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을 하면서 하고 싶은건 다하고 싶었다. 재수의 끝에 입학한 대학생활. 하고 싶은게 너무 많았다.
입학하자마자 학생회에 가입했다. 학교 일정을 계획할 수 있는 일. 처음 가입한 동아리였다.
사물놀이 동아리를 가입했다. OT에서 꽂혔던 여자 동기가 가입하는 바람에 따라 가입했다.
창업 동아리에 가입했다. 부푼 꿈을 안고 미래를 위해 가입했다.
자동차 동아리에 가입했다. 공대에 입학한 이상 자동차 동아리는 취업에 필수라 생각했다.
축구 동아리에 가입했다. 운동 중 가장 좋아하는 운동이 축구였기에 가입했다.
댄스 동아리에 가입했다. OT 때 나를 이쁘게 봐준 여자선배가 밥을 하도 많이 사주면서 꼬시는 바람에 가입했다.
학교 일정이 시작되고, 동아리 OT참석만으로도 월화수목금토를 술술술술술술과 함께 보냈다. 21살의 간은 건강했고 무엇보다 뜨거운 태양이 비추는 여름, 학원창살 안에서 여행가는 사람들을 볼 때, 대학에 들어가는 순간 미친척 놀기로 다짐했다.
한학기가 끝날 때쯤 동아리는 반토막이 났다. 몸치인지라 춤을 춰도 구석으로 밀려났고 밥은 더이상 사주지 않자 나갈필요가 없었다. 이름은 창업동아린데 술과 안주만 창업아이템으로 매번 나왔다. 기계과 180명. 자동차 동아리를 가입한 사람은 몇명? MT 때 버스 2대를 대절해서 갔다. 동아리 실은 20평 남짓, 나 말고도 버스 2대분의 사람이 한학기 후에 관뒀다.
사실 무엇보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걸림돌이 된건 나이였다. 21살. 내 선배도 21살. 나랑 동기는 20살. 선배라 부르면 호칭 정정해 달라고 했고 동기는 말을 텄다. 재밌는 대학생활을 하기위한 필수 코스라 생각해 참으려 했지만 가슴속에 피어오르는 반감은 꺼지지 않았다.
1년을 남아 있는 동아리활동과 술, 여자 동기에게 대쉬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활동만 쫒아 다니느라 시간을 소비했다.
신입생을 받는 새 학기가 시작됐다. 학생회 소속으로 나는 2학년이 되어 신입생을 받았다. 강당에 열린 첫 OT행사. 분명 나와 같이 미친척 놀고 싶은 재수생 삼수생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자리에 오신 신입생 분들 환영합니다! "
신입생들의 박수와 환호에 몸이 달라 올랐었다.
" 저는 재수생 2학년 입니다. 과 규율상 학번에 따라 호칭이 달라집니다. 하지만 저는 동갑? 받겠습니다. 편안히 문의 부탁합니다. "
선배들이 없는 자리라, 마음껏 소리를 질렀다. 1년간의 나이의 설움.. 너희는 없게 해주겠다. 강당에서의 짧은 OT가 끝나고 단체 버스에 오르는데 재수생과 삼수생이 나에게 다가왔다.
" 1학년 신입생인데요. 진짜 말편히 해도 되는거예요? "
" 당연하죠. 편하게 하세요. 지금 어렵죠? 그 설움 저는 알죠. "
나는 그 날 저녁. 삼수생과 재수생을 내가 소속되어있는 방에 소집할 수 있었다. 물론 강제가 아니라 말을 편히 할 수 있는 방이기에 자연스레 몰렸다. 새볔까지 이어지는 술자리. 1년간 단련된 간이기에 여럿 보내버렸다.
그 중 안경을 꾸깃꾸깃 끼며 멀뚱멀뚱 혼자 앉아 있는 친구가 있었다.
" 친구 ~! 왜 혼자 앉아 있어요? "
" 아, 너구나 ! 말편히 해도 된다고 했던 애. "
내가 분명히.. 말을 놓아야 된다고 했지만, 서로간의 예의 후에 말을 놓을 줄 알았는데... 바로 놓았다. 진짜 바로..
" 네? 아... 네.. 맞아요... "
" 말편히 해. 나 삼수했어. 너랑 동갑이야. "
내가 분명 선배인데, 무언가 거꾸로된.. 기분이 사알짝 언짢았다. 그게 눈치제로와의 첫 만남이었다.
원체 낯선사람에게 말을 잘 놓지 못했던 나는 대화 내내 존댓말을 이어갔고 그 자리가 나에겐 불편해지자 다른 방으로 옮겼다. 하지만 눈치제로는 같이 가자며 종이컵과 젓가락을 들고 쫒아 왔다.
정말 불편했고, 새볔 내내 붙어 있는 결과 친구가 됐다.
