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로 살지 않기로 한 삶의 끝에서

다르게 살아보려 애쓴 시간들

by 가을꽃나무

그렇게 공방은 잠정적 폐업 상태였다.

리모델링도, 가게도, 마음도 모두 멈췄다.


하지만 남편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여전히 주문을 받아왔다.

하기 싫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일단은 먹고살아야 했고,

무엇보다 이 공간의 부채 때문이었다.


어느새 짐이 되어버린 월세도 내야 했다.

그것만이라도 벌어야 했다.

마음과 몸과 정신이 따로 움직이는 나로서는

그저 버텨내는 게 전부였다.


남편의 말속엔 언제나

지속적으로, 꾸준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건 어느새 내 안에 ‘쇠뇌’처럼 박혀버렸다.

남편의 대출은

점점 내 책임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

그게 나를 다시 옭아맸다.


불안 속에서, 불편함 속에서

움직이지 않는 몸과 싸우며

나는 하루하루를 견뎠다.

그땐 몰랐다.

왜 자꾸 아픈지, 왜 다치고 또 다치는지.


하기 싫었다.

정말 하기 싫었다.

그런데도 해야 했다.


도움을 주겠다는 지인들이 있었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아

그마저도 부담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남편은 계속 주문을 받아왔다.

오늘은 괜찮다가, 내일은 또 쓰러졌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꾸 신뢰를 잃는 상황을 만들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그냥 주문을 받아오지 않았으면 싶었다.

그런데 또,

나도 모르게 남편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생겼다.


‘사지 멀쩡한데 일도 안 하고 놀기만 하는 여자.’

‘남편은 애쓰는데 집에만 있는 여자.’

그런 시선이 나를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더 들었다.

그렇게 나는 또 다른 생각을 해냈다.


“배달 전문 백반집을 하자.”


편식이 심한 솔이를 생각해서라고 포장했지만

사실,

나 자신을 일으켜보려는 몸부림이었다.

솔이를 핑계 삼은, 또 하나의 망각이었다.


나는 정상이 아니었다.

정상인 척해야 하는, 비정상적인 상태였다.





남편은 자영업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그 한 달의 여유 동안

나는 메뉴 개발이라는 ‘미션’을 받았다.


“한 달이면 되겠어?”

그 말은 마치

어릴 적 큰오빠가 내게 했던 “밥 차려와.”

그 말과 똑같았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해야 했다.

해내야 했다.


그렇게 요리에 매달렸다.

솔이는 아빠가 돌봐줬고,

나는 매일 주방에 틀어박혀 살았다.





아침부터 밤까지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솔이가 ‘엄마’라고 부르지 않았다.

나를 피했고, 아빠 뒤에 숨었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엔 몰랐다.

그냥 잠시 삐진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뭐가 잘못된 거지?

내가 하는 일은 모두 솔이를 위한 건데…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정말 아이를 위한 일이 맞는 걸까.





지난날 주변 사람들의 말이 떠올랐다.


“저기 가게는 애가 어린데,

가게에서 재우면서 일하더라.”

“다들 그렇게 살아.”

“대출 이자도 내야지. 버텨야 해.”


그 말들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집은 그 집인데,

왜 나는 내 아이까지 그 틀 안에 넣으려 했을까.


내 아이는 솔이인데.

그 집의 아이가 아니었는데.

나는 그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제야 멈췄다.

이건 아니구나.





“나, 안 할래.

억지로 살지 않을래.

그리고… 미안하지만, 정리하자.”


그건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살고 싶다는,

정말 솔이와 함께 살고 싶다는

마지막 고백이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이름 대신 ‘역할’로만 서로를 불렀다.





그제야 비로소 알았다.

어떤 조건도 없이 나만을 바라봐주는,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주는

어여쁜 나의 아이.


내가 처음으로 한 일은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일이었다.


어른의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다정하게 말한다 해도,

그건 아이에게는

위압으로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모든 걸 멈추고,

하나하나 다시 바로잡아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다시 웃기까지,

활짝 팔 벌려 다시 안기기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지만 괜찮았다.


그렇게 아이는,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해졌다.


솔이는 내게

‘진짜 삶의 이유’를 알려준 유일한 사람이었다.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걸 알려준 단 한 사람.


“아이의 눈앞에서 멈춰 섰을 때,

나는 처음으로 진짜 ‘나’를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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