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행본
드디어 방학이다.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주말까지는 쉬고, 월요일부터는 미루었던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 했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출근하듯 공부를 이어가겠다는 계획도 세워 두었다.
하지만 그 계획은 시작도 해보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하루 이틀이면 괜찮아질 거라 생각했던 몸 상태가 점점 무거워졌다.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운 날들이 이어졌다.
몸은 마치 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리듯 힘없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원래부터 바닥과 한몸이었던 것처럼 그대로 가라앉아 버렸다.
졸린 것이 아니었다.
눈이 감겨 버리는 느낌이었다.
생각도 잘 이어지지 않았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하는지조차 흐릿해졌다.
시간의 감각도 사라진 것 같았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알 수 없었다. 알람이 울릴 때만 겨우 시간을 인식할 수 있었다.
그래도 딱 하나는 해내기로 했다.
아이 등원만큼은 꼭.
그리고 아이 하원만큼은 꼭.
어린이집 원장님의 배려로 아이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시는 덕분에 잠깐의 이동만 힘을 내면 되었다. 그 짧은 시간조차 버거웠지만, 그래도 그 하나만큼은 해내기로 했다.
많은 것을 해내려고 하지 않았다.
딱 하나만 해내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상담을 다시 신청하게 되었다.
상담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복용 중이던 약을 한 단계 낮춘 시기와 이 증상이 겹쳤다는 것이었다. 최고 단계에서 한 단계 낮춘 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감정과 정신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설명이었다.
24년 중반부터 약을 복용했고, 약을 줄여 본 첫 시도가 25년 12월이었다.
내 생애 처음 겪는 경험이었다.
약에 대해서는 좋지 않은 이야기들을 더 많이 들으며 살아왔다. 한번 먹으면 끊기 어렵다거나, 점점 더 늘어난다는 이야기들 말이다.
복용하는 동안에도 나 역시 불안했다. 약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약 자체보다 더 큰 두려움은 약을 둘러싼 편견들이었던 것 같다.
약을 한 단계 낮추는 과정에서 내가 겪었던 시간은 솔직히 다시 겪고 싶지 않을 만큼 힘들었다. 몸과 마음이 내 통제를 벗어난 것 같은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낯설고 버거웠다.
그리고 그 시간을 지나면서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상처에는 쉽게 공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에는 생각보다 냉담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직접 겪어 보고 나서야 그동안 내가 얼마나 쉽게 판단하며 살아왔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다행히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사람마다 회복의 속도는 다를 것이다. 나에게는 약 네 달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다. 짧다고도, 길다고도 말하기 어려운 시간이다. 각자의 상황과 환경이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는 한 단계 낮춘 상태로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3주 정도 더 지켜본 뒤 다시 한 단계 낮추는 시도를 해보기로 했다.
솔직히 말하면 조금은 겁이 난다. 몸과 마음이 내 통제를 벗어났던 그 시간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내고 싶다.
지금 느끼는 이 안정감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 시간이 조금 더 길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와도 다시 버텨낼 수 있기를 바란다.
내 아이와 눈을 마주하고 웃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아이가 나를 꼭 안으며 엄마가 제일 좋다고 환하게 웃어 주는 순간들이 계속 이어지기를 바란다.
지금의 나는 다섯 살 아이의 엄마다.
그래서 행복하다.
그래서 지금의 삶이 참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