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와 있다.
솔이의 증조할머니가 위중하시다는 연락이 와서, 혼자 아이를 데리고 가기 어려워하는 아이 아빠를 도우려고 올라왔다.
나는 지금 호텔 침대에 몸을 묻고, 조용한 방 안에서 이 글을 쓴다. 이따 오후에는 우리가 함께 알고 지내던 사람의 결혼식에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오늘은 연재하는 날인데, 며칠째 머릿속이 텅 빈 것처럼 조용하다.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억지로 쓰는 글은 내 글이 아니어서 손이 더 굳는다.
나는 틀에 오래 머물기 어려운 사람이고, 자유롭게 움직일 때 가장 나답게 살아나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느낀다.
그런데 오늘, “무엇을 써야 하지?” 하며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문득 솔이가 했던 한 문장이 떠올랐다.
“엄마 할 수 있어요. 엄마 힘내요.”
가르쳐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던 말이었다.
나는 솔이가 어려워할 때면 “솔이 할 수 있어요. 힘내볼까?” 하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날 밤, 그 말이 그대로 내게 돌아왔다.
그날은 장난 같은 상황극의 시작이었다.
저녁에 갑자기 따뜻한 국수가 먹고 싶다던 솔이.
집에 재료가 없어서 배달을 시키고, 장난을 치며 놀던 참이었다.
밤이라 집 안이 어두웠는데, 갑자기 초인종이 크게 울렸다.
‘띵동.’
나는 반사적으로 “어, 뭐지? 엄마 무서워...” 하고 장난기가 발동해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데 그 다음.
솔이가 나를 빤히 보더니 눈에 힘을 주고,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우렁차게 말했다.
“엄마 할 수 있어요!”
웃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상황극을 이어가려 참고,
“그래도 조금 무서운데...” 하고 말하자 솔이는 양손을 더 꼭 내게 더 다가와 말했다.
“엄마 할 수 있어요. 힘내요.”
그 작은 두 주먹.
그 눈빛.
그 말투.
그 순간 이상하게도 마음이'찡'했다.
“얘가 언제 이렇게 컸지?”
그리고 더 깊숙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자라온 환경에서는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말인데.”
어렸을 때 나는 언니가 칭찬받는 모습을 부러워했다.
나도 잘하고 싶어 따라 해 보았지만, 결국 언니처럼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앞에 나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고, 언니는 무언가를 주도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정확한 건 언니만 알겠지만, 분위기는 그랬다.
그리고 그때의 부모님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너도 해”
“너는 왜 못해?”
할 수 있어, 가 아니라 왜 못하냐는 다그침.
그 물음은 응원도 지지도 아니었다.
아빠의 눈빛은 더 선명하다.
내가 바라본 그 눈빛은 ‘쓸모없는 것’이라는 말보다 더 깊은 무언가였다.
말로 하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모든 의미가 전달되던 시절이었다.
그 감정이 오래도록 나를 규정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지금도 솔이에게 말을 건넬 때, 아무리 다정해도 ‘위에서 내려다보는 자세’는 경계한다.
아이가 느낄 위압감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습관처럼 한쪽 무릎을 꿇고 아이와 눈을 수평으로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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