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이혼? 그건 절대 할 일 없어.”
내가 입을 열 때마다
남편은 못을 박듯 그렇게 말했다.
가끔은 내 말이 진심 같다고 느껴질 때면,
그는 단호했다.
“이혼할 사유가 없잖아.
유책 사유가 없는데 어떻게 해.”
나는 매일 죽음 쪽으로
한 발짝씩 걸어가는 기분이었다.
내 말은 그에게 닿지 않았고,
내 고통은 전해지지 않았다.
“살고 싶어… 근데, 살 수가 없어.”
자꾸 등을 떠밀려
죽음 쪽으로 걸어가는 느낌.
그래도 솔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만은
버티고 싶은데..
그 순간,
솔이가 내게 처음 찾아왔던 때가 떠올랐다.
미혼모로 아이를 키울 수 있을까 고민하며,
한부모 지원 정책을 찾아봤던 기억.
그때 ‘한부모’라는 단어는
한 줄기 희망처럼 보였다.
결혼 후, 생활비 없는 나날은
점점 더 버거워졌다.
나는 남편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사실은… 한부모 혜택을 받고 싶어.”
잔머리 굴리기에 능한 남편이었지만
결국 도장을 찍어주었다.
그도 자신의 상황이 여의치 않다고 판단했는지
오랜 고민 끝에 도장을 찍은 것이다.
법원에 가서
나는 또 다른 남편의 민낯을 보았다.
합의서에는
내가 전혀 알지 못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나는 단순히 ‘이혼 자체만 합의한 줄’ 알았는데,
그는 이미 계산을 끝내둔 상태였다.
합의 내용
1. 양육비는 없음
2. 위자료는 현재 집 보증금 1천만 원을 모에게 준다.
3. 주말마다 아이를 만나러 온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남편은 말을 덧붙였다.
“나도 대출 때문에 빠듯하니까 어쩔 수 없어.
대신 보증금은 당신 이름으로 바꿔줄게.”
나는 피식 웃었다.
“우린 같이 살 거잖아.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적어보지 그랬어?”
그제야 알았다.
그는 위장이혼을 합의해 놓고도,
실제로 성립됐을 때를 대비해
자기 계산을 다 해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이혼만 성립되면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혼자 결정하고 적어둔 내용을 보니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선명하게 보였다.
그때 생각했다.
이혼은 잘한 선택이라고.
복잡한 절차가 지나갔고,
마지막 결정 날이 다가왔다.
나는 덤덤한 마음으로 법원을 다녀왔다.
그리고 구청에 가서
우리의 결혼 생활을 서류 한 장으로 끝냈다.
어릴 적부터 사람들은 말했다.
“너는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살 거야.”
나도 생활력 하나만큼은
강하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결혼 후의 나는,
목줄을 차고 앞으로 밀려가는 삶을 살고 있었다.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배려’라는 이름으로 받아야 했고,
그 배려에 갚아야 한다는 의무를 지고 살았다.
숨을 쉬고 싶었다.
목줄을 빼고 싶었다.
그게 내가
이혼을 선택한 이유였다.
“언제든 도망갈 수 있게 풀어놔야 한다.”
그제야 숨이 쉬어졌다.
이혼 성립만으로도
숨통이 트였다.
그동안 몸과 마음과 정신이
따로따로 움직이는 듯한 감각은
나를 끝없이 무기력하게 만들었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나는 우울증을
‘정신이 약해서 생기는 것’이라 여겼었다.
“게으른 거야. 의지가 없는 거야.”
그렇게 단정 짓곤 했다.
하지만
내가 누구보다 처절하게,
끝도 없이 추락했을 때 깨달았다.
“아… 이건 병이구나.”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
정신이 무너지면 치료받아야 하는 병.
숨지 말아야 하고,
도망치지 말아야 하고,
무엇보다 다정한 진심이 필요한 병이었다.
이혼 확정 서류를 들고
곧장 구청과 동사무소로 향했다.
“나는 지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주저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살기 위해 움직이기로 했다.
그리고 또 하나 결심했다.
“이제는 나를 제대로 들여다보자.”
어쩌면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내 마음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나로 돌아가기 위한
숨 고르기를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