OT 이후에도 눈치제로는 학교에서 나를 볼 때마다 크게 인사를 건냈다. 하지만 나는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특히 학과 규율상 형 누나를 불러야만 한다는 내 동기들 또는 선배들이 있을 땐 더 불편했다. 눈치제로는 그 때마다 더 크게 반말로 내 이름을 불러댔다. 대학생활.. 힘들었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군대도 다녀오고 졸업도 했다. 나와 눈치제로는 졸업 논문을 같이 쓰게 됐는데, 쓰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기에 연애는 내가 시켜주기로 약속했다. 눈치는 제로지만 학점은 과탑인 친구는 유능한 건설사에 취업했다. .
내 나이 22살. 여대와 연합엠티를 계획해서 갔고 거기서 만난 신입생. 순둥이였다.
연합엠티라면 이성을 만나고 이성과의 교제가 최우선이다. 하지만 그 당시 나는 자존감이 무척 낮았고 나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나에겐 사람들이 잘 즐기고 있는지가 엠티에서 가장 중요했다.
잘 짜놓은 게임에 이탈자는 없었다. 다들 너무 즐거워 했다. 술자리가 깊어지면서 알아서 만들어지는 소그룹 모임에 미래의 커플들이 하나둘 보였다. 소그룹에서 빠져나갈 구멍은 없었다. 대학엠티의 특성상 남여 기절방이 하나씩만 있을 뿐, 대다수가 큰 방에서 밤을 새거나 낑겨서 자야 하기 때문이다.
순둥이는 술자리를 요리조리 피해가며 잘 곳을 헤매고 있었다.
" 저기.. 주무시려면 방에 가세요. "
" 아, 사회자님. 방에 술냄새도 나고 사람들 엉켜있어서 도저히 못 들어 가겠어요. "
" 아, 그럼 잠시만요. "
방 한구석에 쌓여있는 방석으로 나름 침대를 만들고 이불을 깔아주었다.
" 여기서 주무세요. 저는 게임을 진행해야되서요. "
" 아, 감사합니다. 여기 이거 드시고 하세요. "
내 손에는 바카스가 쥐어 졌었다. 정말 순하디 순한 순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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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는 사람 있어? "
" 썸은 있지. "
" 우와. 너가? 어떻게? 회사발인가? "
" 왜 물어보는데? "
" 연락처 정리하다가 너랑 딱 맞는 사람이 있다 싶어서.. "
" 진짜? 사진줘. "
남자는 소개팅을 할때 왜 이렇게 사진사진을 하는지.. 사진 구해오는게 가장 피곤한 일이다.
" 내 스타일 아닌데? "
" 실물 괜찮아.. 만나봐. "
" 아.. 진짜 아닌데... 알았어 일단.. "
눈치제로는 사진만으로 사람을 판단하곤 주말 오후 2시에 시간 약속을 잡았다. 중요한건.. 잘 안될거란 생각에 5시에 썸녀랑 영화약속도 잡았다. 그걸 나한테 다 말해준다. 취업은 해도 눈치는 아직 없구나...
28살과 26살. 눈치제로와 순둥이는 그날 처음 만났다. 눈치제로의 센스 때문에 커피샾에서 만났고 다음 약속 때문에 1시간 반만에 헤어졌다.
중요한건 눈치제로가 순둥이를 보자마자 마음에 들었다는거다. 첫번째 만남을 애매한 2시. 커피샾에서 만나기도 했고, 다음 약속까지 잡아놓았기에 선택이 없었다고 하는데...
만약 나라면, 다음 약속을 취소하고 술을 한잔했을 것 같다. 아쉬웠다. 하지만 다행이도 그 만남 이후에 눈치제로는 순둥이의 마음이 상한지도 모른채 에프터를 신청했고 착한 순둥이는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에 에프터를 승락했다.
그렇게 그 둘은..그 날 이후 2년을 더 만나 결혼을 했다.
오랜만에 눈치제로에게 전화를 걸었다.
" 잘 지내? "
" 어.. 오랜만.. 잘 지내지.. 넌? "
" 나도 잘 지내. 뜬금없긴 한데.. 내가 요즘 글을 쓰고 있거든.. 너 소개팅 관련해서 글을 쓰려고 하는데 뭐좀 물아봐도 돼? "
" 어? 진짜? 오호. 내이름만 나가게 하지 말아줘. 뭔데? "
" 결혼 있잖아. 왜 했어? 재수씨가 좋았어? "
" 흠.. 결혼할 시기였어. "
" 저기... 글 쓴다니깐. 그렇게 진짜 글 올려? "
" 엄청 좋아하진 않았는데 30살이 되기도 했고.. 회사 야근도 심하다 보니.. 더이상 순둥이보다 나은 사람을 못만날거 같아서 했어. "
" 내가 알아서 편집해야 겠네... 순둥이보다 나은 사람이 없어서 결혼했다고만 하자. 우리.. "
눈치제로.. 어떻게 회사에서 승진을 남들보다 1년씩 빨리하는거지?
그는... 아직도.... 눈치가... 정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