든 걸 다시 꺼내놓고 하나씩 바라보았다.
그리고 결심했다.
이 아이를 지켜야 한다.
그 마음 하나로
나는 혼인신고라는 궤도 수정을 감행했다.
그건 단순한 절차가 아니었다.
비혼주의자로 살아온 나에게는
나의 세계를 다시 조립하는 일이었다.
폭력적인 가정에서 자라며
‘나는 아이를 낳으면 안 된다’고 믿어왔던 내게,
그 선택은 두려움이자 해방이었다.
결국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단단했던 틀 하나를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그것이, 혼인신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