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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둘아이아빠 Feb 20. 2021

둘아이아빠

첫째재우기

  오늘은 재우는데 총 3시간이 걸렸다. 정확하게 저녁 8시에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와 11시가 다 되어서 자려고 뒤척거린다. 중요한건 자려고 하는거지 아직 안잔다는 거다.

  내일 오전 7시에 테니스 운동을 하러 나가야 한다. 대략 한시간 반. 그 한시간 반을 위해 나의 저녁 삶은 뒤로 미뤄두기로 했다.

  혹시나 저녁 삶을 조금이라도 보장받기 위해서 오늘 오후 13시부터 버스투어, 지하철투어, 스케이트레슨, 동네 공원에서 씽씽이.. 18시에 집에 들어와 목욕시키고 밥 먹이고 20시쯤 바로 골아 떨어질줄 알았으나... 3시간을 버텼다.

  대단한 체력이다. 어느 티비 프로그램에서 나온 말이다.

  ' 6세 어린이의 하루 일정과 행동을 성인 운동선수가 모두 똑같이 따라 했다가 기절했다.'

  정말 그럴 것 같다. 정말 정말 정말 안잔다.

  8시에 들어와 책을 6권을 읽었더니 1시간이 지났다. 아이가 5세에 들어서니 책들도 글밥이 많다. 불을 끄고 아이를 잡고 침대를 못 벗어나게 하는데 아이는 발버둥을 치며 도망가려고 한다.

  10분간의 레슬링이 이어지고 아이가 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 수면등을 켰다.

  " 딱 5권만 더 보는거야? 알았지? "

  " 네. 딱 5권.. "

  거실로 같이 손을 잡고 나가 아이가 5권의 책을 고른 후 다시 방에 와 누웠다.

  천천히 조심스레 읽어내려간다. 내가 혹시나 너무 잘 읽어 아이의 흥미를 유발해 잠을 쫒는게 아닌지 싶어 졸리게 읽어내려간다. 3권째.. 내가 잠시 졸았다.

  " 아빠, 이상하게 읽는다. 엄마한테 재워달라고 해야겠다. "

  " 엄마는 안돼. 잘 읽어볼게. 창문 좀 열자. "

  졸음 운전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창문을 열고 숨을 몇번 들이킨 후에 다시 책을 읽어 내려간다.

  이젠 10시. 책을 읽는게 지겨워 몇줄 건너 띄워 읽을라 치면 아이가 그 부분을 손가락으로 집으며 말한다.

  " 아빠, 여기 안 읽었어. 여기부터 읽어야 돼. "

  영재가 되지 않아도 되니 책 좀 그만 좋아했으면 좋겠다. 꾸역꾸역 5권을 다 읽었더니 10시 10분. 그는 아직 생생하다.

  " 화장실 갔다가 오자. 물도 마시고.. "

  잠시 아이와 나 사이에 휴전을 청한다. 아이를 화장실에 데려가 변기 앞에 세우고 바지를 끌러준다. 혹여나 바지에 튈까 조준도 도와준다. (바지가 젖으면 일이 곱절로 늘어난다.) 저 건너방에선 방문 아래틈 사이로 빛이 번쩍번쩍한다. 아내는 펜트하우스 2를 보고 있다.

  아이 물까지 다 먹이고 책을 다시 골라온다.

  " 아빠 ! 왜 오늘은 아빠랑 자야돼? 엄마랑 책 읽으면 안돼? "

  " 엄마 벌써 코 자. 그러니깐 아빠랑 자야돼. 자 읽는다. 이번엔 꼭 5권 읽고 자야돼! 알았지? 약속해! "

  아이가 책을 다 읽고도 또 도망가려고 한다면 내 체력의 한계가 올 지경이다. 재차 약속을 받아 낸다.

  " 아빠가 말했지? 약속은 뭐라고? 왜 한다고? "

  " 약속은 지키라고 하는거야. "

  " 그럼 꼭 지켜. 알았지? "

  " 네. "

  처음 5권은 각 나라별 특징이었고 두번째 5권은 과학동화었고 세번째 5권은 습관관련 동화다. 진짜 피곤하다. 졸리다 졸려..


  다시 졸린 목소리로 3권쯤 읽고 4권을 읽으려고 하는데, 아이의 목소리가 쉬었다. 드디어 마지막 능선이 보인다. 책을 정말 천천히 읽는다. 최대한 졸리게 읽는다. 내 몸에 걸쳐 있는 한쪽 팔이 부르르 떨린다.

  " 토끼가 집으로 가는데.. 오오오오 ~!! "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왔다. 이제 끝인가? 책을 읽는 척 하면서 조용히 수면등을 꺼본다.

  " 아빠 불 갑자기 왜 꺼요? "

  " 아, 불이 고장 났어. "

  "...."

  평소라면 거짓 울음소리를 내며 불을 켜달라고 할텐데 조용하다. 핸드폰 전원을 살짝 눌러 시계를 본다. 10시 50분. 아이를 토닥이며 침대에 널부러져 있던 책 15권을 정리해 논다. 아이의 숨 소리가 커지고 길어졌다.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3시간의 혈투는 나의 승리로 끝났다. 아내가 중요한 티비 시청을 할 때 중간에 뛰어들어그 방해를 하지 않았다. 오늘은 10점 만점. 나 자신에게 박수를 쳐 준다.

  이불을 잘 덮어주고 조용히 문을 닫고 방을 나왔다. 아내에게 생색을 내며 내일 운동을 갔다올 때 뭐라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려다가 말았다. 일단 생색을 안내는게 대인배니깐 내일을 지켜보기로 한다.


  진짜 오늘 하루가 끝났다. 내일 입을 운동복은 현관문 앞에 두었고 내일 아침 아내와 아이가 먹을 빵을 진작에 식탁위에 사 놓았다. 준비가 너무 완벽하다. 이제 두 아이가 잠만 잘 자면 된다.

  걱정이 딱 하나 있다면.. 둘째가 첫니가 나고 있다. 제발 중간에 깨지 말아다오.. 아내의 심기를 건드는 일을 만들지 말아주길 기도하며 펜트하우스를 보고 있는 아내에 방으로 향한다.


- 에필로그 -

 " 내가 이래서 이 드라마 좋아한다니깐. "

  무슨 내용인지는 잘 모르겠다만 아내는 탄성을 자아내며 보고 있다. 막장의 냄새와 거침없는 스토리 전개는 드라마를 보지 않는 나도 느낄 수 있다.

  그래. 내용이 뭐든 스트레스 풀어주면 최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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