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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Feb 11. 2021

운동하는아빠

007 테니스 작전

  ' 오전 11시에 시간 혹시 괜찮니? '

  ' 아니요. 시간이 애매해서요. 그시간대면 애들 다 초등학교 보내고 갈게요. 약 6년 걸릴 예정이예요. '

  ' 그럼 어쩔 수 없고, 시간되면 레슨해 주려고 했지. '


  설 전날. 뜻밖의 연락이 코치님께 왔다. 아내 몰래하고 있는 레슨이라 가끔 연락이 올 때마다 심쿵심쿵 하다. 여튼 난 제안해주신 안을 거절하고 장모님의 도움으로 오전에 잠시 운동을 할 수 있었다.


  운동 후 샤워를 마치고 아내와 장모님깨서 식사를 다 마칠 때 까지 둘째를 보았다.

  10시 쯤 됐으려나? 둘째를 아무리 안고 흔들어도, 쪽쪽이를 물려도 계속 울었다. 내가 터덜터덜 다가와 매고 있는 앞띠를 풀렀다.


  " 얘 요즘 이렇게 재우지 않아. 최대한 눕혀 재우고 있어. "

  분명 나에게 하는 말인데 나에게 하지 않는 것 같았다.

  " 첫째야, 밖에 나가서 킥보드 탈래? 둘째가 너무 울고 엄마도 피곤하네. "

  혼잣말을 하는 듯 보였지만 나에게 내린 명령이었다.


  " 옷 입고 나가자. 아빠랑 놀러 나가자. "

  " 싫어 싫어. 집에서 놀거야. "

  아이를 꼬옥 안고 귓속말을 했다.

  " 버스 타러 가자. 버스"

  "좋아. "

  째 아이는 버스를 타는걸 좋아한다. 코로나 때문에 대중교통을 최대한 피했는데, 오랜만에 타자고 하니 매우 좋아하면서 옷을 입었다.


  장모님과 첫째 아이와 같이 나갔다. 장모님은 설 음식 준비거리를 사러, 나는 첫째 아이와 버스를 타러 나갔다. 반찬가게와 버스정류장의 방향이 같아 함께 걸어가고 있어는데 대뜸 아버지께 전화가 왔다.

  " 뭐하니? "

  " 첫째 돌보죠. "

  " 내가 데리러 갈테니깐 오늘 하고 싶은거 해. "

  뜻밖의 제안. 아버지가 친구 농장에 잠시 일을 도와주러 가는데 첫째아이를 데려가고 싶으셨나 보다. 나는 너무 좋았으나 옆에 계신 장모님 눈치를 보았다.

  " 다녀와. 내가 부모님하고 같이 농장 갔다고 할게. 들키지 말고. 테니스 원 없이 치는 날도 하루 쯤은 있어야지. "

  " 정말요? "


  그렇게 007 테니스 작전이 시작되었다. 우선 반찬가게에 들려 내일 먹을 음식을 샀다. 아버지껜 오시라고 전화를 드렸다. 장모님께선 집에서 뭐 꺼내올거 없냐고 물어보셨고 아이의 칫솔과 치약. 여분의 옷. 내 운동복을 가방에 넣어 달라고 부탁했다.

  집 앞 복도에서 첫째아이와 같이 장모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 여기 있어. 잘 다녀와. 나도 잠시 약속 갔다가 아이봐주러 올테니깐 걸리지만 말고 재밌게 놀다와. "

  " 감사합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

  한손엔 장모님께서 챙겨주신 아이를 위한 가방과 다른 한손엔 나를 위한 가방을 들었다.

  10분 정도 있자, 아버지가 오셨다. 첫째아이를 꼬옥 안아주고 차에 잘 태웠다. 아이와 인사를 하고는 전화기를 바로 들었다.


  " 코치님, 저 지금 갈 수 있어요. "


  다리가 후들후들 떨릴정도로 테니스를 쳤다. 12시부터 4시 30분까지.. 더이상 칠 수가 없어서 가방을 정리하고 나왔다. 아내와는 아직 싸움의 잔재가 남은 상태라 연락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아버지께서 첫째를 찍은 사진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사진엔 내가 없었기에 아내는 의심하리라.. 그래도 다행인건 아버지도 사진에 없었다. 일단 이건 말로 잘 둘러댈 수 있겠다 싶었다.

 이제 증거를 인멸해야 된다. 땀에 찌든 내 몸. 소금에 절여진 옷. 바로 엄마한테 전화 했다.

  " 엄마, 나 잠시 씻으러 갈게요. "

  " 왜 씻으러 오는데, 아버지랑 같이 간거 아니었어? "

  " 일단 갈게요. "

  집이 테니스 장과 멀지 않았다. 차를 끌고 가는 길 장모님께 전화가 왔다.


  " 사위! 딸이 의심하기 시작했어. 사진에 오빠가 없다구.. 아버님은 언제 오신대? 차에 같이 타서 사진 하나 찍고, 아버지 핸드폰으로 사진 하나 보내. "

  " 네 감사해요 어머니. 아버지도 곧 오신대요. "

  어머니 집에 도착하자 마자 샤워를 하고 세탁기를 돌렸다. 머리를 잘 말리고 아버지가 오자마자 사진 하나를 찍는다. 때마침 사촌 동생이 우리집을 방문했기에 같이 사진을 찍는다. 그럴듯하다. 좋아. 아버지 폰으로 사진을 보내놓았다.

마지막. 5살짜리 아이는 거짓말을 못한다. 할아버지와 있었던 기억 위에 나와 있었던 기억을 잘 덮어야 한다. 엄마가 혹시나 물어보면 아빠와 있었던 기억만을 말할 수 있게...

  내일 설인지라 잠시 식사를 하기로 한 부모님께도 혹시나 모를 상황을 잘 설명해 드렸다.

  " 아버지, 저는 오늘 아버지랑 같이 있었던 거예요. "

  " 그렇게 까지 해야되는거니? "

  " 아니, 혹시나요. 그냥 모른척 해주세요. 장모님과도 잘 짜여진 각본이예요. "


  이제는 잘 때까지 아이를 잘 놀리고 차에서 재워 옮기면 끝이다. 일단 오늘 대화자체를 막아 놓는다. 내 최종 계획이었다.


  세탁기가 다 돌아가고 운동복을 꺼내 잘 널었다. 굳이 이렇게 해야만 하나 싶다. 아이의 체력을 빼려고 잘 놀아주고 있다.

  과연... 내일... 걸릴까? 내가 다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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