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내 삶은 지뢰밭 같았다.
어린 시절부터 눌러둔 상처들이
여기저기 묻혀 있었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긴장 속에서
살아왔다.
엄마는 늘 본인의 속상함을 핑계로,
이미 알고 있는 아픔을 다시 들춰냈다.
잊을 만하면
꼭 다시 꺼냈다.
이 공간에 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쓰레기장에 쓰레기를 버리듯,
온갖 부정적인 말들을 꺼내두고 가셨다.
지금의 나는
더 이상 담을 공간도,
흘려보낼 여유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내게 또 엄마는 말했다.
“이 집이 마음에 안 드는 건 마찬가지야.”
하지만 그래도,
살아보려는 엄마가 된 딸에게
그 위에 무게를 더 얹을 필요는 없을 텐데도,
그분은 결국
마음에 들지 않은 공사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그럴 줄 알았다.”
“그러게, 여길 왜 이렇게 해놔.”
결혼 전의 나에게
엄마는 생명과도 같은 존재였다.
그 어떤 부정적인 단어도
그분에게는 적용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의식하는 순간
질식할 것 같은 두려움이 밀려왔기 때문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나에게 고통이 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의식 바깥으로 밀어내는 습관이 있었다.
단지 아픈 기억뿐만 아니라,
남들이 누리는 행복조차도
내겐 비교와 결핍의 고통이었다.
그조차도 느끼기 싫었는지,
나는 그것마저 무의식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래서 나는
힘든 일도, 두려운 일도,
심지어 기쁜 일조차도
오래 머물지 못했다.
조금이라도 내 마음을 흔드는 감정은
모두 ‘견딜 수 없는 것’으로 분류되어
무의식 속으로 사라졌다.
사람들은 종종 말했다.
“같이 봤는데 왜 기억을 못 해?”
하지만 나는 보지 않은 게 아니었다.
그저 의식하지 않기로 선택했을 뿐이었다.
살기 위해,
나를 지키기 위해,
고통이 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무의식의 깊은 곳으로 던져버린 것이다.
그게 반복되다 보니
성인이 되어서도 눈앞의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잦았다.
같이 길을 걷다 누가 말을 걸면,
“방금 봤잖아, 그 사람.”
“어? 누구?”
“바로 옆에 있었잖아.”
“몰라… 못 봤어.”
정말로 안 본 게 아니었다.
굳이 ‘의식하지 않은 것’뿐이었다.
결혼 후,
시어머니의 말버릇과 뒷말은
언제나 내 부모의 목소리와 겹쳤다.
“내가 그랬겠니?... 솔이 아빠가 그런 거겠지.”
시어머니의 가족 탓,
시부모님의 서로에 대한 흉.
그건 아버지가 엄마를 탓하고,
엄마가 아빠를 원망하던 장면과 같았다.
“내가 너를 두고 어디 가니.”
그 말은 처음엔 사랑처럼 들렸다.
나를 향한 다정한 말,
엄마의 마음이 담긴 위로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그 말은
엄마의 발목을 붙잡는 말이었다는 걸.
엄마가 세상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 이유,
그 중심엔 언제나 내가 있었다.
어린 나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저 엄마가 나 때문에 울지 않길 바랐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마음,
그게 사랑인 줄 알았다.
그 감정은 이미
‘희생’의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 목소리가 시댁 안에서 다시 들려왔다.
무시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무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상처를 받자
눌러두었던 지뢰들이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사랑은 숨이었고,
숨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사랑을 무의식으로 밀어냈다.
하지만 이제는 알고 있다.
상처는 반복될 때,
비로소 정면으로 마주해야 한다는 걸.
마주해야만,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