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그날 이후, 나는 더 이상 ‘가족’이라는 말을 쉽게 믿지 않았다.
다정함은 여전히 그들의 언어였지만,
그 말속에는 나를 지우는 힘이 숨어 있었다.
남편은 언제나 자상한 척 말을 꺼냈다.
“어떻게 할까?”, “네 생각은 어때?”
그러나 모든 결론은 결국 그의 의도대로 흘러갔다.
선택지를 주는 척, 의견을 묻는 척.
하지만 이미 방향은 정해져 있었다.
나는 그가 미리 설계해 둔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다.
처음엔 그것이 배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건 ‘자상함의 얼굴을 한 통제’였다.
말 없는 압박, 친절로 포장된 침묵의 지시였다.
그의 방식은 어머니와 닮아 있었다.
싫다고 말해도 통하지 않았고,
오히려 더 자세히 캐묻고, 더 오래 파고들었다.
결국 내가 포기하도록 만드는 방식이었다.
그들의 요구대로 흘러가면
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그래, 날 위한 거겠지.’
하지만 그것은 결코 내 선택이 아니었다.
그저 예정된 결말이었다.
그 사실을 알아버린 뒤로
나는 점점 말을 아끼게 되었다.
그러자 오히려 이상한 여자가 되었다.
남들의 눈에는 그들이 다정하고 배려 깊은 가족이었고,
그 틈에서 버티는 나는 점점 낯선 존재가 되어갔다.
어쩌면 나는 이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연애 시절, 과하다 싶을 정도의 전화와 확인들.
그건 이미 어머니의 그림자 속에서 자란 그의 습관이었다.
그때 나는 조심스레 말했다.
“어머님께 이제 독립하셔야 해요.
당신 나이 마흔이에요.
그리고 어머님도 이제 당신을 놓아주셔야 해요.”
그건 다그침이 아니라 존중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존칭을 써야 한다고 믿었고,
그래서 더욱 단단한 관계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그 말은 끝내 닿지 않았다.
혼인신고 전에도, 결혼 후에도,
몇 번이나 말했지만 돌아오는 건
언제나 벽 같은 침묵뿐이었다.
그때부터 알았다.
역시 그는 나의 편이 될 수 없는 사람이었구나.
나의 사람이 될 수 없는 사람이 맞는구나.
그렇게 현실 속에서도, 나는 매번 같은 결론에 닿았다.
그리고 그 미련을 끊어내는 연습을
끝없이 반복하며 살아야 했다.
억울함이 남아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그 또한 소용없었다.
오히려 나는 점점 ‘이상한 여자’로 변해갔다.
그는 나를 이해하지 못했고,
시부모는 나를 불편해했다.
그들의 기준에서 나는 늘 예민하고, 낯선 존재였다.
그럴수록 나는 나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화목해 보이는 가족, 다정한 남편.
그런데 왜 나만 불편할까?
내가 이상한 걸까?’
‘나만 아니면 괜찮겠지.’
그 생각이 반복되자
나는 점점 내 안의 목소리를 잃어갔다.
싫다는 말을 삼키고,
속상하다는 말을 감추며,
나의 감정이 불편을 일으킨다고 믿었다.
그렇게 나는 사라졌다.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마치 깊은 물속으로 가라앉듯,
점점 더 아래로, 더 깊은 어둠으로.
내 안의 빛이 닿지 않는 곳까지.
그곳에서 나는
나조차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버티는 방법만을 배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