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 그리고 통증 』

욱하는 나를 돌아보는 시간

by 가을꽃나무

오늘은 오프라인 교육의 연장선, 시설 탐방이 있는 날이었다.
힘들게 일정을 조율해 겨우 성사시킨 자리였기에 마음은 조마조마하면서도 설레었다.
질문지를 준비해 조심스레 자리에 앉았지만, 탐방이 끝나갈 무렵 마음 한구석이 무너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소장님 이후 강사님의 말씀이 이어지던 중, 한 교육생이 갑자기 외모 이야기를 꺼냈다.
웃자고 한 말이었을지 모르지만, 내 귀에는 너무 선명하게 박혔다.
게다가 지난주 수업의 주제가 ‘성희롱’이었고, “외모 발언은 왜 문제가 될 수 있는가”를 배운 후였기에 더 그랬다.
내가 준비한 질문과 대답의 흐름 속에서, 그 말은 분명히 분위기를 흔들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강사님께 “죄송합니다”라고 말씀드렸고,
그게 그 교육생의 기분을 상하게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내 안에는 ‘이 자리를 어렵게 마련했는데…’라는 미안함과 감사함이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교육생의 기분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오히려 시비적인 언동이 이어졌다.
나는 “기분이 나쁘셨다면 죄송하다”라고 말했지만, 그 말조차 비수가 되어 돌아왔다.
“사람 무시하는 거냐.” 목소리는 점점 날카로워졌고, 나는 대표로서, 한 사람으로서, 무너지는 자리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했다.


건물 밖으로 나와서도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결국 터졌다.
“적어도 실례가 될 수도 있겠지만… 이라는 말 한마디만이라도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돌아온 대답은 “그게 뭐.”


지난주 수업에서 외모 얘기는 하면 문제 될 수 있다고 배웠잖아요, 라고 했지만
“그게 왜?”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때 나의 인내심이 뚝 끊겼다.
“이 자리 어떻게 마련했는데… 그런 질문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웃자고 한 얘긴데, 사회경험이 없어서 저러는 거지…”라는 말이 돌아왔다.


나는 하면 안 되는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결국 입 밖으로 내뱉고 말았다.
“사회복지를 배우고 35년이라면서요. 그러면 더더욱 그러시면 안 되죠.”


사람들이 말리기 시작했고, 나도 더는 말을 이어가지 말아야 했다.
같이 온 이들에게도 민폐인 상황을 나조차 만들고 있다는 사실.
그들에게 반복해서 “미안합니다”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이미 내 안에서 불길은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다독이려 남아주신 한 분이 있었다. 상담 일을 이제 막 시작한 분이셨다.
너무 감사했다. 민폐인 줄 알면서도, 화를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했다.
지금 돌아보면 감사하면서도, 너무나 죄송한 일이었다.


택시에 발을 디디는 순간, 갑작스런 아랫배의 극심한 통증이 호흡을 막았다.
식은땀이 나고, 통증이 가슴으로 치밀어 올라왔다.
응급실을 가야 하나 발길을 돌렸지만, 정작 응급실 앞에 내리자 고통은 순식간에 참을 수 있는 정도로 가라앉았다.


눈앞의 약국으로 발을 돌리자, 약사는 “위통”이라고만 했다.
약을 먹고 나오면서 나는 내 몸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화가 강한 사람이라서 이렇게 아픈 걸까?’
‘아니면 화는 예전과 다르지 않은데, 내 몸이 이제 그 화를 감당하지 못할 만큼 쇠약해진 걸까?’
세월의 흔적이 내 몸에 쌓이고 깎이고 깎여 남은 상태인 건가.


잠깐이라도 욱하며 토해낸 화는 내 안에 ‘화기(火氣)’를 남긴다.
결국 내 몸은 그 화기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누군가로 시작된 말 한마디가, 나에게 극심한 통증이 되어 돌아왔다.


물론 그 말엔 내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뱉은 말도 포함되어 있다.


도대체 내 통증은 어디서 비롯되는 걸까.
단지 화 때문일까.
아니면 내 몸이 오래 품어온 세월의 흔적일까.


지금으로선 그 답을 찾지 못했다.
다만,
알아차리고, 깨닫고, 돌아보는 과정을
여전히 지나고 있는 중일 뿐이다.


이러다 보면 언젠가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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