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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Nov 07. 2020

둘아이아빠

운동과 아내 사이

나는 36살. 중소기업을 다니는 두 남자 아이의 아빠다.

한 아이는 4살, 한 아이는 100일이 채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7시.

  4살 아이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나와 아내 사이를 파고 들었다. 아내와 나는 새벽 4시에 둘째 아이에게 밥을 주려고 한번 일어났다 잔 터라 피곤한 상태 였다. 아무 말 없이 꼬옥 안았다. 제발 다시 자주길 기도하면서 꼬옥 안았다. 다행이 움직이질 않는 걸 보니 더 잘 생각이 있나보다. 그렇게 잠시 눈을 붙이는데, 아뿔싸. 오늘 아침 동네에서 테니스를 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다. 7시 20분.

  잠깐 아이를 안고 눈을 붙이는 사이, 7시 22분을 지나고 있었다. 부랴부랴 출근 복장을 입고, 몰래 운동복을 가방에 넣어 헐레벌떡 '다녀올께' 말하고 나오려는 찰나.

 "칫솔질도 안하고 가? 운동 하러 가는거지? 솔직하게 말해. 진짜 괜찮아."

  내가 봐도 까치집 머리에 세수도 안하고 나오는 모습이 의심스럽다.

 "급한 일이 있어서 그래. 어제 말했자나.늦었어. 늦었어."

  아내의 의심가득한 얼굴을 뒤로 한채 나왔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나와서 차에 올랐다. 혹시나 의심가득한 아내가 창문 밖을 내다 봤는데, 차를 타지 않고 가는 내 모습을 보면 의심할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조금 나가서 다른 주차장에 차를 대어 놓았다. 어제 미리 차에 실어 놓은 테니스 가방과 테니스 신발을 들고 동네 테니스 장으로 향한다. 카톡에는 연락이 바삐 오고 있다.

  "오늘 안나오세요? 바쁘시면 괜찮아요."

  "지금 나가고 있어요. 죄송합니다."

같이 아침에 테니스를 치기로 한 파트너도 2살배기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양해의 폭이 넓다. 둘이서 치기로 약속했는데, 어떻게 안나가나.. (사실 나도 테니스를 너무 치고 싶다.)

  부랴부랴 도착한 테니스 장. 파트너는 가방을 세워두고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너무 미안한 마음에 라커룸에 들어서자 마자 옷가지를 벗고 갈아 입는다.

  " 죄송합니다. 지금부터 치시죠. "

  아내의 의심을 뒤로 한채 공을 치고 주고 받는다. 공이 왔다 갔다 할 때는 아무 생각이 들지 않는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땀이 흔건히 나고, 아드레 날린이 뿜뿜 나는 이 순간이 너무 좋다. 비록 둘째 아이를 낳은 후 운동시간이 급격하게 줄면서, 잘 치고 있진 않지만 매우 매우 즐겁다.

  아이 보는 시간은 잘 가지 않는데, 운동하는 시간은 왜 이렇게나 빨리 가는지. 출근도 해야 하기에 자꾸만 시계에 눈이 간다.

  그렇게 1시간이 훌쩍 지났다. 마음 껏 치지는 못했지만 기분은 가볍다. 아내가 마음이 넓디 넓은 스포츠맨쉽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나는 집에가서 샤워를 하고 출근을 했을텐데...

  오늘도 라커룸에서 운동복을 빨랫비누로 급하게 빨고, 수건으로 땀을 닦는다. 옷을 갈아 입었지만 식지 않은 땀에 갈아 입은 옷마저 조금씩 젖는다.

  궂이 왜 이렇게 운동을 해야 하지? 싶지만, 아내의 눈을 피해서라도 운동을 하고 싶다. 매우매우.


 예전에는 축구를 주로 했었다. 축구는 22명의 사람이 필요한 구기 운동. 한번 약속을 맺으면 취소하기 어렵고 장소가 멀다. 한 경기당 30분씩 두번 1시간이 걸린다. 한번 나갔다 하면 3~4시간이 걸렸다. 거짓말을 해도 3~4시간을 매주 비울 수 없는 노릇인데다, 한시간만 차고 오라는 아내의 말해 축구는 그날로 포기했다.

 사람을 덜 모아도 되고 시간이 좀 더 잘 짤라진 농구를 했다. 10명이 필요한 경기. 한 쿼터당 10분 안팎의 경기. 하지만 이 또한 거리가 멀기에, 한시간 반만 던지고 오라는 아내의 말에 몇번 참석을 하고는 포기했다.

  그녀의 기준 한시간 반. 육아와 가정일을 전날 하루 종일 해도 허락된 시간은 많으면 두시간 짧으면 한시간. 결국 가장 짧은 거리에 있는 운동을 선택하다보니 5분 거리의 테니스 장이었다.

  30대가 되어서 잘하는 무언가 보다, 새로이 배우는 무언가가 더 좋지는 않았다. 하지만 운동에 대한 갈망으로 레슨비를 꼬박꼬박 내면서 주 2회씩 1시간씩 쳤다. 운동은 역시나, 하면 할수록 욕심이 생긴다. 운동 시간을 늘리기 위해, 동서도 꼬셨다. 아내가 처재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 운동 시간을 늘려주지 않을까? 생각에 시작된 시도. 그래도 주 1회 정도 더 나갈 수 있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시작된 운동은 둘째의 탄생으로 인해, 아내와 운동 때문에 싸웠던 초창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그 사이 내 테니스 실력은 부쩍 늘었고, 운동에 대한 갈증은 심했다. (아이를 들고 집안일도 하느라 무릎이 아파왔지만, 파스를 뿌리고 파스를 붙이고, 약을 먹어서까지 나갔다. 나의 유일한 낙)


  오늘도 좋은 냄새가 안나고, 빨랫비누의 특이한 향 냄새가 나는 옷을 테니스 장 구석에 널어두고는 출근을 한다. 언젠가는 당당하게

  "운동 다녀올께!"

  하고 나가, 집에서 따듯한 물로 씻는 날이 올까? 오늘도 고민을 하지만, 상쾌한 몸으로 출근을 한다.


에필로그

 점심을 먹고 있는데 전화 한통화가 왔다.

  "오빠, 아까 솔직히 운동 나갔지? 테니스 쳤지? 솔직히 말해. 그럼 이해해 줄께."

 그녀는 촉이 좋은게 아니라, 끝까지 찌르고 또 찌른다.

  "아니, 밥먹고 있어. 끊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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