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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Feb 03. 2021

운동하는아빠

꼰대가 되어가는구나..

  테니스 레슨을 받았다.

  벌써 3년이나 받았다. 돈은 돈대로 쓰고 실력은 잘 늘지도 않아 답답하다. 아마추어와 프로간의 실력차가 많이 나는 종목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그런지 쉽지 않다.


  요새 새로운 테니스 코치를 찾아 레슨을 배우고 있다. 새로운 방식의 레슨을 배워서 인지 그나마 조금씩 성장하고 있는게 느껴진다. 이 전 레슨 코치에게 같이 수업을 받았던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코치를 바꿔보니 많이 늘었다며, 코치를 바꿔보라고 제안도 하고 있다.

  나보다 실력이 모자라거나 잘 성장하지 않은 사람들을 보면 측은지심이 들기도 하고, 빨리 성장해서 같이 치고 싶어 제안을 했다. 그리고 시간 또는 돈 문제로 레슨을 받기 어려워 하는 사람들에겐 현재 받고 있는 레슨 방식에 대해 사람들 공유했다.

  " 이렇게 치니깐 더 좋더라구요. 그렇게 말고 이렇게요.. "

  사람들에게 새로운 정보를 전달할 때마다 같이 스윙도 해보고 게임할 때 적용도 해보라며 권유 했다. 그들이 내가 가르쳐준 스윙을 할 때마다 뿌듯했다.


  오늘도 새로운 코치에게 레슨을 받았다. 레슨이 끝나고 공을 줍는데 다음 순서로 나보다 나이가 조금 많은 누나가 왔다. 스윙이 남달랐다. 운동신경이 좋은 느낌. 입이 쩍 벌어졌다.

  ' 잘. 한. 다. '

  구경을 하며 공을 주웠다. 레슨이 끝나면 부탁해서 같이 쳐봐야지.

  이내 수업이 끝났고 자연스레 말을 걸었다.

  " 안녕하세요. 폼이 너무 멋지세요. 운동 하셨었어요? "

  " 네네. 권도 선수생활했어요. "

  " 나이가? "

  " 38살이예요. "

  " 아 저는 37살 이예요. 누나라고 불러도 되죠? "

  " 아. 네네.. "

  10분간 대화를 계속 걸었고, 결혼을 하지 않았다는 말에 소개팅까지 물어보게 되었다.

  " 혹시.. 연습 같이 하실래요? "

  " 아, 좋아요. 감사합니다. "

  코트가 때마침 비어있어, 공을 주고 받았다. 공을 주고 받다보니 예상했던 바와 다르게 잘 못치셨다.

  " 누나 백핸드 치실 때 스윙이 짧은 거 같아요. "

  " 면이 다 안열리시는거 같아요. "

  " 다른건 다 괜찮은데 로브가 구멍이네요. "

  누나는 묵묵히 테니스만 쳤다. 잠시 후 누나가 손을 들고서 그만치자고 했다. 코트 중앙에서 간단히 인사를 하던 찰나..


  " 말 조심하셔야 겠어요. 고생했습니다."


  순간 머리가 '띵'했다. 다이렉트로 말을 받았다.

  " 아 네.. 누나 공에 스핀이 잘 걸려서 치기 어렵네요. "

  분위기가 싸늘해 칭찬 섞인 말을 던졌지만 그 땐 이미 늦았고 누나는 묵묵부답이었다.  실수했다 생각했다. 친해도 지적받는 자체가 얼마나 기분이 나쁜데, 처음 본사람에게 뭐라 말을 들으니 말도 안되는 거였다.

  자리에 있기 창피했다.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타이밍을 못잡았다. 이내 불편한 자리를 뜨고 싶었다. 그래도 인사는 하고 가야 했다.  게 매너였다.

  " 덕분에 감사히 쳤습니다. 담에 또 쳐주세요. "

  "네, 조심히 가세요. "

  짐을 챙겨 테니스코트장을 나오는데 찝찝했다.

  '내가 꼰대로 가는 직행버스를 타고 있구나.. '

  시간이 조금 지났고 현장을 떠나긴 했지만 사과를 해야했다. 다행이도 소개팅에 관한 얘기를 나누며 전화번호를 주고 받았. 바로 찾아서 연락했다.

  ' 저, 제가 지나친 말을 건넨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하지 말았어야 하는 말을 너무 쉽게 함부로 했습니다.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다음에 시간나면 또 게임 쳐주세요. '

  글만으로 무언가 부족했다.

  ' 공 감사히 썼습니다. 다음번엔 제가 뜯겠습니다. '

  테니스 연습을 할 때, 누나가 새공을 뜯었기에, 감사인사도 할겸 커피쿠폰을 건냈다.


  사과연락을 하고도 너무 찝찝했다. 내가 언제부터 테니스를 그렇게 잘 쳤다고 훈수를 두는지.. 너무 미안했다.

  핸드폰 창 1면엔 보통 일정이나 해야될 일을 적어놓았는데, 한 줄을 추가했다.


  ' 말을 아껴서, 지적은 하지말자. 말이 너무 많다. '


  한숨을 푹 내쉬는데, 카톡이 하나 온다. 누나 연락이다.

  ' 뭘 이런거 까지.. 서로 적당한 선 지키면서 재밌게 해요. 제가 테니스에 애정이 있다보니 그렇네요. '

  답변을 받았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기분이 많이 나쁘긴 했었구나..


  순간.. '이렇게 까칠하니 아직까지 결혼 못하고 있지. ' 생각이 지나가는데.. 정말 나라는 사람.. 상종못한 사람이다. 내가 잘못을 저질러 놓고는 회피를 자꾸하려고 하니.. 꼰대가 다됐나 보다.


  37살.. 가끔 외모나 직업만 보고 선입견을 갖는 내 모습에 꼰대를 발견하곤 한다.

  조심하고 또 조심해여 겠다.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꼰대.. 는 정말 피해야지..



-- 에필로그 --

  몇일 후 다시 태니스 코트에서 만났다. 나는 매우 뻘줌했는데 누나가 먼저 와서 인사를 건네며, 게임을 하자 했다. 갑자기 목이 너무 타서 물을 먹고 오겠다 했더니 누나 생각엔 내가 자기를 피한다고 느꼈는지 말을 꺼냈다.

  " 난 괜찮은데.. 게임하자. "

  그 말에 잠시나마 밉게 생각했던 내가 더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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