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뿌리, 내 안의 기억들

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by 가을꽃나무

어린 조카와 함께 지내던 시절,

나는 아이를 돌보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땐 단지, 내가 하는 방식이 옳다고 믿었다.

내가 겪은 괴물 같은 어른들과는 달리,

나는 더 나은 어른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오만이었다.

단호함이 사랑이라 착각했고,

억눌러야 아이가 자란다고 믿었다.

그때의 나는 아이를 가르친 게 아니라,

내 안의 두려움을 아이에게 쏟아냈던 사람이었다.


그렇게 내 안에는 오래된 그림자가 자라고 있었다.

그건 어린 시절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이 남긴 감정의 뿌리였다.


나는 언젠가부터 아이에 대한 꿈을 꾸곤 했다.

그 꿈속에는 햇살이 가득한 들판이 있었고,

그곳에선 아이와 내가 함께 웃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장면에는 남편이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행복했다.

아이의 웃음이 전부였고, 그게 삶이었다.


결혼 후에도 그 꿈이 자주 떠올랐다.

아마도 내게 ‘남성’이란 존재는

불안하고, 두렵고, 불편한 대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그 부재를 안도처럼 느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건,

부정한 기억이 긍정으로 바뀌길 바라는

무의식의 작은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내게, 여자는 ‘하녀’ 같았다.

일하고, 아이를 키우고, 맞고도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하는 존재.

사람이라기보다, 그저 낮은 존재로만 보였다.

감정을 배울 기회가 없었기에

사랑도, 두려움도, 이해도 내 안에 뭉개진 채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을 두려워하며 살았다.

그리고 종종 생각했다.

“남자로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남자가 싫었다.

그런 형상을 가진 존재가 언제나 힘 있고,

나는 늘 나약했으니까.

그래서 날카롭고, 싸울 준비가 된 사람처럼 살았다.

그 때문에 오해도, 이용도, 편견도 많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절대 될 수 없다.

스스로도 그런 사람이 되길 바라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내가 아이를 가졌다.

그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함께 살아가며

비로소 ‘바람’이 생겼다.


“나는 좋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도, 내 아이가 커서 엄마를 떠올렸을 때

‘우리 엄마는 노력하는 사람이었어.’

그렇게 기억해 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의 부모가 나에게 불행이었다면,

나는 내 아이에게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노력한다.

내 아이에게만큼은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아직도,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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