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그 시기 즈음,
시부모님을 마주하는 일조차 버거웠다.
이제는 아무리 좋은 생각을 해도, 웃어줄 수 없을 만큼
감정은 이미 한계에 닿아 있었고, 숨이 막혔다.
남편은 중간에서 중재는커녕
전달자 역할조차 해주지 못했다.
그런 와중에,
시부모님은 또다시 예고 없이 들이닥쳤다.
스타렉스를 한가득 실은 채로
작은 차도 아닌, 큰 차에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서였다.
차 문이 열리는 순간, 알았다.
이 리모델링된 공간도 곧 창고가 되겠구나.
그들이 물건을 내리며 말했다.
“이건 냉장고에 넣고, 이건 저쪽에 두고…”
… 여긴 내 공간이고,
내 가족의 삶이 깃든 집인데.
어째서 나는
여전히 이 공간에서도
‘소유권 없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걸까.
원하지도 않은 물건들이,
바라지도 않은 물건들이
하나둘 내 생활공간을 잠식해 간다.
숨이 막혔다.
그날,
나는 진심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며칠 뒤,
시어머니는 집에 돌아가 대성통곡을 하셨다고 했다.
그리고 시아버지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다.
> “아니 같이 살면서 시집살이시키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거냐?”
그 말을 남편에게 그대로 전달받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잠시 숨을 삼킨 뒤,
결국 터졌다.
“같이 살아야 시집살이예요?
지금 어머님이 하시는 그대로가,
그게 바로 시집살이예요!”
남편의 태도도 한몫했다.
“이제 진짜 다 싫다.”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남편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걸 누굴 위해 하고 있는데?
너 때문이잖아.”
그 말은,
내 마음 깊은 곳을 무너뜨렸다.
아니, 애써 쌓아 올린 마지막 신뢰까지도.
“나 때문이라고요? 진심이에요?
내가 가게 얻어달랬어요?
이거 안 하면 안 된다고 했어요?
대출받아서라도 하자고 한 게 나였어요?
아니잖아요…”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속에서 뭔가가 무너져 내렸다.
소리가 막혀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속으로 절규했다.
‘공방도 지금은 아니라고 했잖아.
주거공간을 넣어서 리모델링하자고,
그렇게 설득한 건 당신이었잖아.
나는 처음부터 안 한다고 했잖아…’
그날 밤, 나는 대성통곡했다.
억울해서, 분해서,
그리고 그보다 더 참담했던 건 —
지금껏 그를 가장으로 존중하며
그의 뜻을 믿고 따라온 모든 내 마음이
결국 조롱처럼 돌아온 현실 때문이었다.
나는 그의 생각과 결정을
‘동의’ 한 게 아니었다.
그를 가장으로 존중해 준 것이었다.
‘당신이 그렇다면 그렇게 하세요’ —
그건 신뢰였다,
책임 전가가 아니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전가된 책임뿐이었다.
그제야 알았다.
이 사람들의 방식은 늘 같았다.
대답을 유도하고,
결과가 틀어지면
책임을 돌린다.
그들에게 ‘존중’이란,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더는 이 관계 안에서
‘사람’으로 존중받을 수 없다는 걸.
그리고 그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편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