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편이 아니었음을

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by 가을꽃나무

임신 초기의 힘든 시간을 지나,

나는 남편과 함께 살림을 시작했다.


그러나 남편이 직장을 그만두면서,

우리는 다시 친정의 도움을 받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가야 했다.


사건의 시작은 내려오기 사흘 전이었다.

시어머니가 전화를 했지만 내가 받지 못했고,

뒤늦게 전화를 받자

“왜 이렇게 전화가 안 되니,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라며

불같이 화를 내셨다.


나는 말했다.

“이곳에 제가 갈 데가 어디 있겠어요,

너무 걱정 마시고.

전화 못 받으면 그냥 그러려니 하세요.”



그 한마디가 불러온 파장은 컸다.

임신한 아내에게 화를 내진 못했지만,

행동으로 불편함을 드러내는 그의 모습에서 이미 알 수 있었다.

남편의 분위기는 눈에 띄게 달라져 있었다.


고향으로 내려오는 날,

차 안에서 그 불씨는 폭발했다.

남편은 단 한 번도 내게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확인도, 이해하려는 시도도 없었다.

그저 어머니의 말을 믿고,

나를 향해 화를 냈다.


“당신이 선택한 여자가 그런 여자예요?”

내가 그렇게 묻자,

그는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


그날 나는 알았다.

이 사람은 내 편이 될 수 없구나.


시어머니는 겉으로는 자상한 척했지만,

본심은 아들을 놓지 않으려는 사람이었다.

첫인사 자리에서 이미 드러나 있었다.


“나는 아이 못 본다.

살다 보면 부부싸움도 할 텐데 그렇다고 친정엄마에겐 말하지 마라.

속상해하실 테니까. 나에게 말해”


돌이켜보면 그 말은

모든 상황을 통제하겠다는 말이었다.


그녀는 늘 집안일을 챙겨주고,

선물이라며 물건을 가득 보냈지만

그것들은 내가 원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거절해도 차에 실려 오는 물건들은

결국 우리 집을 창고처럼 만들어갔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통화 속 목소리는

늘 차갑고 불편했다.

그때마다 나는 이 집에서 가족이 아니라

그저 ‘아들과 함께 사는 여자’ 일뿐임을 절감했다.


고향으로 내려오던 그날,

나의 희망은 절망으로 변했다.


남편에 대한 믿음은 산산이 부서졌고,

이 사람은 내 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 처음으로,

내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남편도 어머니의 영향력과

그로 인한 가스라이팅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관계에서 벗어날 힘은 없었다.


나는 노력하면 한 가족이 될 수 있으리라 믿었지만,

그날 알았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나는 부모의 사랑에도 그림자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인정하게 되었다.


그날은 내 결혼 생활의 균열이 시작된 순간이었다.

희망은 그렇게 절망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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